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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fety Jay Sep 13. 2023

가족의 영국 유학기 #7: 안녕 로나

두 살 아기와 함께한 어쩌다 영국유학

제7장. 안녕 로나


짧은 것 같기도 하지만 길었던 것 같았던 유학 준비기간이 자나고 드디어 영국으로 출국하는 날이 다가왔다.

그간 코로나가 자꾸 확산되어 영국의 출입국에 대한 통제가 강화되어 유학일정에 지장이 있을까 걱정도 되었지만, 다행히 우리가 출국할 때 즈음에는 영국의 코로나 통제가 조금씩 완화되었고, 다행히 무사히 출국을 할 수 있었다. 비록 한국의 짐들 정리하고 영국에 가지고 갈 짐을 싸는 과정은 굉장히 고되기도 했다. 무엇을 가지고 갈지를 정하는 것도 어려웠지만, 어떤 것들을 처분할지 고민하는 것이 생각보다 에너지 소모가 많았던 것 같다. 오랜 시간 걸려 나와 아내는 결국 우리 세 가족이 살던 집, 가구, 자동차를 다 처분했고, 마지막은 8개의 여행용 가방이 유일한 재산으로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아까워서 처분하지도 못하고 오랜 시간 소유하던 무수히 많은 물건들을 왕창 처분하면서 허탈함과 공허함도 느껴졌다. 그리고 결국 남은 것은 믿고 의지할 우리 가족들뿐이라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출국 전날 여러 감정과 기대로 가득 차 밤을 지새웠다. 유학이라는 것은 어릴 적 나의 꿈을 실현하고, 청혼공약을 이행하는 것이고, 가족들과 함께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경험을 쌓고 성장할 기회이기 때문에, 우리 가족의 인생에서 큰 전환점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생각이 많아졌다. 나와 와이프는 주어진 2년이란 시간 동안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올바른 방향성을 찾아내고, 우리 미래의 가능성을 확인하기로 다짐했다. 그리고 더 넓은 시야로 세계를 여유 있게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자고 의지를 다졌다.



출국전 비행기를 바라보던 두여자

출국 날이 되어서, 우리는 공항 벤을 불러 인천공항으로 이동했다. 갑자기 자식들과 손녀딸과 이별을 당한 슬픔을 애써 참고 있는 듯한 미소를 보여주시는 부모님들이 공항에 나와주셨다. 어른들과 부둥켜안고 잠시만 이별 인사를 나누면서 한국의 가족, 친구들과 잠시의 떨어지는 것에 대한 허전함, 쓸쓸함, 그리움 등이 내 마음속에 스멀스멀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밖에 없는 우리 부모님은 아프지 않으셨으면 하는 걱정, 형님 가족들과 다 함께 모여 북적북적을 좋아하시는 장인어른께서 허전해 하시진 않을지 걱정, 두 살 된 손녀딸과 갑작스러운 생이별을 하게 해 드린 것에 대한 미안함들이 순간적으로 내 마음속에서 질서 없이 교차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복합적인 감정의 혼합을 뒤로 살포시 미뤄둔 채,  새로운 경험과 성장의 기회를 만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며, 우리 가족의 무한한 가능성을 마음속으로 약속하였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영국으로 떠났다.


안녕 K 로나야. 



로나 덕분에 눕코노미석을 타고 편하게 올 수 있어서 우리 가족들은 오랜 비행시간을 그럭저럭 잘 버텨냈다. 특히 2살짜리 딸이 큰 사고 없이, 울지 않고 잘 참아주며 와서 너무 기특했다. 오자마자 이곳저곳에서 들리는 영어는 우리가 영국에 있음을 실감하게 만들었다. 배를 채우기 위해 공항 마트에 들러 간단한 요깃거리를 사려고 편의점에 들렀고, 생각보다 빠르게 나의 영어가 시험대에 올랐다. 더듬거리며 계산은 했지만, 마지막에 종업원이 하는 이야기는 들을 수 없어서 당황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영수증 드릴까요?"를 못 알아먹은 것이다. 그래도 영어를 사용한다는 것이 굉장히 신기하고 재미있기도 했다. 


이처럼 히드로 공항에 첫발을 내디딘 우리는 간단한 공항 편의점 투어 후 아이를 등에 업고 무려 8개나 되는 캐리어를 가지고 2시간을 걸려 꾸역꾸역 이동했다. 계약한 집에 입주하기까지 4일이 남아있어서 우리는 와이프가 예약해 둔 주변 에어비엔비에 밤 9시가 되어서야 도착했다. 대충 짐을 풀고, 씻고 다 같이 잠을 청했다. 근데 아이는 새벽 2시에 깨어서 놀아달라고 난리가 났고, 아내는 새벽 4시에 깨서 아침 밥상을 차려주었다. 오는 내내 비행기에서 잠을 자면서 시차가 안 맞아서, 에어비엔비에 머무는 내내 새벽 2시에서 4시 사이에 온 가족이 깨버렸다. 어김없이 아내의 아침 밥상은 새벽 4시마다 기게처럼 차려졌다. 시차가 안 맞는 것은 좀 힘들긴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온 가족이 새벽에 깨서 부대끼고 있는 상황들이 너무 재미있는 경험이었고, 우리를 위해 숙소에서 머물며 먹을 수 있는 음식재료들을 챙겨 와 꼬박꼬박 끼니를 챙겨준 아내에게 너무 고마웠다. 


에어비엔비에 머무는 4일 내내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차도 없고, 유모차도 없고, 할 수 있는 게 딱히 없었다. 하지만 4일간 우리는 무엇을 하려고 하기보다는, 시차를 적응하며 컨디션을 회복하는 것을 목표로 두었다. 비가 살짝 그쳤을 때는 동네 한인마트 투어 한번 가서 간단히 장도 보고, 주변 공원을 산책하면서 외출을 2~3번 정도 나갔던 것 같다. 마을에는 한국과 비교가 안될 정도로 넓은 공원과 큰 나무들이 가득했고, 영국 스러운 정원 딸린 집들이 끝없이 펼쳐졌다. 우리는 영국에 왔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떠올렸고, 한편으로는 꿈만 같아 믿기지 않았다


중간중간 한인교회에서 닭죽, 석수, 과자, 반찬 등을 푸짐하게 가져다주셔서 외국에 오자마자 한국인의 정도 느낄 수 있었다. 비록 나는 무교인이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따뜻하게 챙겨주신 목사님의 배려는, 우리 가족이 영국생활을 시작하는 데 있어서 안도감과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4일 뒤, 우리가 기대하던 영국의 우리 집에 입주를 했다. 이렇게 우리의 영국 삶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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