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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fety Jay Jan 25. 2023

쫄지마 영국 유학 #1:청혼 공약

두 살 아기와 함께한 어쩌다 영국유학

코시국으로 멈춘 세상 뛰어넘기

01화. 청혼 공약

 

차가운 것 같지만, 살짝 벌어진 셔츠의 단추 사이로 가슴속을 시원하게 만들어줄 것만 같은 초겨울 바람이 부는 2019년 11월 경, 나와 사랑하는 아내는 너무나도 소중하고 귀여운 딸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살을 베는 듯한 차가운 바람이 부는 12월, 우리 세 가족은 각종 뉴스에서 코로나19 감염병이 전 세계적으로 전파되고 있다는 끔찍한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리고 정부에서는 마스크 착용의무 도입, 모임금지, 실내영업점 영업제한 등 숨 막히는 규제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봄이 되면 우리 아기에게 파릇파릇한 새싹도 보게 해 주고, 아가 친구들도 소개해주고, 아이가 살아갈 반짝반짝 미래가 보이고 아름답고 포근포근한 세상을 빨리 보여주고 싶었던 나와 아내의 꿈은 산산조각 나게 되었다. 회사에 출퇴근해야 하는 나를 제외하고, 아내와 아기는 몇 달이 지나도록 하루종일 집안에 갇혀 지내야만 했고, 집 벽에 걸린 '행복한 집, 돌아오고 싶은 우리 집'이라는 글귀가 무색하게, '나가고 싶은 집, 떠나고 싶은 집'으로 느껴지고 있었다. 그저 유모차라도 끌고 커피숍에 가서 소소한 일상이라도 즐기고 싶었는데, 우리는 주말에도 집에서 갇혀 배달시킨 커피만 마실 수밖에 없었다. 더 속상한 것은, 너무나도 보고 싶었던 세상 속 우리 아기의 환한 미소 대신에 아기 입을 가린 주름 진 마스크만 보일 뿐이었다.

이렇게 우리 가족은 다른 가족들과 마찬가지로 코로나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삶에 조금씩 지쳐가기 시작한다.



어느 날 갑자기 서랍 속에서 아내가 꺼낸 말
오빠의 결혼 공약, 유학. 기억나?

 

매일매일 집에 갇혀 육아전쟁을 하며 똑같은 일상을 보내던 중, 문뜩 아내가 나에게 말을 건넸다. “오빠, 나한테 청혼할 때 결혼하면 유학 한번 데려가준다고 했던 거 기억나? 그러면 우리 유학 언제 갈 거야? 계획은 있어?”. 나는 아내의 갑작스러운 유학 이야기를 듣고, 우리나 아기가 코로나애 걸리면 위험하니까 일단은 코로나가 좀 끝나고, 아기가 더 크고 나서 다시 생각해 보자고 아내에게 말했다. 


하지만 한번 마음을 먹으면 꼭 해내야만 하는 그런 아내의 성격을 내가 잠시 잊고 있었나 보다. 아내는 그 이후에도 몇 날 며칠을 유학이야기를 꺼내며 끈질기게 나의 의지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사실 내 마음속 한편에는 유학을 준비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워낙 영어에 자신감이 없어서 계속 주저하게 되었고, 아내의 이야기를 회피하게 되었다. 어느 날 가장 좋아하는 치킨을 맛있게 먹고 있는 나를 향해 아내는 살짝 가시 돋친 것 같지만 아주 따가울 것 같지는 않을 정도의 절묘한 수위로 구성된 문장을 나에게 날리기 시작한다. 


