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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미니 Mar 30. 2024

이혼일기(58)

우리아가

마른침을 꿀꺽 삼킨다.

그래서 아가..? 어린이집에서 선생님이 옷 정리 하라고 하실때... 화장실 다녀오는 시간에.. 무슨 생각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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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주전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찾는데, 선생님이 따라나오며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냐고 물으셨다. 만 4년 어린이집 인생에 처음 있는 일이라 ?? 하는 얼굴로 쳐다보니, 요즘 아이가 멍하니 있는 시간이 많고 그 때마다 이름을 부르면 그제야 아? 하며 하던 일을 이어간다는 이야기를 꺼내셨다.

 오늘은 전화기를 만들었다고 한다. 만든 전화기를 들고 제각각 노는데 얘는 구석에 가서 뭐라뭐라 한참을 말하길래 가까이 가서 들어보니,

 나는 하비함미가 보고 싶은데, 동주오빠를 만나러 가셨대. 거기는 카나다라는 데 나도 가고 싶어 하비함미가 나 보러오면 좋겠다.

.......

 가까스로 눈물을 참고 애써 웃으며 아이의 손을 잡고 이리 저리 걸어본다. 오늘 저녁은 영양분 같은 것 생각하지 말고, 아이가 먹고 싶어 하던 도너츠 집으로 가서 도너츠 두개와 좋아하는 딸기 요거트도 주문했다.

 도너츠를 보면 아이는 얼굴이 찌그러질 정도로 입을 크게 벌린다. 한껏 벌린 입으로 도너츠를 베어 물고는 신중하게 빨대 껍질을 벗기고, 옆에 흘러내린 머리는 귀뒤로 치우고는 집중해서 음료 컵에 빨대를 꽂고 두손으로 소중히 컵을 잡아 테이블 아래로 내려 (테이블 위에 컵을 놓고 빨대로 먹기에는 앉은 키가 너무 작다) 입을 대고 빨아먹고는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내가, 모르는 이야기가 많았다.

1) 아빠 차를 타고 할머니, 이모함미와 가는데 엄마가 그 옆을 지나쳐 뛰어갔어

 아마 아이를 데리러 가는 길이었을 거다. 토요일 출근을 했다가 아이 아빠가 아이를 데려오는 시간에 늦을까봐 서둘러 뛰어 가는 중에 차를 지나쳤나보다. 근데 엄마가 나를 보고도 손을 흔들어주지 않았어.

2) 하비 함미 집에서 내가 응가하러 장난감 방으로 들어갔을 때 사실은 아빠가 보고 싶어서 울고 나왔었어. 

아직 기저귀를 떼기 전, 아이는 응가를 하겠다며 곧잘 작은 방으로 들어갔었다. 그 때마다 힘을 써 응가를 하고는 땀이 송글송글 맺힌 얼굴로 나왔었는데, 기억에 한번쯤. 그냥 나왔던 적이 있었다. 그랬었구나. 그 때.. 그런 생각도 하고 그걸 차마 물어보지 못하고, 마음에 숨기고 혼자 응가를 하듯 감정을 처리하기도 했구나 우리 아가가.

3) 지난 번에 하비함미가 여기 데려다 주고 갔을 때 그 때 예수님한테 슬프다고 기도했어.

 돈 문제가 불거지고 서로 상처를 입은 후, 아빠 엄마는 왜인지 다시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행동할 때가 있었다. 그래도, 관계 정립을 하기 위해 여기서 주무시고 가시던 루틴을 거절했다. 항상 관사로 데려다주시고 하룻밤 주무시고 다음날 아이 등원을 시키고 친정으로 가셨는데, 괜찮다고 했다. 그냥 저녁만 드시고 가시게 했었는데...  같이 내려가서 배웅을 하고 난 후 올라와 목욕 준비를 하다보니 구석에 벽을 보고 앉아 있었다.  손은 모아져 있고 눈에 눈물은 한방울이 걸려 나를 돌아보며 히 하고 웃었었는데, 내가 굳은 얼굴로 우리 아가 왜 그러냐고 물으니, 함미하비가 갔다며. 서럽게 울어서, 같이 붙들고 통곡을 했었다.

 아가의 다정한 함미하비는 엄마를 원망하며 갔고, 엄마는 근원적인 기대가 부서져 마음을 가눌 수 없었던 날.

4) 교회 갔을 때, 하비함미집에 한번 가보고 싶은데 참았어.

