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우리를 구하는 '신혼여행' 그 빛과같은 네 글자
대행사 11년차인 나. 일 외의 것들을 할 때에도 시작하기에 앞서 계획과 예산을 꼭 세워놔야 마음이 편하다. 10개월도 넘게 남은 결혼도 마찬가지였다. 일단 박람회와 플래너분에게 들은 프로세스를 머리속에 가지고 계획을 세워나갔다. 대략의 항목과 일정을 차트를 엑셀에 쭉 써놓고, 세부적으로 각 단계별로 나와야 할 아웃풋과 둘 중 누가 담당 하는지를 정리해뒀다. 만들어진 계획표를 이미 결혼한 동기들에게 보여주고 빠진게 있는지를 검토해달라고 했다. 거의 없지만 역시 실제 해본 사람들의 피드백은 달랐다. 내가 놓친 신부입장에서 불편했던 것이나 아쉬웠던 디테일 몇가지를 체크해주었다. 계획이 완성되었다.
다음은 예산이다. 단계별 계획에 맞추어 얼마의 금액이 드는지를 플래너, 유튜브나 블로그 후기, 아는 지인들을 통해 채워두었다. 그리고 실제로 들어갈 예산 항목을 분리해서 두고나니 대략 어느정도의 금액이 들고, 어느정도 자금을 어떻게 운용해야 할지가 대략 보였다. 역시 이미 결혼을 해본 동기들 몇에게 예산서를 보여주었고 생각지 못한 지출 포인트를 알려주었다. 그런 항목들은 10%정도씩 예산을 반영하고 변동성이 큰 항목은 예비비를 넣어서 조금 더 계획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여기까지 하고나니 이 대략의 프로세스와 돈의 흐름이 완전하게 머릿속에 들어왔다.
그래, 시작이 반이라고 계획은 끝났고, 이제 계획대로 착착 진행만 하면 되겠다! 라고 생각했다. 공부를 완벽하게 해두었다고 생각했고 재미도 있었다. 우리가 우리 돈을 쓰는 프로젝트이고 실행이 어려울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냥 시간대로 착착 하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 있었다. 회사의 프로젝트는 보통 진행 될 때에 인건비(기획, 실행비)라는 개념이 투입된다. 그래서 준비에 준비를 위한 최소한의 기간을 산정하여 투입을 결정하고, 빠르게 빠르게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결혼은 그렇지가 않다. 여러가지 업체들이 관여되어있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일정을 내가 원하는 때에 딱 몰아서 할 수가 없다. 우리가 원하는 일정을 먼저 이야기 하면, 업체가 가능한지 체크를 먼저 하고 업체에서 가능한 일정을 정해주면 거기에 맞추어서 우리는 몸과 마음과 돈을 준비한다. 그러다보니 10개월을 남기고 있는데에도 생각보다 뭘 할 수 있는 것들이 없다. 마음은 홀가분하게 착착 끝내버리고 싶은데, 실상은 대부분 기다리는 것이 우리의 일이다. 이정도면 차라리 결혼 두어달을 남기고 매일매일 집중해서 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
그런 우리를 구한 것이 있다. 바로바로 신.혼.여.행.(두-둥) 긴 결혼 준비로 지겨워질 때면 자연스레 신혼여행지를 이야기한다. 이 기나긴 행사들이 끝나고 신혼여행 가면 너무 즐겁고 재밌겠다. 정말 행복하게 놀 수 있겠다는 등등의 이야기다. 10월 말에 결혼을 하는 우리는 '죽은자의 날'행사가 껴있는 멕시코시티로 신혼여행을 갈 것이다. 죽은자의 날 행사를 소재로 하는 애니메이션인 '코코'를 몇번이나 돌려보고, 퍼레이드에서 할 코스튬 복장을 사기도 하고, 프리다칼로 분장을 하면 재밌겠다고 농담을 하기도 하고(농담 아님), 백종원선생님이 다녀온 멕시코시티 전통시장을 유튜브로 미리 둘러보기도 한다.
남은 10개월정도 동안 준비를 하면서 더 지루하게 기다리는 것들이 많겠지만 우리는 결국 잘 해낼 것이라고 생각한다. 준비가 지루 할 때 만졌던 계획과 예산 엑셀파일들을 만지작 거리면서 이렇게 신혼여행 이야기를 하면서 버텨낼 것이다. 결혼식은 오늘부로 265일 남았고, 신혼여행은 266일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