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독한국사 (1)
“아빠, 인생이 뭘까요?“
간밤에 초등학교 6학년생 아들내미가 잠 못 이루고 뒤척이다가 잠이 올락 말락 하는 아빠에게 물었습니다. 요즘 인생이란 무엇일까, 나는 누구일까, 왜 사는 것일까, 같은 질문들이 자꾸만 떠오르는데 그럴 때면 왠지 답답하다는 겁니다.
올 것이 왔구나. 사춘기 초입에 들어서면 아이가 정체성에 관한 고민을 한다던데…. 아빠로서 진솔한 조언자이자 현명한 길잡이가 돼주리라. 나는 마음을 굳게 먹고 아들 곁에 모로 누웠습니다. 손으로 턱을 괸 채 목소리를 내리깔고 입을 열었습니다.
“아들아, 그건 자연스러운 거야. 사춘기가 되면 정체성을 고민한단다. 독립적인 존재로서 삶의 본질을 탐색하는 것이지. 하지만 아직 어리고 경험이 없으니까 막연할 거야. 그러니 답답할 수밖에. 인생이란 과연 무엇일까? 아빠가 살아보니까 말이야….”
아빠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옆에서 드르렁드르렁 소리가 났습니다. 아들내미가 어느새 꿈나라로 가버렸습니다. 젠장, 나는 잠 다 깼는데….
정체성을 찾는 것은 청소년의 성장뿐 아니라 역사 발전에도 꼭 필요합니다. 역사에는 정체성 이야기가 많이 등장합니다. 국가와 민족의 바탕이 되는 집단 정체성입니다. 그것을 확립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가 바로 건국의 역사입니다.
아득히 먼 옛날 압록강 북쪽 지역에서 펼쳐진 고구려 건국사는 동방의 정체성과 세계관이 담긴 신화이자, 여러 종족이 힘을 모아 나라를 세운 역사의 흔적입니다.
옛적에 시조 추모왕(鄒牟王)이 나라를 세웠다.
왕은 북부여에서 태어났는데 하늘 임금의 아들이었고 어머니는 하백(河伯)의 따님이었다. 알을 깨고 세상에 강림했으니 탄생하면서부터 성스러움이 있었다.
추모왕이 순행하여 남쪽으로 내려갔는데, 도중에 부여의 엄리대수(奄利大水)를 건너게 되었다. 왕이 나룻가에 이르러 말했다.
“나는 하늘 임금의 아들이고, 어머니는 하백의 따님인 추모왕이다. 나를 위하여 갈대를 연결하고 거북 떼를 떠오르게 하라.”
말이 떨어지자마자 곧 갈대가 연결되고 거북 떼가 떠올랐다. 추모왕은 그것을 밟고 강을 건널 수 있었다.
이윽고 비류 골짜기 홀본(忽本) 서쪽 산 위에 성을 쌓고 도읍으로 삼았다.
서기 414년 고구려의 도읍 국내성 동북쪽에 위대한 정복왕의 비석이 세워졌습니다. 압록강 북쪽 통구분지에 자리한 광개토대왕비입니다. 묘호를 줄여서 호태왕(好太王)비라고도 부릅니다. 이 비문의 앞머리에 고구려 건국의 역사가 새겨져 있습니다. 광개토왕의 업적을 서술하기에 앞서 나라의 기원을 밝힌 것입니다.
고구려 건국사가 실린 <삼국사기>는 고려 인종 23년(1145)에 편찬되었습니다. 광개토대왕비에는 그보다 730여 년 전에 고구려 사람들이 스스로 인식하고 널리 알리고자 한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앞에서 <삼국사기>가 아니라 호태왕비의 건국 이야기를 낭독한 이유입니다. 고구려의 숨결이 생생하게 와닿지 않습니까?
그럼 비문에 나오는 고구려 시조 추모왕은 누굴까요?
