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독한국사 (3)
한국인은 민주주의에 진심입니다.
군사독재에 굴하지 않고 국민 항쟁으로 민주화를 이룩했으며, 비상계엄․국정농단 등 예기치 않은 헌정 위기에도 힘을 모아 민주주의를 지켜냈습니다.
한국인은 왜 이토록 민주주의에 열성적일까요?
한국인에게 민주주의는 서구에서 온 근대 정치체제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 역사를 관통하는 민본사상(民本思想)이 한국 민주주의의 핵심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민심을 근본으로 삼는 오랜 정치관이 한국인의 민주 의식을 배양하고 한국적 민주주의를 발전시켰습니다.
우리 역사에는 민본사상을 체계화하여 국가 운영의 원리로 만든 인물이 있습니다. 조선의 설계자 삼봉 정도전입니다. 삼봉은 민본사상을 바탕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방책과 법전의 초안을 마련했습니다.
백성은 지극히 약해 보이지만 힘으로 위협할 수 없고, 지극히 어리석어 보이지만 지혜로써 속일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의 마음을 얻으면 따르게 되고, 그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배반하게 된다. 그들이 따르거나 배반하는 그 간격은 털끝만큼의 차이도 나지 않는다.
그들의 마음은 사사로운 욕심으로 구차스럽게 얻는 것이 아니요, 도를 어기면서 명예를 구하는 방법으로 얻는 것도 아니다. 백성의 마음을 얻는 방법은 오직 ‘인(仁)’일 뿐이다.
인군(仁君, 어진 임금)은 하늘과 땅이 만물을 낳고 기르는 마음으로 ‘불인인지정(不忍人之政)’, 차마 남의 고통을 외면하지 못하는 정치를 행한다. 그리하면 천하 사방 사람들이 모두 기뻐하여 어진 임금을 마치 자기 부모처럼 우러러볼 것이다.
1394년 정도전은 주군인 태조 이성계에게 자신이 지은 <조선경국전>을 올렸습니다. 훗날 완성될 조선의 대법전 <경국대전>의 틀을 짠 것입니다.
책의 맨 앞에 자리한 ‘정보위(正寶位)’는 보위를 바로잡는다는 뜻으로 조선의 건국 이념을 담았습니다. 이 글에서 삼봉은 민본사상을 역설했습니다.
권력자가 되면 백성이 약해 보입니다. 어리석은 존재로 비칩니다. 그래서 힘으로 위협하거나 꾀를 써서 속이면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거라고 착각합니다.
그게 바로 멸망의 지름길입니다. 권력자는 백성을 얕잡아보고 위협하다가 큰코다칩니다. 사람들의 눈과 귀를 가려 속이려다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국민을 위협하며 뜬금없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대통령과 국민을 속이고 밀실에서 권력을 남용한 영부인의 말로가 어떤지를, 우리는 지금 똑똑히 보고 있습니다.
정도전은 통치자가 백성을 따르게 하는 길은 마음을 얻는 것뿐이라고 했습니다. 민심을 얻지 못하면 그들은 통치자를 버리고 돌아선다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백성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까요? 삼봉은 오직 인(仁)으로 다스릴 뿐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말에서는 ‘인(仁)’을 ‘어질다’고 합니다. 어진 임금은 천지가 만물을 낳아서 기르는 마음으로 나라를 다스려 백성이 부모처럼 우러러보게 만듭니다. 그래야 나라가 편안하고 백성이 풍요롭습니다. 이것이 정도전이 말한 어진 정치입니다.
삼봉은 민심을 근본으로 삼는 어진 정치를 주군 이성계에게 주문했습니다. 사실 유학자라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말입니다.
그러나 정도전에게는 이 말이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유배와 유랑의 뼈아픈 경험으로 체득한 정치관이기 때문입니다.
우왕 1년(1375) 성균박사 정도전은 전라도 나주 거평부곡으로 유배를 갔습니다. 북원 사신을 영접하라는 명을 거역하고 오히려 사신의 목을 베어 명나라에 보내자는 과격한 주장을 펼치다가 권신들에게 미움을 산 것입니다.
유배 죄인은 소재동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곁방살이를 했습니다. ‘소재동기’에 따르면 동리 사람들은 순박한 농부들로 술을 빚으면 삼봉을 청해 이야기를 나눴다고 합니다. 그가 마을 밖에 초가를 지을 때는 동리 사람들이 모두 와서 도와주었습니다.
‘답전부(答田父)’는 삼봉이 늙은 농부와 문답을 주고받는 형식으로 바른말 해서 벌 받은 자신의 처지를 항변하는 글입니다. 여기서 그는 농부의 식견에 감탄하며 숨은 군자라고 추켜세웠습니다. 백성의 연륜과 지혜를 높이 평가한 것입니다.
정도전은 1377년 고향 영주로 옮겼으나 왜구의 침입으로 여기저기 피난을 다녀야 했습니다. 왜구에게 위협받으며 정처 없이 떠도는 백성의 아픔을 공감하지 않았을까요?
유배가 풀린 뒤에는 관직을 얻지 못해 수년 간 삼각산, 부평, 김포를 전전하며 유랑했습니다. 백성과 다를 바 없이 먹고 사는 일의 고단함을 뼈저리게 느낀 시기였습니다.
“훌륭합니다. 이 군대로 무슨 일인들 못하겠습니까?”
1383년 함흥에서 이성계 군단의 위용을 목격한 삼봉은 넌지시 속마음을 비쳤습니다. 새로운 세상을 열고 싶었지만 그에게는 힘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군대를 쓸 수 있다면 불가능한 일이 아니지요. 역성혁명의 꿈이 부풀어 올랐을 겁니다.
정도전은 이성계를 주군으로 받들어 민심을 근본으로 삼는 어진 정치를 실현하려고 했습니다. 그것은 유배와 유랑으로 체득한 백성의 식견, 아픔, 고단함에서 출발합니다. 차마 남의 고통을 외면하지 못하는 정치, ‘불인인지정(不忍人之政)’입니다.
민본사상은 어진 정치와 한 묶음입니다. 공자는 인(仁)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무차별적인 사랑은 아닙니다. 어질다는 건 차별적 사랑입니다. 착한 사람은 사랑하고 악한 사람은 미워하는 게 인의 참된 의미입니다. 그것이 바로 민심을 얻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