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힐러는 내 안에 있다. “ 캘리 누넌 고어스의 [HEAL]에서 인용한 말이다.
이 말을 나는 ‘최고의 삶을 만드는 것은 모두 내 안에 있다.‘로 바꾸어 생각을 해본다.
내게는 부모님의 가득한 사랑으로 행복했던 어린 시절이 있다. 부족함 없이 잘 살았던 나는 그 행복이 영원하리라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아버지가 위암으로 일찍이 돌아가시고 작은 언니가 피부암으로 죽으면서 평온하고 행복했던 우리 집의 행복도 끝나 버렸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1년을 다닐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모든 불행의 시작을 예고받은 듯했다. 그로부터 3년 후 작은 언니의 죽음은 내게는 너무 큰 충격이었다. 사람이 왜 태어나고 왜 죽는지에 대한 강한 의문을 품었던 시기이기도 하다. 어설프게 답을 찾고자 보게 된 책들 속에 내가 찾은 답은 막연했다.
그 상태로 내게는 최악의 힘든 시기에 남편을 만나게 되었고, 그 결혼으로 나는 더욱더 힘든 시간들을 보냈어야 했다. 세상사는 것을 버거워했던 남편은 사는 법을 몰랐던지 도박에 손을 대며 빚만을 남기고 세상을 떠나게 되었고, 나는 연대보증을 서면서 그 빚을 수년간 갚았어야 했다.
그러면서 모든 삶의 원인이 내가 아닌 다른 이에게서 찾는 것을 당연시했다. 원망과 미움으로 가득했던 시간, 혼자 아이들을 키우면서 정신없이 살면서 놓친 것이 너무도 많았다. 지나고 나니 세상을 너무 몰랐고 너무 답답하게 허망한 시간을 보냈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난 나를 돌아보면서 모든 원인이 내게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고, 그토록 미워하고 원망했던 나의 마음도 거둘 수가 있었다.
아무 준비 없이 시작된 나의 세상살이에서 겪었던 모든 일들은 어쩌면 나의 모자람을 채우기 위한 과정이었으리라 생각된다. 그리고 지금보다 조금은 더 성장된 나와 마주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동안 나는 나의 뚜렷한 브랜드가 없는 것처럼 살아왔다. 엄연히 ‘엄마‘라는 자랑스러운 나의 브랜드가 있었는데 단순히 무늬만 ’ 엄마’였던 것 같다. 이런저런 핑계로 온전한 엄마로서 살아내지 못했다는 생각에 그저 미안함과 아쉬움이 남는다.
기다려주지 않는 시간을 후회로 다시 얼룩지게 할 수는 없다. 빚을 갚느라 허덕이며 넉넉하지 못했던 처지라 아이들에게 미안한 일이 많았다. 그러나 원망하는 내색도 없이 자신의 삶을 잘 살아주고 있는 아이들을 보며 나는 또 배운다.
나는 중학교 3학년 때 배우게 된 태권도가 인연이 되어 6단으로 심판생활을 할 수 있었고, 태권도에 관련하여 해외로 다니며 좀 더 큰 세상을 볼 수 있었지만, 그 세상에 내 발로 나아가기 위한 어떠한 준비도 하지 않았다. 8년 임기동안 주어진 것 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되짚는다.
나를 발전시켜 변화된 나 자신과 마주 한다는 것은 우리 아이들의 ‘엄마‘로 아이들에게 '도전'과 ’할 수 있다’는 선물을 주는 것이며, ‘엄마’라는 브랜드에 충실하는 것이라고 위로를 해보려 한다.
내게는 사랑으로 만들어진 자랑스러운 브랜드가 있다. 나이가 들어 근육은 줄고 힘은 빠졌지만 나는 ‘엄마‘이기에 강함은 남아 있다. 그것이 나의 무기가 되어 도전을 하며 성장하기를 반복한다.
나의 엄마가 그랬듯이 나도 ‘엄마‘라는 브랜드를 잘 키우고 그렇게 하고 있는 다른 ‘엄마‘들과도 나누고 싶다.
그동안 삶이 가르쳐준 것은 모든 행운과 내게 주어진 운명이 모두 내 안에 있다는 것이다. 나를 좌지우지하는 것이 외부에 있지 않음이다.
결국 최고의 삶을 만드는 것은 모두 내 안에 있고, 어느 때든 결코 늦지 않았음을 믿고 싶다.
사람을 소우주라고 한다. 그렇게 보면 모든 엄마는 우주를 품은 것이다. 우주를 품은 세상의 엄마들이여 당신의 위대함을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