‘주몽(朱蒙)’은 들어봤어도 ‘추모(鄒牟)’는 생소할지 모릅니다. 사실은 같은 말입니다. 활 잘 쏘는 사람을 뜻하는 부여 말을 시대에 따라 다른 한자로 표기했을 뿐입니다. 추모는 광개토대왕비를 세운 5세기 고구려 조정에서 공식적으로 쓴 표기입니다. 반면 주몽은 6세기 중국 역사서 <위서(魏書)>의 표기를 고려 시대에 <삼국사기>를 편찬하면서 인용한 것입니다.
광개토대왕비에 새겨진 고구려 건국의 역사는 신화에 가깝습니다. 추모왕은 무려 하늘 임금의 아들입니다. 어머니도 하백(河伯), 즉 물을 다스리는 신의 딸입니다. 게다가 추모는 알을 깨고 세상에 나옵니다. 황당무계하지요?
고대인들은 나라의 정통성을 과시하기 위해 건국을 신비로운 이야기로 포장했습니다. 특히 시조의 혈통과 출생은 신령하고 성스럽게 묘사했습니다. 그것은 세계관을 만들고 정체성을 부여하는 일종의 정치 이데올로기였습니다.
추모왕이 하늘 임금의 아들이면 고구려인은 하늘에서 내려온 종족이 됩니다. 하늘을 숭배하는 단군의 후예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우리 동방 사람들의 정체성입니다.
추모는 알을 깨고 세상에 강림했습니다. 알에서 태어나는 건 새입니다. 새는 하늘로 날아오릅니다. 하늘과 인간을 잇는 존재, 삼족오(三足烏)! 동방의 세계관입니다.
신화를 통해 정체성과 세계관을 공유함으로써 고대의 지배층은 나라 사람들을 통합했습니다. 그럼 신화는 지배층이 정치적 목적으로 지어내고 조작한 허구일까요?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신화에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기억도 녹아 있기 때문입니다. 고구려가 어떻게 역사 무대에 등장했는지 추론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예컨대 북부여 태생인 추모왕의 남하는 부여족이 여러 세력으로 나눠지면서 그 중 한 갈래가 남쪽으로 이동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어머니가 하백의 따님이라는 내력은 부여족의 세력 확장 방식을 알려줍니다. 하백(河伯)은 물을 다스리는 수신입니다. 하늘을 숭배하는 부여족들이 송화강과 압록강 유역에 흩어져 있던 수변(水邊) 종족들과 동맹을 맺고 세력을 키우지 않았을까요?
동맹은 혼인을 통해 공인되었을 겁니다. 이른바 ‘혼인동맹’입니다. 하늘 임금의 아들들과 하백의 딸들이 부부의 연을 맺으면 서로 믿을 수 있죠. 이제 남이 아니니까요. 만약 뒤통수를 때리면 사위나 며느리가 인질이 되어 목숨을 잃기도 합니다.
추모왕이 나룻가에서 한 말은 임금다운 권능을 나타냅니다. 왕은 자신의 근본(하늘 임금의 아들)을 밝히고 세력(어머니가 하백의 따님)을 과시한 후 나룻가 사람들에게 명합니다.
“나를 위하여 갈대를 연결하고 거북 떼를 떠오르게 하라.”
추모는 갈대와 거북을 밟고 강을 건넙니다. 물가 사람들의 협력으로 난관을 극복했다는 사실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고구려 건국은 이렇게 여러 종족이 힘을 모아 역경을 헤쳐 나간 끝에 이루어졌습니다. 그 역사의 흔적이 건국 신화에 녹아 있습니다.
자랑스러운 건국의 역사는 고구려 정체성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동방의 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촉진한 원동력이었습니다.
성장기의 사람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정체성을 찾으려면 자신의 뿌리를 알아야 합니다. 해외 입양된 아이들이 커서 모국 방문을 하는 이유입니다. 오늘 밤엔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에게 아빠가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줘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