친정은 안가도 친정 지척에 있는 교회는 매주 간다. 갈 때마다 나는 신경이 곤두선다. 이미 아이를 이고지고 전철을 두세번 갈아타며 2시간 걸려 도착해 팔다리에 기운이 하나도 없는 데다가, 골목을 돌아설 때마다 부모님을 마주칠까봐 항상 무서웠다. 비슷한 차만 보아도 깜짝 놀라는 마음을 누르며 전철에서 내려 서둘러 성전으로 가는데, 갈 때마다 하비함미집에 가보자고 묻는다. 미안한 얼굴로 하비함미가 보고싶구나.... 대답하면, 아니이, 그냥 보고만 오자는 거야. 들어가지 않고 그냥 집만 보고 오자고. 하는 신기한 소리를 몇번씩 했었다.

자신을 예뻐하던, 갓난쟁이때부터 둘러싸 있던 사람들이.갑자기 사라지니 얼마나 마음이 허전할까. 주양육자인 엄마는 사실 기본으로 있는 것이고, 그 외에 자신을 웃게 해주고 소통하는 사람들이 당연히 필요한데, 그건 많을 수록 좋은 건데, 항상 웃고 떠들던 아이가 하루 아침에 영문도 모르는 채로 그들을 잃었으니 그걸 받아들이기가 얼마나 어려울까.

어린이집에서 아무리 재밌게 놀아도 집에 들어올 때마다 아쉬워했다. 왜 우리 집에는 친구가 안오냐고도 묻고, 혼자 들어가기 싫다고도 하고.. 엄마랑만 하는 일상이, 밥 안 먹고는 못살아도 밥만 먹으면 질리는 것처럼 변화가 필요할 것이다. 나름 주일마다 교회에 가고 목사님과 친구들이 언제나 반가워해주니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그건 마음 편하기 위한 내 합리화였다.

결국은 나 때문이었다. 내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나 때문에 아이는 아빠와도 떨어지고 하비함미와도 떨어졌다.

 근데..... 방법이 없어 아가. 엄마가 정말 힘이 들어서 숨쉴 수가 없었어. 너한테 웃어주는 엄마가 되고 싶어서, 이렇게 한 건데. 엄마도 잘한 건지는 모르겠는데, 확실한 건 말야. 다른 방법이 없었어...

나중에 크면 이해해주길 바라지 않는다. 내내 나를 원망해도 좋고, 엄마의 선택을 비난해도 좋으니 아무튼간에 지금 얘가 괜찮으면 좋겠다. 마음 한구석이 비지 않고, 어딘가에 나쁜 것이 끼어있지 않고. 그저 괜찮으면. 그저 괜찮으면 좋겠다.

 우리 아가 아빠도 보고 싶고 함미하비도 보고싶구나.... 근데, 아빠는 출장 가셔서 일주일에 한번씩 만나는데 그래도 보고 싶어...?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하는 표정. 아마 본인도 잘 모르겠을 것이다. 그래 따져보면 사실 일주일에 한번씩 만나는데, 전에 같이 살 때에도 아빠는 매일 한시간씩 밖에 못 봐서 오히려 같이 있는 시간은 지금이 더 많은데도 아이는 왜 아빠가 보고싶다고 생각할까.

아.. 우리 아가가. 아빠가 집에 같이 있어서, 어린이집에 데리러도 가고... 아무튼 여기에 아빠가 있었으면 좋겠는 거구나. 그런 거네...

 끄덕끄덕.

도너츠를 먹느라 설탕과 기름이 잔뜩 묻은 손으로 내 품을 파고 들어와 안기는 아이를 몇번이고 힘주어 끌어안는다.

하비함미는 동주오빠보러 여행을 가셨으니까.. 오실 때까지 엄마랑 즐겁게 있자.. 대신에 지금 엄마랑 계장님들이랑 맘마 먹는 데 가서 우리 아가 용돈도 많이 받고 선물도 많이 받았잖아. 거기 가면 다들 나를 예쁘다 하세요. 하고 선생님한테 자랑도 했었잖아 그치...? 지금은, 하비함미가 아니라 계장님들한테 인사하고 예쁨받고 선물받고 하는 시기니까 그렇게 지내보자. 알겠지...? 아빠는 이번 주에도 오시니까 매일은 못 봐도 만났을 때 재밌게 놀면되지. 아빠는 우리 아가를 정말 사랑하시니까..!

아이구...우리 아가가 엄마가 모르는 생각을 많이 많이 하고 있었구나...

이제, 내가 괜찮을 것은 바라지 않는다.
아이만이라도 괜찮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주님. 우리 아가 부탁합니다. 작은 마음의 주름들까지. 모두, 샅샅이 책임져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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