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사주를..
길가다 점집을 발견하고 고민했다. 최근에 한 번 봤으니, 이번에는 참자..했지만 발길을 돌리려다 결국 문을 열고 들어갔다.
개별 사주로 한 가지에 대해서만 본다니, 비용이 많이 들지 않을 것 같아 기분좋게 콜~ 1년에 한 번씩 보던 사주를 요즘은 자주 보게된다.
내가 관심있는 건 직장운. 퇴사를 진지하게 고민한 지 벌 써 3년이 지나고 있고, 내일이라도 퇴사할 것 같은 마음이 드는 날도.. 조금만 더 버텨보자 싶은 날도 있다.
최근에는 나의 취미생활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는 직장이 주는 안정감이 필수라는 깨달음을 얻어 감사한 마음으로 출근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퇴사에 대한 생각이 모두 사라진 건 아니다.
심심하면 고개를 쳐드는 퇴사 생각. 점집만 보면 가서 물어보고 확인하고 싶어진다. 퇴사를 해도 내 인생, 정말 괜찮을까?
답을 정해놓고, 원하는 답을 들을 때까지 점집을 찾아다니는 느낌도 든다. 어렸을 때부터 사주에 정해진 운명처럼 나의 직업이 다가왔고, 지금 조직에 있어야 한다는 말을 점쟁이로부터 숱하게 들어왔기에, 그만두면 큰일 날 것같은 환상도 갖게 되었다.
자유로이 마음 가는대로 다른 선택을 해도 인생에 큰 문제 없다는 것을 점쟁이의 입에서 꼭 듣고 싶은 건지도.. 내 결심 만으로는 퇴사를 하기에 충분하지 않은 것인지.. 선택에 대한 책임은 내가 지면 되는 것인데, 자꾸만 선택의 정당성을 다른 곳에서 찾으려 하는 것일까. 나는 이런 내가 늘 궁금했다.
점집만 보면 뭐에 홀린 듯 들어가서 직장운을 물어보는 내 모습을 보면 퇴사할 마음이 정말 강한 사람 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어제 드디어, 점쟁이에게 내가 그토록 원하는 말을 들었다. 내년부터 자유롭게 일하기 좋은 운이 20년간 들어와있고, 꼭 이 조직이 아니라도 좋을 수 있다는 말. 사업은 권장하지 않지만, 프리랜서는 오히려 좋다는 말을 듣고나니 웬걸.. 갑자기 두려워지는 이 마음은 뭘까.
이제, 나는 반대로 묻기 시작한다. 지금 조직에 있는 것도 나쁜 선택지는 아니지 않느냐고...??
점쟁이 왈, 현재 속한 조직에서도 노후에는 지금보다 훨씬 더 좋다는 말을 건넨다. 일을 잘해 일복이 많고, 죽는 날까지 일거리가 지천에 깔렸다는 말을 들으니 묘하게 안심이 되는 건 왜일까. 혹시 칭찬을 들어 기분이 좋은 건가? 내 안의 인정욕구가 치솟는 순간이었을까?
도대체 내 마음은 무얼 원하고 있는걸까. 다시 헷갈리기 시작했다. 조직생활이 너무 힘들고 맞지않다는 생각에 퇴사를 결심했는데, 점쟁이의 말 한마디에 그냥 계속 다녀볼까 하는 마음이 드는 걸 보니 허무하기도, 당황스러웠다. 좋아하는 것을 하며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퇴사를 고민했던 거 아니었나? 그냥 지금이 힘들어 투정부린 거니? 내 마음을 다시 찬찬히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혹시 일이 어려워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몇 년 후에는 관리자의 위치로 갈 것이고, 잘 해낼 자신이 없어 겁먹고 있었던 건 아닐까 싶기도 했다.
관리자가 되면 지금보다 더 잘할 수 있다는 말 한마디에 내가 모르는 내 모습이 또 있구나.. 나란 사람을 너무 단정짓지 말자는 생각도 했고.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지는 나의 몫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결국 돌고돌아 원점으로 온 것인데, 나는 도대체 무엇을 얻기 위해 매번 점을 보는지 의문이 들었다.
퇴사결심을 지지해줄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막상 그런 대답을 들으니, 새로운 변화를 선택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밀려왔고, 현재 직장에서도 인정받고 잘 다닐 수 있다면 차라리 이게 낫지 않은가 싶은 생각도 들었으니까.
완벽주의적인 나의 성향도 점쟁이는 알아봤다. 작은 실수 하나도 나혼자 부풀려 생각하고, 모든 걸 내가 다 해야하고, 잘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게 문제라고.
그렇다. 내가 나의 마음만 조금 내려놓을 수 있다면 사실 어떤 선택을 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결국, 최종 결정은 내가 해야함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매번 점집을 지나치지 못하고 들어가게 되는 건 아마도. 고민하는 과정에서 누군가와 터놓고 이야기하고 싶은 게 아닐까. 가족과는 진지하게 이런 고민을 나누기 어렵고, 대화를 하는 과정 자체가 내 생각을 정리하게 되는 계기가 되니까 말이다.
점쟁이와의 10분 대화. 나를 촘촘히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당장 퇴사를 하는 것도, 정년까지 다니는 것도 모두 최선의 선택지가 아니다.
그저 오늘 하루 충실하게, 완벽하지 않아도 나름 만족하며 배우고, 성장하며 지낼 수 있다면 어떤 선택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든다.
새로운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내려놓을 수 있다면, 지금 이 나이에도 마음껏 도전하고 실패하고 배워도 늦지 않다. 또한 현재 조직에서도 두려워하지만 않는다면, 모든 자리에서의 경험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고, 분명 얻는 게 있다.
그래. 하루하루 자족하며 즐겁게 살아가는 것이 나의 인생 목표였지. 어떤 선택을 해도 나답게 잘 해내갈 수 있을거라 믿는다. A냐 B냐의 선택을 분명하게 결론내리려 조급해할 필요가 없다.
어떤 상황과 조건도 내게 깨달음의 시간이 될 테니, 그 과정을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즐겨보자. 그러다가 마음이 한 쪽으로 많이 기울게 되면 그 때 자연스럽게 결정하면 되지 뭐. 어떤 선택도 괜찮다. 인생 그리 짧지 않다.
이렇게 오늘도, 프라이팬 위의 부침개처럼.. 쉽게 뒤집혀지는 내 마음을 관찰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