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시선 감옥에 갇힌 '좋은 엄마'
아기가 20개월에 접어들었다. 조금씩 말이 통하기 시작하면서 설득이 가능해졌나 싶다가도 또 전혀 안 되기도 하고 귀여운 떼쟁이와 조금씩 서로 이해의 간격을 좁히고 있다.
한번은 장화를 사러 백화점에 간 날이었다.
사이즈를 보기 위해 신겨보려는데, 아기가 절대 안 신겠다며 버티기 시작했다. 알아듣든 못 알아듣든, 엄마가 무언가 얘기하면 일단 한번은 귀 기울여보는 아기임을 알기에 아기가 아는 단어들로 설득을 했다.
“설아, 우리 비 주룩주룩 오는 날 신을 거야. 한 번만 신어보자.”
무슨 말인지 다는 몰라도 아는 단어들로 이어 붙여주면 평소엔 어느 정도 따라주는 편이다. 한번씩 싫다고 몸을 비틀고 소리를 지를때도 있지만, 아기의 화가난 호흡 사이에 자연스럽게 끼어들어 몇 번 설득해보면 기특하게 고개를 끄덕이곤 하는 아기였다.
이날은 옆에서 점원이 가세했다. 나름 ‘떼쓰는 아이 좀 다뤄봤다’는 기운을 풍기며 공룡 인형도 쥐어주면서, 나보다 큰 목소리로 아기를 달래기 시작했다.
“소파에 앉아 신어볼까? 자자, 여기 공룡 받아~ 공룡이 있네?”
애쓰는 손길을 끊고 나서기도 애매해 잠시 그냥 두었다. 계속 싫다며 뻐팅기는 아기를 보고 점원이
“엄마가 데리고 나가서 기분 좀 풀어주고 와야겠다. 한 바퀴 돌고 오세요” 하길래, 나는 다시 아이와 눈을 맞추며 말했다.
“설아, 그럼 이거 한 번만 신어보고 주스 마시러 갈까?”
이번에도 단호하게 “싫어!”였다.
아이가 내 모든 말을 거부하는 그 순간, 묘하게 당황했다. 점원이 앞서 한 말속에 갇혀 꼼짝 못하게 된 것이다.
“엄마가 이모보다 네 말을 못 알아듣네, 그치?”
“설이 발사이즈는 내가 더 잘 아네?”
점원이 웃으며 내뱉은 그 말은, 의도가 무엇이었든 간에 내게는 엄마 자질에 대한 평가처럼 들렸다. ‘능숙한 엄마’로 보이고 싶다는 내 깊은 곳 안의 욕망이 그 순간 확성기가 됐다. 그래서 평소 하지도 않던 방식으로 아이 발을 장화에 억지로 구겨 넣기 시작했다.
“설아, 한 번만 신어보자! 한 번만!!”
당연히 설이는 자지러지게 울며 “빼! 빼!!” 하고 발을 빼냈다.
그 순간 뒷통수를 세게 맞은 듯 깨달았다.
내가 갇힌 건 ‘시선감옥’이었다. 점원의 눈빛과 태도에 반응해, 내 스스로 그 안에 나를 가둔 것이다.
“나는 내 아이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다"
"나는 아이의 울음과 떼도 여유롭게 컨트롤할 수 있다”
나만의 ‘엄마 이미지’. 그 이미지가 의심받는다고 느끼는 순간, 견딜 수 없었다. 빨리 상황을 '정상'으로 되돌려놔야 된다는 생각에 조급해졌다. 그래서 하지도 않던 방법으로 아이를 압박했고, 결국 아이를 울렸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아이를 소파에 앉혔다. 평소처럼, 조급하지 않게 장난도 치고 우리가 하던 호흡대로 얘기했다.
“설아, 엄마랑 이거 한 번만 신고 주스 마시러 갈 거야. 어때?”
이번에는 고개를 돌린채 짧게 끄덕였다. 정말 딱 한 번만 신어보고, 바로 벗은 아기는 주스 노래를 지어 부르기 시작했다.
정신이 확 차려지는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