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서노 여대왕은 고구려와 백제를 건설한 여성 창업자다

낭독한국사 (2)

by 권경률

역사는 이야기의 보물창고입니다. 요즘 세계적으로 각광받고 있는 K-콘텐츠도 역사 속에서 아이템이나 모티브를 찾습니다. 역사에는 활극, 사랑, 음모, 배신, 희생 등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소재들이 차고 넘치거든요.


최근 한국 영화와 드라마, 소설에서 주목할 만한 트렌드가 있습니다. 여성 캐릭터를 중심으로 역사를 재해석하여 판타지와 로맨스를 접목한 작품들이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재해석이 아니라 거의 재창조 수준입니다.


만약 저보고 역사소설을 써보라고 하면 꼭 캐스팅하고 싶은 여성 주인공이 있습니다. 고구려 시조 주몽의 아내이자 백제 시조 온조의 어머니로 알려진 소서노입니다.


사실 소서노는 누구의 아내, 누구의 어머니로 쓸 캐릭터가 아닙니다. 근대 역사가 신채호는 민족주의적 시각으로 한국 고대사를 다시 쓰며 그녀를 높이 평가했습니다.


“백제 시조는 소서노 여대왕이며, 한양 하북위례성에 도읍을 정했다. 재위 13년에 죽으니 조선 역사상 유일한 여성 창업자요, 고구려와 백제 두 나라를 건설한 사람이다.”(신채호, <조선상고사> ‘열국 분립’)


그렇습니다. 소서노 여대왕입니다. 실제로는 소서노가 백제의 시조이며 고구려 또한 건설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려 시대 이후 유학자들이 편찬한 역사서에서는 소서노의 행적조차 찾아보기 힘듭니다. 김부식 등 편찬자들이 여성 창업자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삼국사기> 백제본기에서 건국 과정을 서술하며 곁가지로 이설(異說)을 덧붙였는데요. 여기에 ‘소서노(召西奴)’라는 이름이 나오고 여성 창업자의 면모가 어렴풋이 보입니다.


낭독 >> <삼국사기> 백제본기 ‘시조 온조왕’


소서노(召西奴)는 졸본 사람 연타발의 딸이다. 처음에 북부여왕 해부루의 서손 우태와 혼인하여 두 아들을 낳았으니, 맏이는 비류이고 둘째는 온조였다. 우태가 죽자 졸본에서 홀로 자식들을 키웠다.

그 후 주몽(朱蒙)이 부여에서 남쪽으로 도망하여 졸본을 도읍으로 정하고 국호를 고구려(高句麗)라고 했다. 주몽은 이웃 부족의 여인 소서노를 아내로 맞아들여 왕비로 삼았다.

주몽이 나라의 기틀을 다지고 왕업을 세우는 데 소서노의 내조가 컸다. 주몽은 소서노를 매우 사랑했으며 비류 등을 친자식처럼 대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부여에 있을 때 예씨에게서 얻은 아들 유류가 있었다. 주몽은 유류가 고구려에 오자 태자로 삼아 왕위를 잇게 했다.

이에 비류가 동생 온조에게 말했다.

“처음 대왕께서 이곳으로 도망쳐와 나라의 위업을 닦을 때 우리 어머니가 가산을 쏟아부으며 애써 도운 게 많았다. 그런데 이제 나라가 유류에게 돌아가게 되었으니, 우리는 어머니를 모시고 남쪽으로 가서 새로 나라를 세우는 것이 낫겠다.”

소서노와 두 아들은 마침내 살 만한 곳을 찾아 남쪽으로 길을 나섰다. 오간·마려 등 열 명의 신하와 수많은 백성이 그 뒤를 따랐다.


낭독해 보니 어떻습니까? 소서노 여대왕을 우러러본 신채호의 <조선상고사> ‘열국 분립’ 편을 읽어볼까 하다가 <삼국사기> 백제본기의 곁가지 설로 바꿨습니다.


저는 이 대목을 소리내서 읽을 때마다 아득한 시간 너머 상고시대의 풍경이 어른거립니다. 소서노에 대한 서술이 모호하고 감질나서 오히려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지금으로부터 2천여 년 전 압록강과 한강 유역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삼국사기>의 고구려·백제 건국기를 버무려서 소서노의 관점으로 다시 써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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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37년 압록강 북쪽 졸본 땅에 낯선 무리가 나타났습니다. 우두머리는 동부여에서 쫓겨온 자로 ‘주몽’이라고 했습니다. 부여말로 활 잘 쏘는 자를 그리 불렀습니다.


부여에서 함께 도망 나온 오이, 마리, 협보와 오는 도중에 만난 재사, 무골, 묵거 등이 그를 열성적으로 따랐습니다. 마침내 졸본에 이르자 주몽은 부하들에게 큰소리쳤습니다.


