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벌레가 간지럼 피듯. 이른 듯 익숙하게 솟아오르는 날갯짓. 훤하게 속이 들여다보이는 뽀얀 원피스.
너와 내가 마주걸을 때 풍겨지는 잦은 심고동 소리.
두 손이 닿는 살결들. 그동안 네가 살아온 주름들 하나하나. 눈으로 훑어본다.
프렌치 바닐라. 떨어지는 샷과 샷 사이의 무용하고 의미 없는 하강과 유약의 부드러움.
애틋하게 열매 맺힌 여름의 향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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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내게 '이런 것이다 '하고 일러주는 것처럼.
시시한 유월절과 뉴욕타임스 낱말퀴즈.
오월과 사월.
우리의 아키 카우리스마키. 매 달마다 전철역이 너와 나의 작별무대였다. 눈동자 색부터 다른 북유럽의 인물들에게서 이상하리만치 섬뜩한 뜨끔. 솜뭉치 같은 그 강아지. 그 아이 이름이 뭐였더라.
익숙함의 연속. 하지만 또다시 열. 하고도 세 시간을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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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먹이를 갓 뗀 아기 산양.
처음 한 모금씩을. 정말 처음처럼 소중히 나누어 마셨던. 열대 드라이 진.
머리털까지 멍한 오후 커피타임, 빽빽하게 나를 구성했던 성공에 대한 관념들.
나열하고 또 들여다본다. 그냥 들여다본다. 반복되어 바라보면 멍하니 잘 짜여진 각본같이. 세상살이 불필요한 것들은 걸러지기를. 그리고 간절했던 잔여물만이 내 것처럼 그 곳에 놓여지기를.
아름다움은 그냥 들여다보는 것이다라고. 생각을 점치지 않고 놓여진 연약함을 보는 것이다라고. 정기의 신부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