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씨에겐 동생이 둘이나 있다. 둘째 감자와 막내 감자, 우리 부모님은 감자가 풍년이다.
우리 집 감자를 소개하자면, 첫째 감자는.. 그래 나다. 둘째 감자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착실히 배워나가고 있고, 셋째 감자는 그럴만한 꿈을 찾아가고 있다. 막내 감자가 올해 들어 스무 살이 되면서 우리 감자들은 모두 어엿한 성인이 되었다.
막내 감자도 찐 어른이 된 건지, 앞으로의 삶을 진정성 있게 고민하고 있었다. 난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보다 더 큰 세상을 느끼고 시야를 넓히길 바라며 여행을 추천해 줬고, 이에 응해준 건지 모르겠지만 둘째 감자와 사이좋게 제주도로 떠나는 듯했다.
제주도는 벌써 봄이 찾아오고 있었다. 여행을 준비하는 동생 감자들을 돕고자 인터넷을 뒤적여보니, 벌써 제주에는 유채꽃이 만발해 있었다. 노란 유채꽃을 보니 정신이 혼미해졌고, 가까스로 정신을 차려보니 티웨이 홈페이지를 누비고 있었다..
일하는 나에게 제주도는 무리였기에 우리는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계획했다. 물론 ‘우리’는 나를 포함한 내 킹왕짱친이자 아내이자 여자친구인 콩자다. 아무튼 콩자의 쉬는 시간을 몽땅 훔쳐 거제도로 가져와버렸다.
거제도에는 아직 유채꽃이 피진 않았지만, 그보다 더 이쁜 동백꽃이 한창이었다. 벌이나 나비가 아닌 새가 씨를 옮기는 동백이기에, 동백이 있는 곳엔 새의 지저귐이 멈추지 않았다. 어딜 가나 있는 동백 덕에 거제도 출신 새 친구들 구경도 꽤나 할 수 있었다.
새가 산에만 있는가, 바다에도 새는 사는 법. 외도 보타니아로 향하는 여객선에 올라 갈매기 형님들께 안부를 전했다. 새우깡 봉지를 뜯자마자 달려드는 형님들 관심에 우린 몸 둘 바를 몰랐고, 봉지마저 몸 둘 바를 몰랐는지 순식간에 거덜 나 버렸다.
구름 한 점 없이 푸른 하늘에 하얀 갈매기 형님들, 거기에 따뜻한 바닷바람이 감돌았다. 여객선 밑으론 봄볕을 가득 머금은 깨끗한 바다가 있어, 이젠 정말 봄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잠시만 나가 있어도 손을 호호 불어가며 손 녹이던 때도 잠시, 주머니에 찔러 넣어둔 손에 이젠 땀이 차기 시작했다. 거리에는 어느덧 드문드문 매화가 피어나기 시작했고, 지나가는 이들의 옷차림도 가벼워져 산뜻해진 지금을 느낄 수 있었다.
니트 한 장으로도 충분해진 날씨 덕에, 두꺼운 외투는 짐이 되어버렸다. 꽁꽁 싸매 롱패딩에 파묻혀 지낼 땐 평생 겨울일 줄 알았는데, 갑작스럽게 맞은 따스함에 다가올 봄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콩자씨와 나는 봄에 추억이 참 많다. 3월에 처음으로 만나기 시작한 우리는 인생의 봄날을 맞이한 것처럼 진또배기 봄을 맞이할 수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추억들 덕에, 이맘때가 다가올 때면 그때 생각이 절로 나는 것 같다.
지금도 내 인생의 봄날이지만, 콩자씨를 처음 만났을 때가 가장 봄날 다운 봄이었지 않을까. 혼자였던 삶에서 둘이 되며 봄 같은 나날들을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알다시피 봄은 정말 짧다. 늘 봄날일 순 없듯, 나는 군대에 가게 되었고 긴긴 겨울을 함께 보내기도 했었다.
겨울 가면 봄 오고, 춥다가도 따뜻하고. 힘든 날이 있다가도 이내 좋은 날이 다가오고, 그런 것이 사람 사는 일인가 보다. 그래도 남극 같은 곳이 아닌, 사계절 뚜렷한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요즘 산불이니 지진이니 미분양이니 청년실업이니 참 겨울들이 많아졌다. 겨울들을 이겨내고자 몸을 웅크리고 핫팩을 꺼내고 난방을 켜봐도 힘에 부치나 보다. 살을 에고 발이 꽝꽝 얼게 만드는 이 겨울은 왜 이리 길게 느껴지나 모르겠다.
우리 집 막내 감자도 나름의 겨울을 맞이했다. 원하던 꿈을 여러 사정들로 잠정 포기하게 되었고 새로이 꿈을 찾아 노력 중이다. 나름의 겨울나기로 제주도로 떠나는 모습이 신경 쓰이기도 하지만, 유채꽃 가득한 제주를 떠올리니 부럽기도 한 게 참 아이러니하다.
봄 준비가 한창이다. 추위도 금방 가고 한 달만 있으면 벚꽃이 만개할 것이다. 춥지 않게 다독이다 보면 어련히 다가와 주는 봄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겨울은 벌써 잊고 다가올 벚꽃만 생각하고 있는 멍청한 감자를 보며, 겨울도 별것 없음을 생각하게 된다.
힘든 날을 지나는 동안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지만, 막상 지나고 보면 먼저 것은 잊게 되나 보다. 언젠간 다가와 줄 봄을 생각하다 보면, 언제 오셨는지 금방 찾아와 계시지 않을까.
봄 준비를 하자. 어느 때보다 빠르게 지나갈 봄을, 있는 힘껏 맞이할 준비를 하자.
이렇게 또 봄 준비를 핑계로 티웨이 홈페이지를 서성인다.
역시 봄 준비는 티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