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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fety Jay Sep 24. 2023

가족의 영국 유학기 #11: 2살 아기가 유럽여행?

두 살 아기와 도전한 영국유학

가족이 함께 영국생활을 하면서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바로 영국과 유럽여행을 틈틈이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영국 국내여행(스코틀랜드 등)은 물론이며, 독일,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정도는 수월하게 차로 이동할 수 있고, 불과 몇십만 원 정도의 비용으로 길어야 두세 시간 만에 스페인, 포르투갈, 스위스 등을 다녀올 수 있다. 

물론, 두 살짜리 딸을 데리고 업고 짐을 가지고 여행 다니는 게 힘들지 않겠냐는 주변 이야기들도 꽤 있었고, 솔직히 우리도 걱정이 된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런 기회가 우리 곁에 다가왔는데, 우리 가족이 어떻게 모른 척 지나칠 수가 있을까?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한두 살 아기를 데리고 여행 다니는 엄마아빠도 꽤 있었고, 우리도 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우선 딸은 아직 어린이집을 다니기 때문에 방학을 딱히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나의 대학원 방학, 주말 또는 연휴 등을 활용해 유럽을 탐험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우리 가족을 홀린 벨기에 와플


여행지중 가장 많이 기억에 남는 곳 중 하나는 당연히 제일 처음 갔던 벨기에였다. 영국에서 자동차로 5시간 정도면 접근이 가능하고, 내가 대학생 시절 배낭여행을 가서 너무 좋은 기억이 많아서 한번 다시 가보고 싶은 곳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벨기에 여행 중 기억이 남는 것은 체류기간 내내 거의 온 가족이 와플을 입에 달고 살았다는 것이다. 길 가다가 아름답게 줄을 서서 자신을 데려가줄 손님들만을 넋 놓고 기다리는 와플들은 아이들을 주로 아이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꼬시고 있었다. 먹음직스러운 딸기와 화이트 그림의 콜라보레이션으로 아이들의 시선을 사로잡기도 하고, 어떤 녀석들은 초콜릿 속에 빠져서 헤엄치며 아이들에게 자신을 먹어보라고 유혹하기도 했다. 당연히 우리 2살짜리 딸은 본능적으로 와플을 사달라고 엄마아빠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사실 우리는 이런 종류의 음식을 딸에게 거의 먹이지 않지만 딸도 여행 와서 좋은 것을 보는 것뿐만 아니라, 새로운 것을 먹고 맛을 느끼면서 즐길 권리가 있다는 아내의 결심으로 온 가족이 와플을 나눠 먹기 시작했다. 두 살 딸은 거의 너무 좋아하는 고구마를 먹는 강아지 마냥 와플을 신나게 먹기 시작했다. 


다 먹은 뒤에는 길에 서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브뤼셀 그랑플라스 광장에서 뺑글뺑글 돌면서 춤을 추기도 했다. 브뤼헤 마르크트 광장에 들렸을 때도 온 가족이 와플을 먹었었는데, 다 먹고 난 뒤 갑자기 딸이 종탑 앞에 서서 부르부르 떨며 기저귀에 응가를 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 중 한 곳에서 영역(?)을 표시하고 있는 딸의 모습은 아마 평생 있지 못할 것 같다.     


랜드마크는 딸랑구 놀이터


프랑스 여행의 경우에는 에펠탑 앞에서 땅에 뿌려진 모래를 가지고 놀던 딸의 모습이 가장 기억이 많이 남는다. 모두 다 에펠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느라 정신없을 때, 아직 어린 딸은 오로지 노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었는데, 이 모습이 너무 재미있고, 귀엽기도 했다. 나중에 딸이 커서 우리한테 파리까지 가서 자기가 에펠탑 앞에서 제대로 사진도 안 찍고 놀기만 했냐는 푸념을 들을 생각을 하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나와 아내는 재미있게 놀고 있는 딸을 번갈아 보며 에펠탑을 감상했다. 그 자체만으로 마법 같고 아름다운 프랑스의 대표적인 랜드마크다움에 입이 벌어졌다. 신기한 점은 모두 다 알다시피 탑은 철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녹이 슬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시간대별 빛이나 날씨에 따라 하늘을 배경으로 반짝이는 빛을 내뿜는 것만 같았다. 우리는 파리 여행 중에서 에펠탑 주변을 두세 번 정도 방문했는데, 시내를 걸어 다닐 때, 멀리서도 높이 솟아오르는 에펠탑의 아름다움은 눈에 띄며 우리의 발걸음을 한결 가볍게 안내했다.


