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나 브런치에 기록을 자주 하는 애인이 멋져보여 나도 브런치에 가입했다. 첫 브런치에 어떤 글을 쓸까 고민을 하다가. 한달 전에 있었던 프로포즈의 기억을 더듬어 1번 글로 써보려 했다.
애인은 비혼주의자였다. 결혼 보다는 지냄을 잘 하고 자신을 아끼고 건강한 마음과 몸으로 잘 늙는데에 관심을 가지던 애인. 나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그런 애인과 죽이 잘 맞았다. 그러니까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친구로 잘 지냈던 것이겠지.
10년지기 친구와 어떻게 연애를 하게 되었는지를 짧게 요약하자면 작년 봄에 코로나 여행 규제가 풀리자 마자 절친과 베트남으로 해외 여행을 갔다. 그 여행에서 맥주를 마시거나 저녁에 수영을 하고 놀면서 함께 여행을 간 친구와 늙어감이나 여행, 결혼, 연애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그리고 그 여행에서 우연히 유학 중인 친구(현애인)를 만났고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친구와 헤어지고 다음 여행지에서 또 비슷한 연애 이야기를 했는데, 문득 어제까지 같이 놀았던 친구가(현애인) 생각 났다. 나와 즐거움(도 그렇지만 분노)을 느끼는 포인트가 비슷한 이 친구(현애인)라면 같이 만나봐도 즐겁게 친구처럼 연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그러면서도 '에이 가족같은 친구랑 무슨 연애야' 하며 마음을 접었고, 여행을 마침과 동시에 그런 생각들도 모두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여어 잘가라~ 건강하게 잘 지내다 베트남 놀러오면 또 보자~" 하고 헤어진 친구(현애인)와의 만남
여행을 다녀와서 2개월 정도 지났을까.. 친구(현애인)가 취업이 되어 유학을 마치고 귀국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한 번 만나서 놀자는 이야기를 했고, 친구(현애인)가 부모님과 같이 사는 대전 집에 다른 친구들과 놀러갔다. 그 대전 여행에서 문득문득 묘하게 머릿속에 이 친구랑 만나면 이렇게 재밌게 다정하게 지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한달 정도 시간동안 마음을 먹고 다짐을 하고 용기를 내어 고백을 했다. (고백을 하게 된 이야기는 다음 브런치를 위해 아껴두고)
그렇게 친구에서 애인이 되었다.(급전개) 그리고 여느 시작하는 연인들처럼 즐겁고 뜨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현재도 진행형).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결혼 관련 콘텐츠를 접할 때나 지인의 결혼식을 갈 때 문득문득 애인과 결혼을 하면 어떨까? 라는 생각도 했는데 그 때마다 아유 4계절은 만나봐야지~ 하며 머릿속에서 제어장치가 걸렸다.
일상적이고 아주 행복한 우리의 나날들이 이어졌다. (지금도)
만난지 3개월이 채 되지 않은 11월의 어느 주말에 애인의 대전 집에 초대를 받았다. 어머님 생신 축하를 위해 갔었는데, 맛있게 저녁을 먹고 하하호호 웃으며 축하를 드리고 집에 돌아와서 온 가족이 즐겁게 2차를 즐기고 있었다. 그 때 애인의 아버님이 취중에 "결혼생각은 있는겨~?" 하고 급 질문을 하셨고, "하면 승연이랑 해야죠~" 하고 껄껄 웃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간 가족들에게 비혼을 선언했던 애인. 아버님의 폭탄질문 + 나의 폭탄 발언, 두개의 폭탄을 맞고 얼굴이 빨개져서 "무슨 소리야, 다들 당장 조용히 해" 하며 나와 아버님을 저지했지만 이미 신난 아버님과 어머님은 있지도 않은 우리 애기 똥기저귀 갈며 육아 다 시켜주시고 유치원 입학까지 완료하셨다. 나름 신나게 자리가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다음 날 애인은 잔뜩 화가 났다. 합의하지도 않은 이야기를(심지어 한 번도 꺼내지 않았던 결혼 얘기를) 가족과 떠들어댄 탓이었다. 데이트를 하며 마음은 누그러졌지만 제대로 된 프로포즈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애인의 가족들과 같이 사진도 찍었다.
2주 후 우리는 겨울 바다를 보러 가자며 양양 여행을 앞두고 있었는데 이 때에는 프로포즈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고, 바로 준비를 했다. 프로포즈는 또 처음이라 뭘 해야하지 싶었는데, 내 좁은 자취방 거실에 레드카펫을 깔고, 풍선을 가득 채웠다. 창문에는 10년간 친구로 지냈을 때 찍었던 우리의 사진과 연애를 한 이후 데이트를 하면서 찍은 우리 사진을 인화해서 붙였다. 큰 전지를 하트모양으로 잘라 마음을 담아 편지를 썼고, LED로 된 촛불도 준비해서 켜두었다. 스피커에는 유튜브로 고백하기 좋은 플레이리스트 1시간짜리를 틀어두고 나왔다. 그리고 서울역에 도착한 애인을 데려오면서 냅다 서프라이즈로 프로포즈를 갈겼다.
준비하면서 내심 유튜브에서 본 수많은 프로포즈 영상들처럼 '혹시 너무 감동 받아서 울면 어떡하지? 아니 감동받아서 운다면 대성공이지!' 했는데.. 막상 프로포즈를 하는 나는 '어어어.. 결혼 나랑 해줄래? 할거야?' 하며 뚝딱거렸고, 전혀 생각지 못했다가 당황한 애인도 '어어어 그래 알겠어' 하며 고백을 받아줬다. 막 감동받아서 눈물 흘리는 그런 모습은 미디어의 환상이었나.. 원래 프로포즈라는게 이런건가 싶기도 했고..
이때까지만 해도 애인은 나의 추진력이 이정도까지인지 알지 못했을 터
얼레벌레 프로포즈를 마치고 심지어 여행까지 다 다녀와서 프로포즈 꾸몄던 거리들을 정리했는데, 애인은 "요소가 엄청 많아서 굉장히 오빠다웠던 프로포즈였어." 라고 후기를 남겼다. 애인이 꿈꿨던 프로포즈는 어바웃타임에 나온 것처럼 "자다 깨서 대강 받는 고백"이라는 말도 덧붙였고. 여하튼 만난지 88일만에 우당탕탕 프로포즈를 마무리 했고 폭풍같은 추진력으로 결혼을 준비하고 있는 요즘이다. (참고로 오늘은 우리가 연애한지 만난지 131일째 되는 날이다.) 새해에 일도 너무 바쁘지만 결혼을 하나하나 준비하는 과정이 즐겁다. 주변에서 받는 농담섞인 기대도 축하도 다 감사하고 행복하다. 이제 긴 글로 브런치를 열었으니 결혼을 준비하는 하나하나를 여기에 글로 남겨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