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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미니 Mar 23. 2024

이혼일기(57)

밤양갱

아냐 내가 늘 바란건 하나야 한개 뿐이야 달디단 밤양갱. 


친정부모님이 나와 아이를 관사에 태워다 주고는 아이 잘 키우고 잘 살으라며, 버리듯이 두고 가버렸던 그 날 저녁.


아이에게 영어영상을 보여주는 중간에 이 노래가 나왔다. 그 땐 이게 노래인지, 광고인지도 모르고 멍하니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다른 영상을 틀어주었었는데,


그 후로 아이는 이 노래를 곧잘 흥얼거린다.  작고 여린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를 들으면, 그날의 황망함과 괴로움, 자책. 인생에 존재할 수 있는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이 뒤섞여 몰려오며 드는 생각.


내가 바랐던 것도, 한개 뿐이었는데.


내 월급으로 친정부모님과 우리 아기와 내가 행복하게 사는 것이었는데. 


이미 달에 백만원씩 드리고 있었다.

 

그 이상을 요구하면 그것까지 들어줄 순 없는 것 아닌가. 매일 매일 힘이 들 때 모두들 통장을 보며 힘을 얻는 것이 인지상정이지 않나.... 월급을 넘어서는 돈을 보내고 나니 도무지 출근해서 일을 하는 것이 재미가 없었다. 내가 그냥 마이너스 통장을 부모에게 주고 자유롭게 쓰도록 하지 않은 것이. 그렇게까지 막말을 듣고 버리듯 두고 갈 정도로 잘못한 것일까.


 요즘도 내내 머리에 맴돈다. 때로는 잘못했다는 죄책감도 든다. 특히  아빠와 엄마가 나를 원망하는 장문의 문자를 번갈아가며 던지듯 보내놓으면,


며칠을 확인하지 못하고 뒤로 미뤄두었다가 끝내 열어보고는 또 한동안 마음앓이를 시작한다. 뭘 어디서부터 고쳐야할 지 모르겠고, 어떻게 풀어나가야할 지 알 수가 없다.


 당분간이라도 그 괴로운 상황을 잊고 우리 아기와 편안하고 조용히 살고 싶다고 되뇌이던 어느 오후에는 다음 주에 변론기일이 있으니 상대방의 답변서에 대한 반박서면을 써달라는 변호사의 문자를 받았고,


 이 아사리 판에 또 밤을 새워 반박서면을 썼다.


 작년 8월에 받았다는데 기억도 나질 않아서 변호사에게 상대방이 보냈던 서면을 다시 보내달라고 했다. 아이를 재우고 컴퓨터 화면의 반은 상대방의 서면, 그리고 반은 빈문서를 띄우고


번호를 매겨가며, 한줄씩 반박문을 써내려간다. 어처구니 없고 앞뒤도 맞지 않는 그의 서면을 하나하나 뜯어읽으며 억울해하다가 가슴을 몇번이고 문지르며 반박문을 써내려간다.


 원고(나)는 이제껏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던 피고와 시댁을 배신하고 상당한 수입을 본인이 독차지하려는 이기심과 욕심의 극치를 보이고 있습니다. 


 - 피고(아이아빠)가 독서실과 학원을 자유롭게 다니며 공부를 할 동안 저는 유모차를 밀고 다니다 아기가 잠이 들면 벤치에 앉아 문제를 풀었습니다. 실제로 학원수강을 한 적도 새책을 산 적도 없습니다. 설겆이를 하다 중고책을 뒤지는 것이 제 일상이었고 실제로도 모두 중고서적을 구입해서 공부했습니다 


 피고는 공부를 하며 매형의 회사에서 잡무를 처리하고 밤에는 육아를 돕는 등 매일매일 최선을 다해 살아왔는데 이혼이 그 댓가라니 억울해서 기가 찰 노릇입니다. 


- 매형의 회사라고 하는 곳의 주소지는 피고 소유 건물로 되어 있으며, 실제로 그 건물은 타인에게 임차중인 계약서를 피고가 제출한 바 있습니다. 매형의 회사는 서류상으로만 존재하여 피고는 일한 적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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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존중받고 싶었는데.


내가 결혼 생활에서 바란 건 정말 그것 뿐이었는데.


 결혼도, 부모도,


왜 이렇게 나에게 요구하는 것이 많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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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요즘같이 기운이 떨어지고 힘들 때에는 글이라도 써서 위로를 듬뿍 받고 싶은데,


그조차 쉽지가 않아요.


감정이 아직 복잡하니 더덕더덕 찌꺼기가 붙어있는  하소연같은 글을 잔뜩 쓰다 지우고 또 지워요. 어떻게 줄기를 잡아야할지 감도 오지 않고 또 오래 걸리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또 시간이 가겠지요. 그러다보면 달라져 있을 것이라고 억지로 믿어봅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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