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주행차에서의 개봉작 관람을 위해서는 무엇이 해결되어야 할까
자동차 안에서 영화를 보는 시대가 온다. 전기 자동차와 완전 자율 주행 기술이 그 주역이다. 전기차와 기존 내연차의 가장 큰 차이점은 엔진의 유무이다. 기존 내연기관 차는 힘을 내기 위해 큰 엔진이 반드시 필요했는데 전기차는 훨씬 작은 전기모터로 구동한다. 따라서 전기차는 내연기관차보다 탑승자가 쓸 수 있는 내부 공간이 압도적으로 넓어질 수 있다.
이에 더해 테슬라가 선도하는 완전 자율 주행 기술이 상용화되면 운전자가 전방을 주시할 필요가 없어지기에 좌석의 방향을 반대로 돌릴 수 있게 된다. 즉, 자동차 안이 일종의 거실 처럼 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자동차는 이제 '사람이 운전을 해서 목적지까지 이동하게 해주는 기계'가 아니라 '사람을 목적지까지 자율주행으로 이동시켜 주는 기계'가 된다. 운전을 직접 할 필요가 없게 되기에 차량의 내부는 업무를 보거나 미팅을 하고, 엔터테인먼트를 즐길 수 있는 다용도 공간으로 진화하게 될 것이다. 창과 벽면은 다양한 기능을 갖춘 디스플레이가 부착되어 사용자가 여러 정보를 얻고 콘텐츠를 감상할 수 있게 할 것이다.
기계 중심의 자동차에서 소프트웨어 중심의 SDV(Software Defined Vehicles)로 차량의 패러다임이 변하게 되었다.
차량 내부의 모든 창과 벽면이 디스플레이가 된다고 생각해 보자. TV 뉴스는 물론 넷플릭스, 유튜브, 스포츠 실시간 중계, 콘서트 관람까지 영상 콘텐츠를 감상하기에 최적의 공간이 만들어진다. 영화도 빼놓을 수 없다. 영화관의 가장 큰 장점은 관람에 최적화된 환경으로 3S(Screen, Sound, Seat)가 세팅되어 있다는 점인데, 자율주행차에서도 이 3S가 충분히 갖춰질 수 있다. 또 다른 사람의 방해를 받지 않고 프라이빗하게 관람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오히려 영화관보다 편하게 관람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이는 코로나 시기에 자동차극장이 흥행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럼 정말로 자동차 안에서 극장과 똑같은 개봉작 영화를 볼 수 있을까? 추상적으로 그렇게 되겠지 하는 추측은 차치하고 실무적으로 어떤 것이 해결되어야 자율주행차 안에서의 개봉작 관람이 가능할지 영화업 관계자로서 논해보고자 한다.
관람 금액의 책정은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영화 콘텐츠는 당연하게도 개봉 직후 영화관에서 가장 많은 수입을 얻을 수 있다. 현재 멀티플렉스 영화관 주말 가격은 15,000원으로 이 중 영화를 공급하는 배급사는 대략적으로 50% 내외인 7,500원을 받을 수 있다. 차 안에서 개봉작 관람 시 1인당 7,500원 정도를 받을 수만 있다면 영화 배급사 입장에서는 수익성도 유지되고 고객 접근성은 더 좋아지는 효과를 얻을 수 있어 최고의 효율을 낼 수 있다. 즉, 영화가 영화관을 통해 고객에게 판매되는 것이 아니고 콘텐츠 제공 주체와 고객이 바로 연결되므로 중간상(영화관)이 가져가는 부분만큼 가격이 낮아질 수 있다.
하지만 영화관과 달리 개인 차량 안은 물리적인 제약을 가할 방법이 없다. 몇 명이 보는지, 몇 번을 보는지를 관리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방식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방법 1. 차량 소프트웨어와 연동해 인당 과금 방식을 적용한다.
이 방법은 극장과 동일하게 인당 과금을 적용하는 방식이다. 의자 센서 등으로 콘텐츠가 틀어질 때 몇 명이 관람하고 있는지를 체크해 후불 과금되는 식이다. 단, 고객의 이동거리가 짧거나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재관람이 가능해야 하는 부분은 더 고민해야 하며, 영화를 다 보지 못한 상태에서 관람자가 바뀔 경우에는 어떻게 할지 등 정책적으로 고려해야 할 부분이 너무나도 많은 문제점이 있다.
