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살 아기와 함께한 어쩌다 영국유학
영국은 머나먼 땅으로의 유학을 계획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떠날 때, 중요한 고려사항 중 하나는 우리 가족들이 2년간 살집을 구하는 것이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내가 유학생활을 할 지역은 영국 Bournemouth 지역으로 정해졌고, 아이의 Nursery도 먼저 구했기 때문에, 그 주변에서 가까운 집을 집중적으로 알아봐야 했다. 또한 딸의 교육을 위해 영국 Nursey에 많은 비용을 투자하기로 결정한 만큼, 당초 2,000 파운정도로 예상한 렌트비(월) 비를 1,500파운드 이하로 낮추기로 했다. 비용을 낮추다 보니, 우리 부부가 꿈꾸던 정원 딸린 마루바닥의 2층 집에서 사는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폭풍 유튜브와 검색포털 검색을 통해 많은 유학생들이 꾸역꾸역 살 집을 다들 잘 구하고 있었고, 몇 가지 부동산 매물검색 사이트를 알 수 있었다. 그중 Rightmove란 부동산 사이트가 가장 보기 편해 보였다. 우리 부부는 사이트를 쓱 둘러보기 시작했고, 생각보다 매물이 좀 있어서 집을 구하는 게 생각보다 쉬울 수 있겠다고 느껴졌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구글맵으로 동네 사진을 확인하면서 나름 세 가족이 살기 적당한 매물 5개를 추려놓고 보니, 어느덧 새벽 두 시였다. 근무하면서 유학을 준비하다 보니 매일 새벽 한 시, 두시정도에 자는 게 어느덧 일상이 되었고, 또 늦게 자는 우리를 원망하며, 영국 부동산 업체에 메일을 보내는 것은 내일 하기로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매물 증발, 정신줄 증발
다음날 저녁, 내가 찜해놓은 매물을 관리하는 부동산 업체들에게 이메일을 보내기 위해 컴퓨터를 켜고 사이트에 접속하였다. 그리고 나와 아내는 순간 너무나도 경악했다. 우리가 추려놓은 매물들이 수증기처럼 몽땅 증발한 것이다. 영문을 모른 채 우리는 부랴부랴 남아있는 매물들 중 그나마 괜찮은 곳을 추려서 바로 부동산에 계약 의사를 밝히는 이메일을 보냈다. 우리 부부는 그래도 2년 동안 살 곳이니까 이 중에서 연락이 오는 곳이 있다면, 우리가 입국하는 날에 맞춰서 뷰잉 약속을 잡고, 괜찮으면 바로 계약하는 방향으로 생각했다.
근데 일주일이 지나도 부동산으로부터 단 한통의 이메일도 오지 않았다. 나는 다시 부동산 사이트를 접속해 보니, 우리가 추려놓은 매물 중 한두 개 정도 빼고 또다시 증발해 버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않갔다. 이메일로 보낸 문의가 무한정으로 사라지는 듯한 느낌이었고, 그 공허함이 우리 부부를 조여왔다. 출국날까지 시간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고, 잘못하면 집을 구하는 데 있어서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하고 출국 준비를 하게 될 수 있었다. 어쩌면 영국에 입국해서 집을 바로 구하기는 생각보다 어려울 수 있다는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하지만 그렇다고 2살 된 딸이 있는데 길거리에 나앉을 수도 없고, 에어비엔비에서 오래 머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영국 집 구하기"를 집중적으로 검색하면서 혹시라도 좋은 방법이 있는지 찾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런던에서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집을 구하는 업무를 대행해 주는 한인교민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많은 하인분들이 부업으로 유학생을 대상으로 픽업, 집 구하기, 아이학교 등록 등과 같은 생활정착 서비스를 많이 하고 있었다.