“오빠, 일단 오빠는 유학이라는 것을 가고 싶어? 오빠가 만약 유학을 가고 싶다면 언제 가려고 하는 거야? 우리 아기가 좀 더 크고 코로나가 진정될 때쯤이면 최소 5년 정도는 걸릴 텐데, 그러면 오빠 나이는 40대 중반이야. 오빠는 영어공부는 전혀 한 적이 없는데 그때 가서 준비하면 유학이 진짜 가능하겠어? 준비하다가 50살 넘겠다. 오빠도 이제 조금 있으면 40살, 아니 불혹이 되는데, 그냥 이렇게 꿈도 없이 맨날 똑같이 회사만 다니면서 가만히 있을 거야? 오빠는 어떤 40대가 될 건지 계획이 없어?". 


갑작스러운 아내의 말은 그동안 일을 핑계로 자기 발전은 뒷전으로 미루고 있던 내 모습을 직관하게 만들었고, 무엇보다도 내가 조금 있으면 불혹이 된다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실을 깨닫게 했다. 불혹. 나도 아주 많은 나이가 아니라는 것은 안다. 근데 내가 그리던 불혹의 모습은 조금 더 발전적이고, 꿈을 갖고 열정적으로 살아가지만 여유가 넘치는 그런 멋진 모습이었는데, 지금의 나의 모습은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었다. 초라하게 느껴졌다. 이런 나와는 대조적으로, 아내는 하루종일 육아로 힘들었을 텐데, 늘 아기를 재우고, 내가 잠들었을 때도, 혼자 새벽 늦게까지 영어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으며 지식을 확장시키고 있었다. 내가 늘 핑계처럼 생각하던 육아는 결코 아내에게는 핑계가 되지 못하고 있었다. 나한테 미안했다. 그리고 딸에게 부끄러웠다. 


결국 나는 이렇게 20살에 내가 하고 싶언던 유학을 가보겠다는 나의 의지에 따른 결정으로 장기국외훈련 석사 유학 대상자 선발시험을 준비하기로 했다. 계획은 간단했다.


자격요건 맞추기 : 회사에서 요구하는 2년 이내에 취득한 일정 기준의 TOEIC점수

유학프로그램 대상자 지원하기

선발 : 토익점수와 그간 업무 기여도, 성실도, 향후 조직기여도 및 발전 가능성을 종합적으로 고려 


여기서 일단 나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토익점수였다. 지원 자격의 핵심이자 선발과정에 정량평가가 반영되기 때문이었다. 20대에 한 달 하다가 때려치우기를 몇 차례 반복하고, 학원비라는 비싼 대가를 지불한 채로 영어를 포기하고 산지 어느덧 15년, 내가 과연 영어공부를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 다시 되기 시작했다. 여하튼 유학을 준비하기로 마음을 먹었으니 서점으로 발걸을음 옮겼다. 그리고 제일 용하다는 LC와 RC 문제집을 구매했다. 집에 돌아와 보니, 아내는 내가 열심히 공부할 수 있도록 방 하나를 서재로 탈바꿈 시켜주었고 책상도 깨끗이 정리해 주었다. 나는 책상에 앉아 빳빳한 새 문제집을 최대한 빨리 너덜거리게 만들겠다는 의지로 페이지를 넘겨가며 읽고 풀기 시작했다. 


하지만 좀처럼 토익점수가 쉽게 오르지 않았다. 첫 응시점수는 400점대였고 그 이후에는 500점대와 600점대를 왔다 갔다 하며 점수가 상당히 오래 머무르고 있었다. 이렇게 되면 유학프로그램 지원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할 수 있겠다는 두려움이 생기기도 하였다. 물론 공직 생활을 하면서 아내와 함께 육아, 집안일을 병행하다 보니, 공부할 시간이 새벽밖에 없어서 짧은 기간만에 토익점수를 올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더 큰 난관은 수면시간 감소로 점점 소진된 나의 체력이었다. 이렇게 생각보다 토익점수가 잘 오르지 않으면서 나는 나대로, 육아를 거의 전담하다시피 한 아내는 아내대로 지쳐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몇 달을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는데 그동안 코로나로 연기되었던 유학대상자를 다시 선발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제 지원하기 전까지 나에게 남은 기회는 딱 한 번의 토익 시험이었다. 이번에 점수를 받지 못하면 거의 1년을 다시 기다려야 하는 극악의 상황이 전개될 수 있을지 모른다고 마음 한편 어디에서는 어느 정도 받아들인 채, 아내에게 이제 곧 장기국외훈련 석사 유학대상자를 뽑는다는 사실을 알리기로 했다.  




