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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20화

헤엄치다

손발을 놀려 물을 헤쳐 가다

by 나무

방학 동안 나는 불규칙한 생활을 했다. 학교를 나가지 않으니, 자는 시간도 일어나는 시간도 늦었으며, 약속이 없으면 하루 종일 집 밖에 나가지 않고 집안에만 틀어박힌 생활을 하기 일쑤였다. 요 며칠 충전용 워치는 방전된 채로 재 기능하지 못했으며 내 몸은 늘어져, 장 보러 나가는 일도 마다하며, 인터넷으로 최소한의 것을 주문하며 지냈다.

새벽에 눈이 떠졌다. 4시 55분. 다시 자는 게 이상하리 만큼 의식이 깨어난 상황. 나는 거실로 나와 물을 끓이고 커피를 마셨다.

'학교 갈 날이 다가오는 걸 몸이 아나보다.'

책상에 앉아 다이어리를 정리하고 보다만 책을 조금 읽다가 차도 마셨다가 느슨하게 새 학기 준비를 했다가 방학을 생각했다. 전 학교에서 '내년에도 일해줄 수 있느냐?'라는 소리를 듣고 2차 면접과 수업시연 후 불합격 문자를 받고 사회생활의 쓴 물을 맛봤다. 상처가 아물지 않은 채 방학 동안 새 일자리를 찾고, 원서를 쓰고, 면접과 수업시연을 거치며, 두 세 학교에서 합격 연락을 받고도 나는 갈팡질팡을 하며 일을 계속해야 하는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그저 소모품 취급받는 이 일이, 사람을 가르치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이 이루어지는 곳이라고 믿은 마음이 무너진 곳에서, 다시 일을 하는 게 어려워.'라는 맥락으로 남편에게 이야기했을 때, 남편은 이게 사회생활이며, 정교사와 기간제 교사 사이에서 느끼는 바가 다르지 않으며, 단지 기간제 교사가 매년 해야 하는 구직활동이 너의 사회생활의 일부임을 알게 했다. 그 말이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마음은 그러지 못하고 불쑥 울컥거리고, 불쑥 자책하며 땅굴을 파는 시간을 이어가며, 마음을 다스리고자 애쓴 시간을 보냈다.


어제는 저녁 한 끼 같이 먹자고 차로 1시간 반 거리를 운전해 우리 집으로 시댁식구가 다 왔다. 그동안 나의 구직활동 상황을 다 아시고, 내일 새로운 학교로 출근하는 며느리 밥 한 끼 사 먹이며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애쓰며 사는 게 안쓰럽기도 하다만, 나의 모습이 마치 헤엄쳐 물살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아 보기 좋다고. 열심히 사는 모습이 좋다는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있으니, 내가 초점을 둬야 하는 일이 고난을 겪은 것이 아니라 고난을 헤쳐 나가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물살을 가르며 헤엄치는 그 순간 나는 물의 저항을 느끼며 힘들어하거나 물을 싫어하지 않았다. 그저 내 호흡과 몸에 집중하며 몸을 물속에 맡기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고 보니 나는 학교라는 공간을 싫어하지 않았다. 아이들과 수업시간 소통하는 일을 즐겼고, 내게 주어진 업무를 충실히 해낼 때면 성취감도 느꼈다. 물살이 휘몰아친다고, 그 물살이 나를 쳐버렸다고 순간만 기억한 채 다시 학교로 가는 일을 어려워한 내 마음이 부끄러워졌다. 그리고 나는 오늘 물살을 가르며 새로운 학교에서 하루를 보냈다. '손발을 놀려 물을 헤쳐 가다'는 사전적 의미를 가진 '헤엄치다'라는 단어를 마음에 담고, 올 한 해는 그렇게 헤쳐 가기로 다짐했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수영을 좋아하고, 잘하는지 느끼며 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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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