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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글인 May 22. 2024

<세 여자> 조선희 장편 소설

한국 근대사 시대적 흐름에 발담그고 있던 그녀들

독서모임에서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읽고 공감의  대화를 나눈 것이 시작이었다. 여성의 삶이라는 주제를 놓고 모여 앉은, 평범한 여자이자 딸이자 엄마인 우리의 삶에도 저마다의 굴곡진 이야기들이 지하수처럼 저 아래에 흐르고 있기에, 속내를 다 뒤집어 보여주지 않아도 어느새 곁에 다가앉은 위로의 단어들이 느껴지는 듯했다. 그다음으로 함께 읽고 싶은 책을 한 권씩 추천하기로 했는데, 여성을 주제로 울림을 느낀 자리여서인지 <세상의 모든 딸들>, <세 여자>, <알로하, 나의 엄마들> 등의 제목들이 앞다투어 튀어나왔다.


제목만 듣고도 벌써 여자들만의 유대감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 같았다. 다만, 내용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막연함 와중에 표지만으로 편견을 갖게 한 책이 있었으니, 바로 <세 여자>.



한복 입은 세 여자가 개울에서 발 담그고 있는 사진으로 개화기의 세 여자가 주인공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왠지 고리타분할 것 같다는 느낌에 이번 책은 사지 않고 도서관에서 대출해 온 나. (최신 유명한 책들과 달리, 누군가 집어가지 않고 도서관마다 고이 모셔져 있었다.) 공산주의 관련 용어, 사상적 이해와 역사적 지식이 부족했기 때문일 테다. 문장들이 쉬이 읽히지 않아서 속도가 붙지 않는 데다 아기자기 흥미를 돋우는 내용들이 아니었기에 이번 책은 망했나? 생각할 무렵, 1권 중반쯤을 넘긴 시점부터, 겉모습만 보고 판단한 내가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주세죽, 고명자, 허정숙 세 여자의 삶을, 나고 자란 태생적 배경부터 죽는 순간까지 펼쳐 보이는 구조가 기본 틀이다. 태어나보니 일제강점기인 아이들, 3•1 운동을 거치면서 조국을 되찾기 위해 주체적으로 나설 수 있음을 깨닫게 되는 소년기, 사상적인 혁명을 통해 새 세상을 꿈꾸며 운명에 뛰어드는 청년기와 그들의 사랑, 그리고 고난과 좌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 하는 생. 아! 시대가 그들을 그렇게 살도록 만들었다. 그렇게 살지 않을 수 없었다. 열정적이었으나 애처롭고, 용감하면서도 숨죽일 수밖에 없는 삶의 순간순간들이 역사적 배경 속에서 은밀하게, 또 대담하게 존재했다는 사실이 나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일제강점기, 내 나라가 없는 세상에 나고 자란 젊은이들이 느끼는 것이 어떤 정서였을지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다소 거리감이 있는 막연한 상상일 뿐이다. 유관순의 3•1 운동이나 윤봉길, 안창호 등의 독립투사들의 위대한 일대기는 이제, 장엄하되 상투적인 교과서스러운 단어들로 식상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보여주는 세 여자와 그 주변 인물들의 삶은 유명한 독립투사들이 아닌 평범한 젊은이들도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꿈을 꾸었는지, 나라와 개인의 삶을 어떻게 조율하며 새 조국의 모습을 상상했는지를 보여준다.




전체적으로 세 가지의 감상포인트를 발견했다. 우선 제목이 세 여자인 만큼, 여성에게 보수적인 사회에서 개화기로 변화하는 과도기에 지식인 신여성들이 주체적으로 변화하며 겪게 되는 모순적인 삶이다. 새로운 세상에서 여성도 할 수 있다는 꿈을 꾸지만, 여전히 여성으로서의 한계에서 싸우고 선택하는 과정들은 여성으로서 공감대의 연장선에 있었다.


두 번째로, 세 여자의 삶이 우리나라의 근대화 과정, 즉,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과 해방의 과정, 해방직후의 혼란 속에서 남북의 정부수립 등의 역사적 배경 속에 녹아들어 있는 점이다. 좌익, 우익, 빨갱이, 빨치산 등이 왜 생겨났는지, 공산주의 혁명이 새 세상을 꿈꾸는 이들에게 어떤 청사진으로 다가왔는지, 남, 북한에 정권 수립 과정에 어떤 암투와 문제점들이 존재했는지, 점점이 흩어져 있는 역사적 사실들을 직렬, 병렬로 엮어 한번에 훑어본 기분이었다.


마지막으로, 세 여자의 삶을 비교하며 태생적인 배경으로 제약되어 있던 조건들과, 그들이 삶의 순간마다 선택한 것들이 결국 어떤 결과들을 초래했는지 생각해 보게 되는 점이었다. 나는 살면서 어떤 선택들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선택하며 살 것인지, 이런 것들로 머릿속을 가득 채웠을 때 한편으로 드는 생각은, 과연 그녀들의 선택만으로 그 험난한 삶이 만들어졌던가 하는 것이었다. 치열하게 고민하여 내린 선택이거나, 당시에 최선이라고 생각한 선택이 최상의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는 것이 삶인 것이다.




사진 속 세 여자는 자신들의 삶이 얼마나 험난한 여정이 될지 모르는 채로, 선구적으로 단발을 하고 새 세상에 기여할 자신들을 꿈꾸며 시대의 흐름에 발을 담그고 있었다. 이때의 열정 어린 한 장면을 세 여자들은 훗날에도 가끔씩 떠올리며 그리워하기도, 후회하기도 한다.


책을 덮고 나서 다시 들여다보는 사진은 나에게도 아련함과 연민을 불러일으켰다. 책 읽기 전후의 느낌이 다른 것은 일상적인 것이지만, 이 책은 실존했던 인물과 사진, 실제 했던 역사적 사실이라는 이유 때문인지 더 크게 다가왔다. 편견을 가지게 했던 사진이, 우리의 근현대사에 살던 여성들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환기되고 나니, 예스러운 저 사진이 표지를 장식한 것이 화룡점정이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요즘의 감성과 동떨어진 건 사실이라 옛 사진이 주는 단점을 보완한 것 같은 양장본으로 읽은 분도 있었다. 그러나 저 사진이 없다면 이런 감상이 안 나올 것 같아서 다시 고른다고 해도 사진과 함께 읽는 걸 선택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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