예상과는 다른 전개. "오빠, 코로나가 우리가 발전할 수 있는 기회야." 


아기를 재우고 어느덧 또 하루가 시작된 새벽 0시. 나는 아내와 테이블에 마주 앉아 우리의 유학준비는 내년을 기약해야 할 것 같다는 마음으로 유학대상자 선발공고 사실을 알렸다. 나의 표정을 지켜보던 아내는 귀여운 토끼처럼 눈을 동그랗고 반짝반짝 뜬 채로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을 나에게 건넨다. “오빠, 내가 책을 읽으면서 느낀 건데, 모든 사람들이 지금은 발전할 수 없다고 느끼는 그 시기가 바로 가장 많이 발전할 수 있는 기회래. 내 생각에는 코로나 때문에 세상이 멈춰있는 지금이 바로 우리가 발전할 수 있는 기회인 거 같아. 오빠, 우리 어차피 유학을 가기로 했으면, 영어점수 꼭 만들어서 이번에 가자. 오빠가 그동안 업무 실적이 좋으니까 영어점수만 나오면 충분히 뽑힐 수도 있어. 지금이 기회야. 오빠는 할 수 있어”.  


이 당시 아내가 아에게 해준말은 지금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 중 하나가 되었다. 


"세상이 멈쳐있거나 머뭇거릴 때, 그것을 뛰어넘는 사람만이 발전할 수 있다"



아내의 말에 나는 다시 한번 죽을힘을 다해 마지막 토익시험을 준비하기로 다짐했다. 나는 아내의 도움을 받아 그동안 나의 공부스타일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둘이서 같이 이야기를 해보니 나는 구체적인 공부계획이 전혀 없는 채로 하루하루를 하고 싶은 부분 위주로 공부를 하고 있었고, 목표점수 획들을 위한 파트별 공부 전략 또한 없었던 것이다. 이것은 아주 비 효율적이고 방향 따위는 전혀 없는 그런 공부방식이었다. 나는 아내와 상의하여 파트 7의 공부시간을 줄이고 그동안 내가 가볍게 여겼던 파트 5에 조금 더 비중을 높이기로 계획을 짰다. 그리고 가장 소홀히 하던 복습을 철저히 하기로 했다. 


드디어 토익점수가 발표 나는 날, 새벽 아침 6시. 나는 주차장에 정차된 차안에서 핸드폰으로 조심스럽게 점수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맨날 점수를 확인할 때마다 실망만 했던지라, 또 실망하게 될까 봐 두려웠다. 과연, 이번에는 몆 점일까? 이렇게 떨리는 마음을 움켜잡은 채로 토익성적을 조회해 본 결과, 나는 목표 점수를 얻을 수 있었다. 자포자기한 심정이었는데 필요한 점수가 나와줘서 너무 기뻤다. 그리고 그동안 설움과 마음고생 때문인지 처음으로 차 안애서 혼자 펑펑 소리를 지르며 울기시작했다. 나는 아내에게 전화했고, 아내도 잠을 못자고 나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축하했다.


그리고 마침내, 코로나로 인해 유학을 꺼리는 분위기가 팽배하여 지원자가 거의 없었고 별다른 어려움 없이 해외 석사유학 대상자로 내가 선정되는 연락을 받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이런 시기에 무슨 유학이냐, 아기가 2살이라 가서 영어도 잘 못 배울 테고, 돌아와서 다 까먹을 텐데, 굳이 지금 왜 가냐며 나를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기쁜 마음으로 아내에게 전화했다. 


여보, 우리 이제 유학가! 청혼공약 이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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