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미니 May 18. 2024

이혼일기(65)

중고차발견

언제나 6시 언저리에 일어난다. 알람을 맞추지 않아도 휴일이건 평일이건 눈이 떠져서 식탁에 앉으면 창밖으로 길이 막히는 출근길이 보인다.

내가 지금 저 대열에 있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답답하고 꽉 막힌 사람과 살지 않아도 되어서.

결혼 제도에 갇혀서 날 갉아먹지 않을 수 있어서.

내 주관대로 행동하고 아이를 키울 수 있는 경제적 자립이 되어서.


정말, 진심으로 감사하고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여기에 더하여 운전까지 할 줄은 사실 생각도 못했었다.


막상 해보니.  추운 겨울에 아이를 데리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은, 좀 말이 안되는 일이다. 아마, 그래서 우리 아기만한 아이를 데리고 있는 엄마는 거의 보지 못했나보다. 다들 안가거나, 자차로 이동을 하겠지. 하지만 나에겐 달리 방법이 없어서. 짐을 주렁 주렁 달고 아이를 안고 버스와 전철을 오르내리며 가서 예배를 드리고 다시 또 같은 코스로 관사로 돌아왔다.


이게 매주 거듭될수록 몸이 힘든 것보다 정신건강에 좋지가 않았다. 생각이 자꾸 부정적으로만 흘러간다. 자느라 축 늘어진 아이를 껴안고 전철과 버스 구석자리에 앉아 있다보면, 나 꼭 아이를 데리고 떠돌아다니는 노숙자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지 아니야. 고개를 휘젓다 가도, 근데 관사에 얹혀 있지 집이 없는 건 정말이잖아? 하는 반론이 어디선가 날아와 꽂히면.


여지없이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진다. 내 멘탈은 너무도 나약해서. 이런 논리적인 공격을 이겨내지 못한다. 그래서 빨리 차를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더이상 이런 처량함에 머물지 말아야 한다. 나는 나를 믿지 못하니 그런 생각을 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들어 주자

 

자괴감에게 틈을 내어주면 안된다.


그런 생각으로 운전 연수를 시작했다. 맘카페에서 운전연수를 검색하고 그 중에 늘 보아 익숙한 닉네임이었던 분의 글을 클릭하고, 그 분이 배우셨다는 강사님께 알아보지도 않고 바로 연락을 해서 시간을 잡았다. 어렵게 어렵게  4주에 걸쳐 운전을 배우고 났는데도 첩첩산중이다. 차가 없었기 때문이다.


새차를 사는 것는 아직 어울리지 않고, 그러니 괜찮은 중고차를 사야하는데..  중고차 앱을 다운 받아 살펴도 도대체 뭐가 뭔지 알 수가 없다. 검증되지 않은 딜러들 속에서 나와 함께할 차를 사는 것은 무섭고 괴로운 일이었다. 예산이 넉넉하지도 않다. 결국은 다 빚으로 살 수 밖에 없다.


1) 예산 설정


 경차는 중고차 가격이 생각보다 낮지 않았다. 수요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300~400만원대로 아무렇게나 몰 수 있는 중고 경차를 사겠다는 계획은 접었다. 중고차도 가격이 어느 정도 형성되어 있어서 정찰제나 다름없다. 가 내린 결론이다. 싼 차는 그만한 이유가 있으니 제 값을 주고 산다는 생각을 해야한다. 오히려 400만원이라면 아반떼 구형 같은 모델이 좋다고 추천받았지만, 세금이나.. 여러가지 혜택과 아직 운전이 서툴어 작은 차였으면 해서 조금 더 들더라도 상태좋은 경차로 마음을 굳혔다.


2) 무사고이며 10만 km 이하의 주행거리 


중고차는 위험성을 감수해야만 한다. 그래서 무사고이며 내 경우 향후 몇년간은 차를 바꿀 여유가 되지 않으니 10만 이하의 주행거리를 기준으로 잡았다. 무사고 차라고 해도 보험이력이 없는 수리는 걸러낼 수 없으니 그냥 안고 가는 것.


