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새벽 자는 아이를 내복입은 채로 담요로 싸서 뒷자리에 앉히고 안전벨트를 꼭꼭 채운다음 운전석에 앉는다. 심호흡을 한번 크게 하고 조심조심 덜덜 떨며 차를 몰고 4달 만에 친정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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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까지만 해도. 그 동안 너 키우느라 쓴 돈을 다 내놓으라는 문자를 보내며 분노를 쏟아내던 엄마는 갑자기 어제, 우리 집에 찾아왔다.
지난 4달 동안 아빠만 서너번 왔었다. 본인들이 손녀가 보고 싶어 못 참겠을 무렵. 이전에 그랬듯 금요일 퇴근시간에 맞춰 아이를 마음대로 찾아서는 00이 찾았다는 문자를 받으면, 그 때부터 심장이 두근 거리기 시작한다.
스트레스란 정말 놀라운 것이어서, 난 현관에 들어서서 아빠 얼굴을 보자마자 아래턱이 돌아가기도 했다.
재작년 겨울부터 춥고 힘들 때 세번정도 그랬었는데, 신경외과도 가보았지만 흔히 말하는 구안와사 가 아니라 턱관절의 문제인 것 같다. 다행히 힘을 주어 입을 크게 벌려보면 30초 정도면 제자리로 돌아오긴 했는데, 몹시 아프고 또 무섭다. 영영 이 흉칙한 얼굴로 살아야 하면 어쩌나 덜컥 겁부터 난다. 아무튼 여기저기 아팠다. 이건 깊은 병이 아니라 신경성 증상이란 걸 알고 있어서 큰 걱정은 안했지만, 당장 견디기가 어려울 정도인 건 마찬가지였다.
아이에게는 함미하비가 여행을 가셔서 당분간 못 본다고 이야기해두었는데.. 이렇게 자기들 내키는대로 불쑥불쑥 오면 딋감당을 어떻게 하라는 것일까. 남편이며 부모며 다들 아이를 사랑한다 하면서 물고 빨아대도 진심으로 아이의 속마음까지, 보이지 않는 잠재의식까지 감안하며 입체적으로 이 아이를 위하는 사람은 세상에 나밖에 없다는 사실이.
당연하다는 걸 이미 알고 있음에도 가슴이 저리도록 서글픈 와중에, 재빨리 머리를 굴려 아이를 납득시킬만한 말을 찾아야 했다. 지금 아이가 어떤 상태인지도 빨리 파악해야 했고. 이 상황을 어떻게 지나가게 할 것인지도 결국은 모두 내몫이었다.
출근해서 12시간 가까이 일하고, 우리 아기를 만나겠다는 생각만으로 하루를 버틴 일하는 엄마에게는 이 상황들이 너무 가혹하다. 부모임에도 이렇게 이기적이고 제멋대로일 수 있다니. 다시는 만나지 않으리라 절대로 용서하지 않으리라. 거의 매일 다짐했었는데.
어제도 퇴근 직전. 문자를 받고 또 아빠가 와서 자기 마음대로 아이를 어린이집에서 찾았구나... 하며 가슴을 쓸어내리고 땅속으로 꺼지는 듯 무겁게 들어선 집에는 엄마까지 와 있었다.
자식 눈 앞에서 삿대질을 하고, 이제 뼈가 부서지게 키워놨더니 은혜를 모르고 부모를 외면한다고 비난하고 갖은 욕을 해대던 엄마가. 전에 없이 많이 풀어진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입을 연다.
너도 잘한 것 없고, 나도 잘한 거 없어. 우리가 너무 잘 지내니까 귀신이 샘을 냈다고 생각하자.
한마디를 던지고 싱크대 앞에서 무엇을 연신 닦아댄다.
아이는, 오랜만에 본 함미하비에 신이 났다. 나는 거들떠 보지도 않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재롱을 장난을 치고 있다. 보고 싶었을 것이다. 함미 하비가 보고 싶기도 했을 것이고, 엄마와 둘이서만 지내는 조용하고 단조로운 생활이 지루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 동안 친정아빠를 피해 금요일 조금 일찍 퇴근해서 수영장도 데려가고, 영화도 보러가고 했지만. 알고 있다. 저 나이 때에는 그저 집이 북적북적한 것이 되게 신난다. 그렇게 해주지 못한 것이 나도 내내 미안했었다. 조잘 조잘 끊이지 않는 수다와 재롱을 보이는 아이 덕에 넉달만의 재회가 크게 어색하지는 않아도, 그래도 그 공기를 견디는 것이 쉽지는 않아서 평소에 잘 드시던 치킨을 사오겠다며 밖으로 나섰다.