“내가 하늘의 명을 받아 이곳에 나라를 열고자 한다.”(<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시조 동명성왕’)


졸본의 여성 유력자 소서노는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예의주시했습니다.


스물두 살 청년 주몽은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습니다. 나라를 열겠다고 큰소리쳤지만 기초를 닦을 땅도, 근본을 이룰 백성도 없었지요. 궁실을 지을 재물도 없어 무리가 비류수 강가에 초막을 짓고 살았습니다.


나이 서른에 산전수전 겪은 과부가 볼 때 어린아이 불장난 같았습니다. 그래도 당장 내쫓지는 않고 좀 더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열악한 조건에서 청년이 어찌 하는지 보고 자질과 능력을 가늠하고 싶었습니다.


주몽은 괴상한 자였습니다. 그는 부하들을 여기저기 보내 자기가 “하늘 임금의 아들이요, 수신(水神) 하백의 외손자”라고 선전했습니다. 정탐 보고를 받은 소서노는 피식 웃고 말았습니다.


‘귀엽네. 그래, 허풍을 치려면 이 정도는 쳐야지. 원래 작은 거짓말은 안 믿어도, 큰 거짓말은 통하는 법이니까.’


주몽은 사람들의 흥미를 끌면 힘이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실제로 호기심을 느낀 자들이 주몽의 초막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비류수 강변으로 군중이 몰려들었습니다.


자칭 하늘 임금의 아들은 태연히 초막에서 걸어 나왔습니다. 골격이 탄탄하고 외모가 빼어난 청년이었습니다. 군중이 숨죽이고 지켜보는 가운데 주몽은 활과 화살을 집어 들고 말에 올랐습니다. 주몽이 보여준 활 솜씨는 과연 신묘했습니다. 말 달리면서 화살을 쏘는데도 백발백중이었습니다.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졌습니다.


전통적으로 중국이 창술, 일본이 검술에 능하다면 동방은 궁술에 일가견이 있습니다. 주몽은 명실공히 동방 무예의 고수임을 입증했습니다. 부하가 되겠다는 자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주몽의 무리는 날이 갈수록 불어났습니다.


문제는 재정이었습니다. 장정들을 먹이고 재우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언제까지고 초막에서 지낼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하지만 하늘 임금의 아들은 빈털터리였죠.


주몽은 ‘건너편 부족의 여인(越郡女)’을 아내로 맞기로 했습니다.(<삼국사기> 백제본기 ‘시조 온조왕’) 이웃 부족과 혼인동맹을 맺어 재정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 것입니다.


소서노를 찾아간 주몽! 연상의 여성 투자자 앞에서 청년 사업가는 야심만만하게 프레젠테이션을 했습니다.


“나는 하늘 임금의 아들이며 졸본을 도읍 삼아 나라를 세울 것”이라고 큰소리쳤습니다. 그러고는 마치 맡겨놓은 사람처럼 소서노의 재물을 요구했습니다.


그 뻔뻔스럽고 위풍당당한 태도에 졸본의 과부는 오히려 감탄했습니다.


‘이거 봐라. 물건이네.’


만약 주몽이 아부를 떨며 재물을 구걸했다면 소서노는 퇴짜를 놓았을 겁니다. 여러 세력이 뒤엉켜 생존 경쟁을 펼치는 졸본에서는 이렇게 야망이 크고 배짱이 두둑한 자야 말로 투자 가치가 높습니다. 게다가 주몽의 열띤 눈빛은 마음을 뜨겁게 만드는 힘이 있었습니다.


아들 둘을 둔 30세 과부와 야심만만한 22세 청년은 서로 통했습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소서노는 기원전 6년 61세로 세상을 떠나고, 주몽은 기원전 19년 40세에 생을 마치므로 기원전 37년에는 각각 30세와 22세가 됩니다.) 소서노는 주몽에게 투자하기로 합니다.


사실 두 사람은 사업적으로 잘 맞는 파트너였습니다. 졸본을 넘보는 세력들을 막으려면 소서노에게는 젊고 용맹한 주몽과 그의 열렬한 전사들이 필요합니다. 졸본에 뿌리내리고 나라를 세우려면 주몽은 땅과 백성, 그리고 재물을 가진 소서노와 손잡는 게 바람직합니다.


그 시대에 가장 확실한 합작 방법은 혼인이었습니다. 주몽과 소서노는 부부가 됩니다. 압록강 북쪽 졸본 땅에서 토착 세력과 신흥 세력이 혼인동맹을 맺은 것입니다.


기원전 37년 이들 연상연하 부부는 고구려를 세웠습니다. 사실상 공동 창업입니다. 주몽은 졸본에 흘승골성(지금의 오녀산성)을 쌓아 도읍으로 삼았습니다. 부분노, 부위염 등 용맹한 장수와 병사들도 영입했습니다. 소서노가 재산을 써서 도운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죠.