방법 2. OTT로 개봉작을 오픈하고 콘텐츠 구매금액을 책정한다.
이 방법은 디즈니+에서 <뮬란> 실사영화를 개봉하면서 사용한 방식이다. <뮬란>은 지난 2020년 3월에 극장에서 개봉 예정이었지만 코로나로 인해 상영이 어려워지면서 미국을 포함해 디즈니+ 서비스가 이뤄지는 곳에서는 디즈니+를 통해 개봉하게 되었다.(한국과 중국 등 디즈니+가 서비스되지 않는 곳은 그대로 극장에서 개봉했다) 이에 디즈니+ 구독자는 새로 개봉한 <뮬란>을 보려면 29.99불을 추가 결제해야 했다.(지금은 무료다) 한 명이 구매하면 계정을 사용하는 여러 명이 모두 볼 수 있다 보니 금액을 매우 높게 설정했다. <뮬란> 영화 자체가 완성도는 물론 배우 역시 여러 구설수에 휘말렸다 보니 흥행하지 못한 지라 해당 가격 설정이 성공적이었는지 실패였는지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개봉 영화가 극장이 아닌 OTT로도 개봉이 가능하다는 첫 사례가 되었다.
차량 안에서의 관람은 <뮬란> 때처럼 계정 공유로 많은 사람이 돈을 내지 않고 콘텐츠를 볼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우선 물리적으로 차량 내의 좌석 수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현재 자동차극장의 경우 1대당 25,000원~30,000원의 관람료를 책정하고 있는데, 자동차에서 관람은 사실상 앞 좌석만 가능하므로 2인을 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불편함을 감수하고 3~4인이 가서 관람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에 대해서는 배급사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있다. 또한 차량 소프트웨어에 콘텐츠를 종속시키면 다른 차량에서는 콘텐츠를 볼 수 없기에 구매하지 않은 이들이 영화를 관람할 걱정은 훨씬 덜어진다. 단, 몇 명이 보는지와 보는 사람이 계속 바뀔 수 있는 부분에 대한 정책은 반드시 수립되어야 한다.
방법 3. 모든 개봉작을 제공하는 옵션을 일시불로 판매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라 생각되는데, 차량을 구매할 때 옵션을 선택하는 것처럼 차량 소프트웨어에서 개봉작 관람 옵션을 일시불로 판매하는 방식이다. 핵심은 몇 명이 보는지를 상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100만 원을 일시불로 내면 1년간 모든 개봉작을 제공한다. 아까 말했듯이 인당 7,500원을 받을 수 있으면 배급사는 영화관에서 트는 것과 동일한 수익을 얻게 되는데, 2인 기준 15,000원으로 매월 4편씩 본다 하더라도 720,000원, 4인 기준으로는 1,440,000원에 불과하다. 따라서 4인 좌석이 있는 차량 기준으로 1년간 모든 개봉작을 제공하는 100만 원이라는 금액은 생각보다 좋은 수익이 된다. 세계에서 가장 영화를 많이 보는 우리나라의 1인당 연평균 영화관람 횟수가 약 3.5~4회 정도이고, 가장 많이 관람하는 나이대인 20~30대를 보아도 10회를 넘지 못하기 때문에 적정 수준의 일시불 금액을 설정해 판매한다면 고객도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영화 배급사도 상당한 수익을 얻을 수 있는 훌륭한 BM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금액 다음으로 고려해야 할 부분은 콘텐츠의 유출 문제이다. 극장에서 개봉작을 캠코터로 찍어 인터넷에 올리는 일이 많아 문제가 컸는데, 저작권 관리가 엄격해지면서 그나마 사정이 나아진 상황이다.(어둠의 경로는 여전히 존재한다) 그런데 이제 개인 차량으로 개봉작이 들어가게 된다면 특정 장면을 사진 찍거나 동영상을 찍는 등의 행위를 막을 방법이 지금 당장은 없다.