차에 앉아 치킨을 주문하고 서툰 운전으로 치킨을 찾으러 나선다. 이런 날을 위해 차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었다. 지난 겨울의 어느 날은 부모님이 관사에 아이와 나를 데려다 주고,
너는 살만한데도 우리를 도와주고 싶지 않지. 난 그런 니가 괘씸하지만 부모로서 받아들이겠다고 마음 먹었어. 하지만 넌 부모가 내민 물 한그릇 달라는 손을 차버린 나쁜 년이야.
는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하면서 평소처럼 이 집에서 아이와 자고 가겠다고 우겼다. 그런 엄마를 피해 아이를 무작정 안고 뛰쳐나왔다. 바람이 불고 너무 피곤하고 나는 내일 출근을 해야하는데, 당장 갈 곳이 없었다.
저기는 엄마 집도 아니고 우리 집인데. 내 집인데. 나 주일 저녁 아이랑 편안히 쉬어야 하는데.
소박한 안락함이 타의에 의해 좌절되고, 그게 부모라는 당황스러움과 내가 돈을 그냥 주었어야 하는 건가. 혼란스러움에 가득 차서. 두꺼운 점퍼 차림의 아이를 안고 건조하고 추운 거리를 헤매며. 너무너무 춥고 힘들다. 정말 차가 필요하다. 진짜 운전을 배워야겠다. 생각한 것이 운전을 시작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되었었다.
늘 아빠 엄마가 좋아하시는 메뉴만 샀었지만, 오늘은 내가 좋아하는 허니콤보도 하나 더 사서. 치킨을 두상자 들고 현관문 앞에 서서 비밀번호를 누르려는데. 아이와 함미하비의 즐거운 웃음소리가 시끄럽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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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소리. 그리웠었다.
아이와 더없이 행복했지만, 가끔은. 우리를 아껴주는 다른 가족이 있으면 좋겠다. 사무치게, 그리웠.었다.
하지만, 이제 그 꿈을 버리자. 이 잔인한 이혼소송의 세계로 접어들었다면. 더이상 이루어질 수 없는 헛된 희망에 감정을 낭비해선 안된다.
구겨진 얼굴을 펴고. 숨을 크게 쉬어보고. 같이 치킨만 먹고. 가시고 나면,
오늘 밤 우리 아기 발가락 만지면서 잘 수 있다.
괜찮다 정말 괜찮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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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은 너무 징그러운데. 그 북적북적함은 저도 참 반갑고 흐뭇하더라구요. 예상치못한 양가감정에 당황했지만. 이런 변수를 만나는 것은 이제 익숙하니. 또 잘 받아들였어요.
저희 엄마는 생활력이 없는 아빠를 만나 고생을 하신 편이에요. 잘생긴 서울에서 대학도 나온 남자는 엄마의 과시욕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조건이었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았고.
그런 내색을 안하고 생계를 책임지려니 힘이 많이 들었겠을 거에요. 하지만 또 아빠는 가정적이고 엄마를 예뻐해주는 사람이라 뭐 어떻게 하지도 못했을 겁니다.
본인이 엄청 고생했다고 자부하는 자의식 강한 성격이어서, 자식의 힘듦은 하찮게 느껴졌을 거에요. 몇달 연을 끊은 동안, 이뻐 마지않는 손녀를 보지 못해서. 그 사실을 구체적으로 깨달았는 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이제는 선을 지켜주십니다.
토요일 아침 아이를 데리고 친정동네로 가서 이것저것 하다가 하룻밤 자고 주일 예배를 드리고 저와 아이만 다시 돌아와요.
제가 당신들 도움없이 잘 살 수 있다는 것.
제 방식을 존중하고 동의해주어야 한다는 것을
이제는 아시는 눈치입니다.
또 언제 허물어질지 모르지만
일단 저 혼자 아이를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그 순간의 상황이 정말 병신스럽게 몹시 기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