3) 차 종 정하기 


레이는 간간히 나오지만 기본 가격대가 높았고, 스파크는 상대적으로 가격대가 낮았지만 왠지 마음에 끌리지가 않았다. 어차피 차도 오래 가야하는 식구나 다름없다.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두고두고 속상할테니 딱 이거다! 싶은 것. 을 골라야 후회가 없고. 후회가 없어야 차를 이뻐하며 자주 운전하고 싶지 않을까.. 하는 바람 ㅠ  


 이렇게 해서 내린 결론은 예산 700 언저리에서 2015년 이후에 나온 주행거리 10만 이하 무사고의 기아 모닝 크림베이지 를 사는 것. 이었다.


  그런데, 차를 산다고 해도 이 길고 어려운 경로를 운전해 간다는 것은 또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다. <누군가 우연히 타던 차를 처분한다던가, 아주 근거리에 당근으로 차가 나온다던가 -_- > 하는, 어떤 특별한 계기라도 생긴다면 그에 탄력받아 용기라도 내보겠는데, 그런 타이밍 좋은 일이란 생기지 않았다.


 운전이 익숙해서 차만 있으면 당장 편히 움직일 수 있는 상태라면, 중고차만 걱정했을 것이다. 근데, 간신히 연수만 10시간 마쳤을 뿐이었다. 혼자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뒤에 아이를 태우고 1시간 넘게 강변북로를 차선을 바꿔가며 가야한다. 이게 말이 되나. 아니 가능한 일이긴 하나....? 이러니 뭐 하나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무언가를 상의할 가족도 남아 있지 않다. 언니는 멀리 캐나다에 가서 살고 있고, 부모도 남편도 이제 내 가족이라 할 수 없었다.


나는 도저히 혼자서는 차도 못 사겠고 운전도 못하겠고, 이제 더는 아이를 데리고 전철타며 다니지도 못하겠다.


아이를 재우고 매일을 신음하며 걱정 가득한 얼굴로 중고차앱을 열고 또 열어본다 이 중에 내 차가 있을까. 차를 사는 건 맞는 일일까. 나는 왜 이런 상황에 처해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나갈 수 있을까.


4) 시장의 위치 


 중고차 시장은 정말.... 어지럽다. 진입장벽이 낮아서 그리고 매일 하는 노동이 아니기 때문에, 질 낮은 중개업자들이 드글드글 하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일 것이다. 그 중에서 믿을 만한 사람을 어떻게 고를까..


운전연수 강사님이 일단 인천, 부천은 다 거르라고 했다. 다들 사기꾼이다. 차가 올려져 있어서 보러 가면 그 차 말고 이 차..? 하면서 집요하게 구슬르고 그래서 결국 바가지를 쓰고 온다는 이야기는 일리가 있었다.


 그리고 어차피 아이가 있는 나는 멀리까지는 차를 보러 가지도 못한다.. 토요일 아빠에게 아이를 보낸 6시간동안 처리해야하는 일이라는 것도 너무 벅차다. 그래서 서울에 있어야만 했다.


 눈비비고 앉아 출근준비를 하려던 어느 아침, 중고차 어플에서 그나마 서울이고 내 근거지에서 가까운 신월동 자동차 매매단지에 690만원에 올려진 딱 내가 원하는 조건의 경차 하나를 보았다. 이 정도면 사러 갈 수도 있고 여러가지가 딱 들어맞는다.


이거.. 내가 가기 전에 팔리면 어떡하지.


-------


이혼에는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최근에 가장 고민을 많이 했던 이슈였어서


혹시 저처럼 여러가지로 막막한 상황에 차 사시려는 분들께 도움이 될까 싶어 적어봅니다.


식구같은 좋은 물건들과 우리 아기와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아야지요 ;-)


작가의 이전글 이혼일기(64)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