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포즈를 하고나서 가장 먼저 물었던 질문이다. 결혼에 대한 생각이 크게 없었던 애인은 결혼식에 대한 로망이 없었다. 안할 수 있다면 행사를 안했으면 좋겠다고 했고, 하더라도 부산스럽지 않고 최대한 소박하게 하고 싶다고 했다. 나 역시 관심이 크게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축가나 대략의 분위기를 상상은 해봤었다. 무엇보다 남들 다 하는 공장식 결혼보다는 작은 포인트라도 다른 무언가를 하고 싶었던 생각은 있었다.
"결혼식을 안하고 싶어? 그럼 결혼 팝업스토어 할까?"
10년 넘게 대행업을 다니고 있는지라 그런 셈이 빨랐다. '결혼식을 하는데 대략 이정도 돈이 들어가겠고.. 그 돈으로 이런 것들을 할 수 있겠군..' 하며 계산기를 두드렸다. 성수동에 있는 프로젝트 렌트나 관에서 운영하는 작은 공간들을 빌려서 2주정도 팝업스토어를 하면 되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입밖에 꺼내진 않았지만 순간 프로그램까지 생각해봤다. 하나. 공간 안에는 10년간 친구로 지내며, 또 연인으로 만나며 찍은 사진들을 전시한다. 둘. 우리 둘의 캐릭터로 만든 포스트잇이나 떡메모지에 축하 메시지를 받아 벽을 메운다. 셋. 포토 존을 만들거나 인생네컷 같은 기계를 대여해서 팝업에 온 손님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즐긴다. 넷. 팝업 앞에 있는 맛있는 식당과 카페를 기간 중 예약하고 식사를 함께 하고 차를 즐긴다. 다섯. 마지막으로 우리들의 얼굴을 넣어서 만든 기프트를 선물하면? 세상에 없던 우리만의 결혼(식은 아니지만..)이 되겠어! 이렇게 하면 바빠서 못온다는 하객도 없을거고 2주나 하니까 원하는 날짜를 잡아서 식 대신 할 행사를 해도 되고.. 너무 좋겠는데? 라는 생각까지 순식간에 했는데.
"그만 생각해. 평범한거 하고 싶어."
애인은 나를 너무 잘 알고 있었고, 팝업스토어라는 말을 듣자마자 바로 차단했다. 웅 그래.. 돈이 비슷하게 드는 것이나 그런 것은 상관 없었고 애인은 최대한 신경쓰지 않고 부산스럽지 않게.. 주례 없이 축사나 축가도 없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여차하면 부모님 집이 있는 익산 마당에서 국수를 끓여서 하자는 농담도 했다. 얘기했던 것중에는 익산집 마당이 제일 끌렸지만 여튼 최대한 평범한 것으로 해보기로 했다.
"주말에 박람회 예약했는데 같이 갈래?"
형태와 니즈가 결정되고 나면 진행은 늘 빠르다. 이야기를 나누고 난 후 평일에 몇개 업체의 후기와 견적을 체크해보고 웨딩박람회에 신청했다. 박람회를 가기 전에 검색을 좀 하고 계획을 세웠다. 예산 항목도 짜보고 우리가 가용한 예산의 범위도 넣어봤다. 생각보다 머릿 속에 대략적인 그림이 그려진다. 이제 박람회만 다녀와서 구체화를 하면 되겠다. 플래너를 끼고 할지, 내가 직접 할지도 정하면 되는데.. 플래너 수수료를 대략의 인건비라고 생각했을 때에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았다. (이 분들 일도 내가 일하는 대행업과 비슷하다고 크게 느꼈다.) 그래서 플래너를 끼고 내가 좀 더 적극적으로 개입 하는 것으로 대략 마음을 정했다. 그리고 주말을 기다렸다.
알아야 할 것이 이렇게도 많은 거대한 결혼 산업
"와 여기 진짜 공장 같다."
박람회에 처음 와서 느낀 기분이었다. 혼인율이 낮아진다는 뉴스 속 말이 무색하게 느껴졌다. 대기하는 사람도 둘러보는 사람도 정말 많았고, 우리도 그 컨베이어 밸트에 올라서 차례를 기다렸다. 박람회 프로세스는 다음과 같다.
[ 1. 플래너 상담 및 설명 > 2. 각 업체 투어 > 3. 플래너 견적 상담 ]
플래너 분께 전체의 프로세스와 대략의 결혼 일정을 들었다. 중간중간 궁금한 것들을 질문하고 메모를 했다. 그리고 두번째가 업체 투어인데, 업체는 꽤나 많았고 흔히들 말하는 스드메(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를 체험해보고 결정하는 것들이 주요한 일이었다. 10개월 뒤에 결혼을 하는데도 뭐 이렇게 할 것들이 많고 바쁠까. 스드메 외에도 신혼여행이나 가전, 예물, 한복 등 다양한 웨딩 관련 업체들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각 업체를 투어하고 난 후에 다시 플래너에게 와서 견적 상담을 받는다. 견적상담까지 다 받고 예복, 스드메 등 몇가지는 계약을 하고 나왔다. 이렇게 돌고나니 4시간이 지나있었다.
메이크업 시연도 받아 볼 수 있어 재밌었다.
"나 무슨 로켓 위에 올라가있는 것 같아"
박람회를 다녀온 저녁. 삼겹살집에서 소맥을 크게 한잔 들이킨 애인이 얘기했다. 그도 그럴만 했다. 결혼을 결심하고 이야기 한지도 1개월 전, 프로포즈를 한 것도 2주 전, 우리가 연인으로 만난것도 아직 네달이 채 되지 않았다. 충분히 혼란스러울 수 있다는 것을 간과했다. 이왕 하는 것이라면 빠르게 잘 해내고 싶어하던 나의 마음과 다르게, 비혼을 주장했던 애인은 이게 맞나 하며 단계마다 계속 물음표가 찍혔다고 했다. 이야기를 듣고 잠시 고민을 하다 '우리 지금이라도 조금 천천히 할까? 마음이 너무 급하고 피곤하다면 후년에 해도 나는 괜찮아.' 라고 말했고 애인은 고개를 저었다. 누군가는 이렇게 진행해야 결혼이 진행된다는 것을 애인도 주변을 통해 들었다고 했다. 그렇게 한참동안 폭풍처럼 진행되었던 한달간의 속이야기를 나눴고 서운했던 것, 아쉬웠던 것, 또 좋았던 것들을 하나씩 꺼내어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이제 하나씩 착착 잘 해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그래 그럼 우리 한번 잘 해보자' '응 그러자' 하고 소맥 한 잔 더 크게 들이켰다.이왕 공장식 결혼 산업에 뛰어든 것 누구보다도 똑부러지게 잘 해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