고구려는 건국 직후 비류국 등 졸본 인근의 소국들을 차례로 제압했습니다. 여러 세력이 난립하던 압록강 북쪽 지역을 평정한 것입니다. 정벌전도 성공적이었습니다. 태백산 동남쪽의 행인국을 쳐서 빼앗았고, 다시 동쪽으로 나아가 북옥저를 멸하여 지배했습니다.


신생국 고구려는 거침없이 성장했습니다. 주몽의 군사력과 소서노의 경제력이 상생 효과를 발휘했습니다. 주몽이 정벌전에 나설 때마다 소서노는 내심 흐뭇했습니다. 남편이 넓혀나가는 고구려를 비류와 온조, 제 자식들이 물려받을 것이라고 생각했죠. (앞뒤 정황상 이것이 혼인동맹의 조건 중 하나였을 겁니다.)


하지만 주몽은 딴마음을 품은 지 오래였습니다. 기원전 19년 4월 주몽의 아들 유리가 어머니 예씨와 함께 아버지를 찾아왔습니다. 동부여에서 도망쳐 나오기 전에 얻은 자식이었습니다. 고구려 왕은 기다렸다는 듯이 유리를 태자로 삼았습니다.


그해 9월 주몽이 세상을 떠났으니 죽을 때가 되자 친아들을 불러들였다고 봐야 합니다. 바꿔 말하면 소서노 소생에게 왕위를 물려줄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던 것입니다.


주몽은 ‘나쁜 남자’였습니다. 그는 졸본의 과부가 가진 재산과 땅, 토착 세력이 필요했을 뿐입니다. 소서노도 모르진 않았습니다. 그녀는 제 자식들의 미래를 위해 냉철한 판단을 내렸습니다. 주몽에게 잘 먹고 잘살아라, 하고 고구려를 떠나기로 한 겁니다.


목적이야 뻔하지요. 세상은 넓고 주인 없는 땅은 널렸습니다. 살 만한 곳을 찾아 자식을 왕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러려면 재물이 필요합니다. 무슨 일이든 경제력이 있어야 잘 돌아가는 법이죠. 소서노는 고구려 왕과 재산 분할을 하고 위자료도 듬뿍 받아냈습니다.


방향은 압록강 건너 남쪽으로 잡았습니다. 소서노는 비류와 온조, 그리고 10여 명의 신하를 데리고 길을 나섰습니다. 졸본 백성들도 뒤를 따랐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기다란 행렬을 이뤘습니다. 소서노의 능력과 비전을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고구려의 도읍 졸본은 쇠락했고 유리왕은 재위 22년에 국내성으로 천도하게 됩니다.)


그들은 낙랑을 지나 마한으로 갔습니다. 마한 왕에게 재물을 주고 그 땅의 서북 백여 리를 얻었습니다. 기원전 18년 소서노는 마침내 하북위례성(지금의 서울 강북으로 추정)을 도읍으로 삼고 백제(百濟)의 왕이 되었습니다.(신채호, <조선 상고사> ‘열국 분립’)


당시 신생국은 생존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백제는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습니다. 말갈족은 부유해 보이는 신생국을 약탈하려고 틈만 나면 침입했습니다. 낙랑 또한 남쪽에 있는 백제를 호시탐탐 넘보며 압박했습니다.


소서노 여왕은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요충지마다 성을 쌓고 목책을 세우게 했습니다. 낙랑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당당히 맞섰습니다. 여왕은 백제의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다가 재위 13년(기원전 6)에 6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삼국사기>는 소서노의 백제 창업기를 둘째 아들 온조의 것으로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온조가 하남위례성(지금의 서울 송파 및 강동 일대)으로 도읍을 옮기려고 한 것은 여왕이 생을 마친 직후였고, 실제 천도는 이듬해(기원전 5) 정월에 이루어졌습니다.


다시 말해 기원전 18년에 하남위례성을 도읍으로 삼아 백제를 창업한 게 아니라, 기원전 5년 하남위례성으로 천도하면서 백제 역사를 다시 쓴 것입니다.


온조가 소서노 여왕을 계승하였으므로 미추홀(지금의 인천)로 간 첫째 아들 비류의 무리도 새로운 백제를 따랐으리라 짐작됩니다. (미추홀은 물이 짜고 땅이 습해서 백성이 떠났다는 설도 있는데 신빙성이 떨어집니다. 인천은 살기 좋은 곳입니다.)


온조왕은 기원전 2년 어머니가 죽은 지 4년 만에 소서노 여대왕의 사당을 세웠습니다. 천도 후 나라가 안정을 찾는 데 걸린 시간입니다. 소서노는 백제의 국모로 받들어지며 신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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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회는 분량이 좀 길었습니다. A4 두 페이지만 쓴다는 게 세 페이지 반이 되었습니다.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와서 끊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너그럽게 봐주시기 바랍니다. 낭독한국사,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우리 함께 역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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