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킷리스트 6.
부캐 : 부캐릭터. 평소 나의 모습이 아닌 새로운 모습이나 캐릭터로 행동할 때를 가리키는 말.
한동안 '부캐'가 유행했다. 다양한 정체성과 재능을 보여주는 장치였다. 기억나는 부캐를 떠올려보자면... 마미손, 유산슬, 최준, 꼰대희가 생각난다.
버킷리스트를 적으면서 타인에게 보여지는 영상과 글을 만든다는 목표를 가졌다. 본캐로 여겨지는 본명을 사용하기에 뭔가 부끄러워서, 어느 정도 나를 숨길 수 있는 부캐로 새로운 별칭을 만들어보고자 했다.
물론! 살아생전 본캐로도 큰 존재감 없이 살아왔다. 그럼에도 본능적으로 '너무 나대다'보면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부담감이 들었다. 적당히 가벼운 별칭이면 좋겠다 싶었다. 유튜브에도, 블로그에도, 브런치에도, 인스타그램에도, 책에도 사용할 거라 생각하면서 고민했다.
자연스럽게 학창 시절 불리던 나의 별명을 떠올랐다.
하회탈(이건 전적으로 얼굴 때문이었고)
여나(이름 발음)
죄여나(중학교 시절 '죄민수'가 유행했었다)
개여나(‘죄'를 넘어 '개'를 붙이는 게 유행했었다)
아버지(고교 시절 걸걸했다)
정도...?
음. 크게 도움이 되진 않았다.
본명은 '연화'이다. 한자 이름이다. 화는 '꽃 화'자를 쓴다. 어디선가 이름에 꽃 화자를 쓰는 게 아니라고 들었던 거 같긴 한데...?(돈을 못 모은다나 뭐라나, 그래서 못 모은다고 우겨본다. 좋은 핑곗거리다.) 어쨌든, 그렇다. 나는 내 이름을 좋아한다. 학창 시절, 똑같은 이름을 가진 친구를 만나본 적 없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가끔 만나기도 하지만.
이름을 따서 꽃 피우라는 의미를 담고, 편히 불리는 발음을 합쳐서, '피여나'로 정했다. 맞춤법상 '피어나'가 아닌 '피여나'로 표기한 것에, 맞춤법도 모르는 모지리라고 생각하거나 오타라고 생각할까 봐 빠르게 공개한다.
<꽃 피우다 + 여나 = 피여나>
유튜브에서 아이패드를 사용해서 도장을 만들 수 있다는 영상을 보고 며칠을 고생해서 도장을 만들었다. 아이패드를 산 이후 처음 의미 있는 일이었지. 도장에 어떤 꽃 모양을 써야 하나 고민을 하다 탄생화를 찾아봤고, 음력 7월 5일 '수박꽃'의 모양을 따서 사용했다. 직접 만들어서 그런가, 마음에 든다.
본캐에도 진심이지만 부캐를 생성하고 나니 왠지 새로운 출발에 설레었다. 하고 싶은 것들, 이루고자 하는 것들에 설레었다.
다들 소싯적, 게임 캐릭터 좀 키워보셨을 거라 생각한다. 적어도 한 게임당 2~3개의 캐릭터를 키웠다. 왜냐? 전사로 시작했지만 마법사도 해보고 싶고, 궁수도 해보고 싶고. 물론 정체성은 본캐에 있었다. 주로 전사였다. 들이대는 성질이 어딜가지 않는다... 하하.
본캐가 크면 체면도 생기고 어린 티도 벗어야 하고 매너를 지켜야 하는 건 똑같다. 피곤해진다. 이때 부캐를 하나 만들면, 난이도 확 낮아진 인생을 다시 시작하는 기분이 들지. 부캐는 조금 더 느슨하고, 실수도 하고, 할 말도 하며 즐겼던 기억이 난다.
물론 '인생은 실전'이기 때문에! 리셋도 안 되고, 삭제도 안되기 때문에 본캐를 잘 양성하고자 충실이 살아가고 있다. 조금의 여유가 있다면 부캐를 하나씩 두고 사는 삶을 추천한다. 본캐를 살아가는 현생의 긴장을 풀고, 부캐로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보자. 새로운 별칭도 만들어보시길 바란다.
저마다의 뜻을 담고, 불리우면 좋겠다.
자신이 지은 그 이름에서 조금은 더 '나 답다' 여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https://youtu.be/KErf15oTb9w?si=nIGJkmO0vPM6xTQ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