생활정착 서비스
나는 본머스에서 거주하는 교민들 중에 생활정착 서비스를 하시는 분들을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우여곡절 끝에 우리를 도와주실 분과 연락이 닿았다. 우리의 사정을 듣고, 흔쾌히 생활정착 서비스를 해주시기로 했다. 물론 공짜는 아니다. 그래도 열심히 누군가가 우리 가족이 살집을 구하기 위해 직접 매물을 찾아보고 뷰잉을 대신해 준다는 사실이 마음 한편으로 든든했다. 하지만, 2살 아이가 거주하는 것을 꺼리는 집주인들이 꽤 있어서 뷰잉조차 못한 경우도 꽤 있었고, 뷰잉을 한 곳은 사진과는 달리 너무 노후화되어 거주 환경이 좋지 못했다.
그러던 중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은 입국시점과 비슷한 시기에 한국에 돌아가는 유학생 가족들이 사는 집이 있는데, 우리가 괜찮다면 사진만 보고 입국 전에 미리 계약을 하는 것이 괜찮은지 물어보셨다. 우리만 괜찮으면 집주인이나 부동산이랑 협의해서 부동산 사이트 매물등록을 하지 않고 바로 직거래를 추진하신다는 생각이었다. 나쁘지 않았다. 매물등록만 하면 경쟁자만 늘기 마련이고, 지금처럼 매물이 씨가 마른 상황에서는 일단 나쁜 조건은 아닌 것 같았다.
거주하시는 한국인 가족분들로부터 사진을 전달받았고, 아주 넓지도 않고, 이쁜 정원이 바로 있는 그런 집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깨끗해 보였고 세 가족이 사는데 그럭저럭 괜찮아 보였다. 무엇보다 아이의 Nursery와 걸어서 5분 거리였다. 내가 다닐 학교까지는 도보로 40분 이상은 걸리지만, 자전거로 15분 정도 걸려서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거주자분과 집적 통화를 하면서 주변 이웃들과 주거여건, 궁금한 점들을 물어보고 나니, 한편으로는 마음이 안정되기도 했다. 물론 한국인 정서상 집을 집적 보지 않고 계약을 한다는 게 상당한 리스크가 있다고 느껴지긴 했지만, 가족들이 영국생활에 빨리 적응하기 위해서는 이 정도 리스크는 감당해내야 했다. 우리 부부는 결국 영국에 입국하기도 전에 우리가 살집을 계약하면서 집 구하기 프로젝트를 마무리했다.
비록 영국에서의 집 찾기 여정은 어렵고 스트레스도 많았지만, 그 과정에서 얻은 경험과 성취감은 절대 잊지 못할 것 같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 가족들 모두 영국에서의 생활을 즐길 준비가 어느 정도 된 것처럼 느껴졌다.
툭하면 집주소
영국 유학을 하면서 집을 미리 구하고 나서 보니, 집주소가 있어서 은행계좌 신설, 중고차 구매, 자동차 보험가입, NHS 등록 등을 차질 없이 진행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해 보면 집을 빨리 구하지 못했다면 속상한 일이 많을 수 있겠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집주소가 없으면 가장 불편한 것이 은행 계좌신설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영국은행 계좌를 만들지 못한다는 것은 한국에서의 거금을 영국으로 송금할 수 없다는 것이고, 이것은 초기에 정착하는데 필요한 여러 가지 문제들을 처리하는데 들어갈 자금을 운영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처음 입국하게 되면 중고차도 구매해야 하고, 가구도 사야 하는데 이 모든 것이 늦어지게 된다. 또한 집 주변에 NHS(국가건강서비스)를 등록을 할 수도 없게 되는데, 이는 아이, 아내가 아플 때 바로바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없게 될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만약에 초등학교에 다니게 될 자녀를 동반한 가족유학인 경우라면, 아이가 다니게 될 학교를 정하는 것도 상당히 지체될 수 있다. 이처럼 집주소가 없으면 뭐 하나 정착하는데 해결될 수가 없어 거의 생활이 불가능(?)한 상황에 봉착할 수 있다. 다행히 우리는 집을 빨리 구해서 영국유학 준비와 정착을 척척척 진행시킬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