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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제 Aug 15. 2024

안녕 에버노트, 안녕 옵시디언

노션은 스쳐지나갈 뿐.

이것은 지난 12년간 썼던 에버노트에 대한 엘레지이다.


시대마다 그 시대의 고유한 노트가 있다. 그래서 이를테면 에버노트가 초창기에 그러했듯, "Remember Everything"이라 할 수 있는 시대도 있는 것이다. 


에버노트를 쓰기 시작한 2012년 난 모든 것을 모으고 모두 다 기억하고 싶었다. 어디서 보았던 글, 신문기사, 박사논문을 위한 스크랩 용도로 거의 모든 것들을 에버노트 안에 집어넣었다. 

그렇게 12년째, 다시 열어보지도 않는 8,930개의 노트를 쌓아두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에버노트로부터 연락이 왔다. 앞으로는 일 년에 99,000원을 내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네가 가지고 있는 노트는 더 이상 쓸 수 없다고. 


사실, 에버노트는 2022년 이후로 거의 쓰지 않았다. 노션으로 갈아탔기 때문이다. 2020년 8월 한국어 버전을 출시한 노션은 한국에서의 입지를 다지고 있었고, 스타트업이나 얼리어답터들 사이에서 많이 퍼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에버노트에 있는 노트를 노션으로 모두 옮기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다. 노션과 에버노트는 데이터 구조와 포맷팅 차이로, 그대로 옮기기에는 한계점이 분명히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노션에서는 에버노트 사용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에버노트에서 노트를 옮기는 일을 하면 몇$ 할인을 주기도 했었다. 하지만, 몇 번 시도를 해보고 '새 술은 새 부대에'를 외치며 나는 노션에 새로운 글들을 모아갔다. 


나는 지난 3년 동안 열어보지도 않는 에버노트에, 그동안 내가 모았던 노트들이 날아가는 게 무서워 일 년에 45,000원씩 총 135,000원을 꼬박꼬박 내고 말았다. 그러다 일 년에 99,000원을 내야 한다고 하니, 가뜩이나 Chat GPT, Cluade, Midjourny 등 AI로 인한 디지털 월세가 15만 원을 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쓰지도 않는 녹색 코끼리한테 구독료를 주는 게 아깝게 느껴졌다. 

'그래, 이제 안녕이다.' 마음을 먹고, 노션으로 에버노트 파일을 옮기기 시작했다. 노션도 안정화가 되어 손쉽게 옮겨졌다. 그러나 웹 베이스인 에버노트 파일이 더해지자, 왠지 모르게 더욱 무거워진 느낌이 들었다. 


나는 올 초부터 Chat GPT 등 AI 커뮤니티에서 이것저것 공부 중이다. 인문학을 한 순수 문과생이지만, 파이선도 배워가며 클로드로 코드를 받아 개발자 흉내를 내기도 한다. 그러던 중, '옵시디언(Obsidian)'이라는 미래지향적인 이름을 가진 존재를 알게 되었다. 옵시디언 홈페이지에 있는 "Sharpen your Thinking"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그렇게 옵시디언을 하나씩 공부하다 보니, "세컨드 브레인"이라는 개념이 튀어나오고, 니클라스 루만의 "제텔카스텐(Zettelkaten)", 티아고 포르테의 "PARA System" 등 나만 모르고 있었던 것 같은 세상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타난, 개인지식관리 PKM(Personal Knowledge Management)라는 단어. 돌이켜 보면, 나는 대학생 때부터 프랭클린 다이어리를 쓰고, 데이비드 앨런의 "GTD (Getting Things Done)"을 마음속으로 실천해 왔으며, IDEO의 "Design Thinking"과 김정운의 <에디톨로지>를 신봉하고, 최근 베스트셀러인 최혜진의 <Editorial Thinking>까지, 나의 생각을 짜깁기하여 무엇을 만들어 내는 것에 대해 진심이었다. 


옵시디언을 쓴 지 3개월째. 

난 지금 나의 생각을 옵시디언(흑요석)처럼 뾰족하게 다듬는 중이다. 


그래서, 나는 이 시대에 PKM을 통해 무엇을 갖고 싶은 걸까?

그래도, 이렇게 브런치에 오랜만에 내 생각을 정리 중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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