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terally.. bird family..
20일쯤 전이었다. 나보다 우리 동네를 더 좋아하는 효 언니가 어김없이 나를 불렀다. '아직 씻지도 않았는데..'라고 투덜대니 '이제 출발했으니까 천천히 나와'라며 저 혼자 마음 편한 답장을 했다. 나는 그제야 급하게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언니는 보통 집 앞에서 나를 마냥 기다리기보단 옆 건물의 옷가게를 둘러보고 있는 편이라 도착했다는 카톡을 받고도 가방을 차근차근 챙기며 천천히 나왔다. 그런데 언니가 웬일로 건물 앞에 서서 허공 어딘가를 보고 있었다. 어딜 보냐고 물어보기도 전에 언니가 말했다.
"저기 새 둥지가 있네. 방금 새도 날아들었어."
언니가 가리키는 곳은 내가 사는 빌라의 외벽이 ㄱ자로 꺾어지는 모서리였다. 심지어 내 방이 접하고 있는 벽이었다. 저 둥지의 건너편엔 아마도 삼십 분 전까지 누워있었던 매트리스가 있을 법한 위치였다. 어쩐지, 요즘 들어 아침마다 숲 속 ASMR을 틀어놓은 듯이 크게 들리는 새 소리에 눈을 뜨곤 했다. 그냥 날씨가 따뜻해져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뭐지? 왜 난 몰랐지?"
"원래 남의 눈이 더 잘 보는 거지. 근데 어떻게 저기다가 저런 흙집을 지을 생각을 할까?"
"그러게. 쟤네는 월세 안 내도 돼서 좋겠네."
언니는 나한테 괜찮냐고 물었고, 나는 괜찮지 않을 이유가 딱히 없었다. 오히려 어린 시절 처마 있는 집에 살던 기억이 떠올라서 기분이 좋아졌다. 어떤 종의 새인지도 모르지만 괜히 옆집 이웃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어차피 진짜 옆집도 어떤 사람들인지 모르는데. 두 손바닥 만한 둥지에 괜히 103호라고 이름을 붙여보았다. 그러고 나서 며칠 후에는 다른 친구가 우리 집 앞에서 나를 기다리다 둥지를 봤나 보다. 나한테 말은 따로 안 하더니 헤어지고 나서 친구의 인스타 스토리에 익숙한 둥지 사진이 보였다. 서울에서 저런 게 흔치는 않지. 그 이후에도 방 안에 있으면 지나가던 아이나 사람들이 신기해하는 소리가 창문을 넘어왔다. 이 정도면 귀여운 에피소드다.
일이 바빠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다가 며칠 뒤에 집 밖을 보니 당황스러운 광경이 보였다. 새 둥지 아래로 숱한 배변의 흔적이 있었다. 몇몇은 벽에 묻어 있었고, 나머지는 누군가 작은 가판을 대어놓은 곳 아래에 떨어져 있었다. 아, 손바닥만큼 작은 103호에는 화장실이 따로 없다는 걸 잊고 있었다. 갓 태어난 새들이 하는 일이라곤 가만히 앉아 주는 대로 먹고 나오는 대로 싸는 것뿐이니 양이 꽤나 많았다. 반지하 창문과는 거리가 있어서 다행이다 싶다가도 아랫집과 103호의 안위가 동시에 걱정되었다. 혹시 저 냄새가 심하지는 않을까? 그렇다고 집주인 아저씨가 둥지를 떼어내면 어떡하지? 가판을 댄 걸 보니까 떼어내지 않으려나? 그러면 우린 계속 새똥과 함께 사는 건가?
생각이 꼬리를 물어 결국 구글에 검색을 했다. '집에 새 둥지'. 생각보다 새들은 도시의 다양한 곳에 둥지를 틀었다. 아파트 베란다에서도 둥지를 트는 경우가 있나 보다. 저번에 어렴풋이 보았던 새들의 모습과 둥지 위치를 보니 103호의 이웃은 제비 가족이었다. 그보다 내가 찾던 기사는 바로 이것이었다. "딱 3주만 모른 척하면 돼"(http://ecotopia.hani.co.kr/284166). 새들에게 위험한 위치나 혹은 일상생활에 너무 불편한 위치만 아니라면 최대한 자극을 주지 않고 기다려 달라는 야생동물구조센터 관계자의 아쉬움 섞인 조언이 있었다. 알을 낳고 부화하는 데 한 달, 새끼를 기르는 데 한 달. 총 두 달 동안만 기다리면 되는데, 배변과 소음의 불편함은 한 달만 참으면 새끼들이 둥지를 떠난 후 끝이 난다고 한다. 천적을 피해 일부러 도시에 집을 짓고 새끼를 품는 제비의 둥지를 더럽고 시끄럽다는 이유로 해체하고 쓰레기로 막아놓기까지 한 사진을 보면서 때로는 인간이 천적보다 더하다 싶었다. 아니, 제비의 천적도 인간이고, 제비 천적의 천적도 인간일 것이다. 지구 공공의 적이다.
역시나 인간인 내가 이 지구 공공의 적임을 몰랐던 바는 아니다. 숨을 쉰다는 사실처럼 당연하고 익숙해 자꾸 잊고 만다. 환경 보호에 대한 인지는 있지만 행동은 여러 핑계와 변명 뒤로 자꾸 몸을 감춘다. 오늘도 밥을 사 먹으러 나갈 힘도 없다며 침대에 누워 배달앱을 훑고 있자니 액정 뒤로 제비네 둥지가 있을 벽이 보였다. '일회용 수저는 괜찮아요' 따위의 항목에 체크한다 해도 플라스틱 용기는 받지 않을 수 없다. 힘은 없지만 식당에 가서라도 먹어보자며 집을 나섰다. 고작 이런 걸로 에코 프렌들리한 삶을 산다고 말하기엔 부끄럽기 짝이 없지만, 그래도 지금 당장 떠오르는 이기적인 충동을 억제하는 정도가 오늘 나의 한계였다. 이렇게 하루하루 작은 진흙 덩어리와 지푸라기 같은 행동을 하다 보면 이 세상에 손바닥 만큼의 피해라도 덜 끼칠 수 있겠지. 그러다가 언젠가 더 큰 무언가를 해낼 수 있을 지도 몰라. 몇 주가 지나면 103호 이웃들이 자연으로 돌아간다. 그 전에 내 맘 속에 각성제의 역할을 해 줄 둥지 하나쯤은 미리 틀어놔야겠다 생각했다. 잊을 수 없이 온종일 짹짹 울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