방법 1. NBA처럼 콘텐츠 저작권 일부를 풀어준다
여기서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과연 모든 유출 or 노출을 막아야만 하냐는 것이다. 사실 지금도 OTT에서 콘텐츠 노출이 어마어마하고, 대부분의 씬은 구글에서 검색 한 번만 하면 다 나오는 시대이다. 공유경제와 참여의 시대에 저작권을 가지고 아무도 사용하지 못하도록 꽁꽁 감싸고 있는 것은 사실상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현 NBA 총재인 아담 실버는 NBA 경기 저작권을 풀어주는 것으로 오히려 NBA 인기를 증가시켰다. 경기 영상을 편집해 쇼츠를 만들거나 영상을 만드는 것을 자유롭게 허가해 주고 수익을 나눌 수 있게 플랫폼을 만들기까지 해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영상과 쇼츠를 만들고 수익을 나누게 만든 것이다. 그의 표현을 따르자면 쇼츠나 영상은 과자일 뿐이고 사람들은 식사(본 경기 감상)를 원할 것으로 생각했다 한다. 실제로 그의 이런 파격적인 전략은 대성공을 거두어 NBA의 평균 시청시간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고 한다.
영화업계도 NBA의 이런 파격적인 전략을 도입할 필요성이 있다고 느낀다. 영상 콘텐츠의 고질적인 문제점은 생명력이 길지 못하다는 것이다. 개봉한 2주 내에 흥행하지 못하면 수익을 내기 어렵다. 사람들에게 순식간에 잊혀버린다. 하지만 NBA처럼 일정 시간(30초~1분 내외)의 클립 사용을 허용해 MZ 세대의 자발적인 콘텐츠 생성을 유도한다면 영화 홍보도 자연스럽게 되고 관람객수와 관람시간도 더 늘 것이며 콘텐츠가 소비되는 수명도 길어질 것으로 생각된다.
방법 2. 카메라 사용을 막을 방법을 도입한다
이런 의견에도 불구하고 사실 저작권의 일부를 풀어준다는 것은 저작권자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두려운 부분이다. 따라서 촬영이나 영상 촬영을 막을 방법을 생각해 보자. 소프트웨어와 휴대폰을 연결해 카메라 어플이 사용되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방법이 있다. 현재 군부대에서도 사용되는 방법이므로 적용이 어렵진 않다. 아니면 카메라 어플을 켜면 AR처럼 화면에 방해가 나오도록 하는 방식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된다. 영화관에서 사용하는 DCI 인증 프로젝터의 경우 동영상 촬영 시 워터마크가 노출되어 어디서 유출된 것인지를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디스플레이에도 이와 같은 기술을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외에도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핵심은 콘텐츠 노출 문제를 영화 배급사에서 어떻게 다룰 것인지이다. 차량 내 상영을 만들기 위한 걸림돌이 될 수 있는 부분으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영화관을 설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시야각'이다. 앞 좌석에 앉은 사람의 머리에 가리지 않고 스크린 하단까지 볼 수 있어야 한다. 좌우 사이드에서 스크린을 바라볼 경우 불편함이 없을 정도여야 한다. 이 시야각 설계에 따라 단의 높이가 결정되고 해당 상영관에 최대 몇 석이 들어갈 수 있는지가 정해진다.
차 내에서 이 시야각을 검토한다고 했을 때 어려운 점은 영상이 나오는 디스플레이와 사람 간의 거리가 매우 짧다는 데 있다. 가장 쉬운 해결방법은 모두가 하나의 디스플레이를 보는 것이 아니고 각자의 좌석에서 최적화된 시야각으로 디스플레이를 배치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디스플레이 화면 자체가 작아지기에 영화관에서처럼 의 몰입감을 줄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다른 방법은 큰 디스플레이로 감상을 하되 좌석이 콘텐츠 감상 최적모드로 이동되어 시야각을 확보하는 방식이다. 이때 반드시 디스플레이는 풀 화면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영화관에서 저 멀리의 스크린을 보는 것처럼 거리감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짧은 거리 때문에 화면을 전체적으로 보지 못할 것이다. 설비가 많이 들어가고 복잡해지기 때문에 적용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한 가지 더 착안할 수 있는 것은 VR기기의 활용이다. 물리적인 시야각이 나오기 어려우니 가상의 세계에 영화관을 구축하고 VR헤드셋으로 영화를 각자 감상하는 방식이다. 이것은 자율주행차가 아닌 VR기술의 적용이 지만 자율주행차의 소프트웨어와 연동해 영화 결제 여부를 확인하는 등으로 기술 간의 연결이 필요할 수 있다. 이때의 전제조건은 VR헤드셋이 착용하기 매우 편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얼굴에 무언가를 쓰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안경 수준의 편안한 착용감이 필요하다.
물리적인 문제다 보니 기술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필요해 개발의 난항이 예상되는 부분이다. 이건 비단 영화가 아니라 다른 콘텐츠를 감상하려 해도 동일한 문제이기에 반드시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이다.
자율주행차 안에서 개봉작을 관람할 수 있게 되면 영화관의 직접적인 대체재가 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미 OTT가 영화관의 직접적인 대체제로 영화관 업계에 큰 타격을 줬다고들 얘기하지만, OTT의 주 콘텐츠가 드라마인 점을 생각해 보면 사실 직접적인 대체제로 보기는 어렵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OTT에서 크게 성공한 영화가 있는가? 막상 떠오르는 작품이 없을 거다. OTT는 특성상 언제 어디서나 자유롭게 감상이 가능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집중력 있게 보는 경우가 드물다. 영화관은 콘텐츠 감상에 최적화된 공간으로서 '콘텐츠에 대한 몰입'을 하고 싶을 때 가는 곳이기 때문에 OTT와는 다른 영역에 위치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율주행차에서 개봉작을 보게 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OTT의 자유로움과 영화관의 몰입성을 모두 가질 수 있는 공간이다. 코로나로 인해 프라이빗하고 이색적인 자동차극장이 대안으로 선택받았듯이, 자율주행차는 데이트코스이자 몰입감 있는 영화관람 장소로 충분히 기능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직접적으로 타격을 받는 영화관 업계의 반발이 심할 것이 예상된다. 자율주행차량 브랜드와 영화관의 문제가 아니고, 영화를 공급하는 배급사와 영화관 브랜드의 갈등이 심화될 수 있다. 그동안 개봉작은 보통 90일이라는 홀드백 기간이 있어 먼저 극장에서 상영한 후 90일 뒤에 IPTV나 OTT에 판매되는 방식이 암묵적으로 존재했다. 하지만 이 암묵적인 룰이 코로나라는 특수한 상황과 OTT의 성장이 맞물려 거의 붕괴되다시피 했다.
이로 인해 극장의 위상이 많이 떨어진 상태인데, 여기에 더해 프라이빗 극장과도 유사하게 기능할 자율주행차 개봉작 관람이 이루어지게 된다면 그 갈등은 엄청날 것으로 예상된다. 솔직히 이 문제에 대해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있을까 싶다. 필름 영사기가 기술의 발전으로 등장한 디지털 영사기에 의해 완전히 사라지게 됐듯이, 기술의 발전으로 대형 영화관이 축소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자율주행차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많은 시간을 이용할 새로운 사무실이자 거실이 생기는 것이다. 스마트폰이 인간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것처럼, 자율주행차 역시 삶의 일부 양식을 바꿔버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거대한 플랫폼의 등장에 저작권자도 발을 맞추어야 한다. 새로운 변화에 맞추어 비즈니스 모델을 재정립해야 한다. 기존의 판매방식을 고수하던 영화관 업계가 무너진 것에서, 넷플릭스가 아무도 될 거라 예상하지 못했던 방식인 월구독-콘텐츠 무제한 제공으로 성공한 것에서 혁신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자율주행차에서 개봉작을 감상할 수 있는 최적의 기술이 개발되었다 할지라도 저작권자가 허가를 하지 않는다면 상영 자체가 불가능하니 의미가 없어진다. 결국 저작권자가 예상되는 문제점을 안고 가더라도 더 큰 수익을 위해서 일정 부분을 내려놓고 감시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갖고 있는 것을 내놓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더 큰 매출로 돌아올 수 있도록 치밀하게 비즈니스 모델을 짠다면 저작권자와 자율주행 플랫폼 업자가 모두 만족할 수 있는 결과를 도출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미래의 자율주행차가 현재의 암울한 영화업계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 기대되는 바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