스코틀랜드 여행을 갔을 때도 우리 딸의 귀여운 모습은 한결같았다. 에딘버러성이 보이는 공원에 놀이터가 있는데, 딸은 뒷 배경에 멋진 성이 있는 것도 모른 채 놀이기구를 타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딸이 넓게 펼쳐진 잔디밭을 뛰어다니라 나는 이런 딸을 따라다니며 덕분에 운동을 할 수 있었다. 딸이 어리기 때문에 모든 관광지를 제대로 즐길 수는 없었지만, 세 가족이 멋지고 황홀한 스코틀랜드에서 발도장을 찍으며 돌아다닐 수 있던 것만으로 믿기지 않았다.  


아내의 여행 선물, 크리스마스 마켓 투어


그동안 살면서 접하게 된 여행 중 최고의 코스는 바로 K아내의 크리스마스마켓 투어였다. 스위스 여행 중에 크리스마스 마켓으로 유명한 바젤, 기차 타고 당일치기로 가능한 프랑스의 스트라스브루, 콜마르를 다녀오는 코스였다. 사실 나처럼 직장인 가족들이 유학 중 유럽여행은 대부분 지역별 기준으로 유명 관광지를 방문하는 패턴이다. 이 여행처럼 특정 시기에 맞춰서 크리스마스마켓을 집중적으로 다니는 경우는 전무후부한 여행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아름다운 여행은 어린아이처럼 크리스마스를 너무나도 좋아하는 아내 덕분에 탄생하게 되었다. 모든 일정, 비행기 티켓 등 여행 전반을 아내가 기획했고, 나와 딸랑구는 그저 즐기기만 하면 되었다. 


사실 나에게는 크리스마스마켓이 유럽에서 유명한 것은 영국에서 체류를 하면서 알게 되었을 정도로 생소했다. 아내가 이번 여행을 제안했을 때 사진을 찾아보니 영국의 크리스마스 마켓보다는 규모가 크긴 하지만, 계속 보다 보면 질릴 수도 있지 않을까 걱정도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우려는 아주 쓸데없는 시간낭비였다. 첫 번째 정거장인 바젤의 크리스마스 마켓은 스위스의 여유로움과 정교함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곳이었다. 직접 유럽에서 명성이 있는 크리스마스 마켓을 가서 보니, 너무나도 크고 화려한 크리스마스트리와 조명은 마치 별이 빛나는 밤하늘을 연상케 하며, 간혹 눈이 내릴 때의 그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꾸며진 고풍스러운 중세 유럽건물 사이에서 회전목마를 타는 딸과 아내를 바라보니 동화 속에 들어온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위기를 기회로, 포르투갈과 스페인 여행


최근에는 포르투갈 여행을 다녀왔다. 한국에서 접근이 어려운 곳 중 하나로 언제 우리가 가겠냐 하는 마음으로 준비했다. 사실 포르투갈과 스페인을 한 번에 갔다 오려고 한 것은 계획에는 없던 일이었다. 너무 잦은 비행과 숙소의 이동은 우리 가족이 여행하는데 어려움을 많이 느끼는 부분 중 하나였기 때문에 포르투갈 여행만 가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첫 행선지는 포르투였다. 두오로 강을 중심으로 뒤얽힌 골목과 기이한 건물들, 그리고 그 유명한 롱로이스 다리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도시였다. 특히 Ribeira 지역에는 다양한 카페와 식당에서 포르투갈의 전통 음식을 즐길 수 있었다. 포르투는 의뢰로 좁아서 세 가족이 뚜벅이로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는데, 편안함과 설렘, 예술과 문화로 우리 주변을 감싸안는 듯한 매력적인 곳이었다. 포르투갈의 마지막은 리스본이었다. 포르투갈의 대표적인 상징인 아줄레주 타일, 마누엘 건축 양식, 그리고 여러 구릉지를 지나며 아름다운 전망과 조화를 이루는 트램을 보며 정말 독특한 도시풍경을 경험할 수 있었다. 


이렇게 멋진 여행을 마무리하고 다시 영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날, 비행기 출발 3시간 전 우리에게 알림 하나가 떴다. 바로 비행 편이 취소되었다며 다른 비행 편으로 예약 변경을 하라는 알림이었다. 저가 항공사가 지연이 자주 된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 몇 시간 전에 비행취소를 통보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아내와 나는 서둘러 다른 비행 편을 알아보았지만 이날 우리가 사는 영국으로 돌아갈 비행 편은 한편도 없었다. 이때 아내가 갑자기 또 토끼같이 눈을 똥그랗게 뜨며 말했다. 


"오빠, 우리 이왕 이렇게 된 거 스페인 갈까?"    


이 말을 듣고 나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스페인에 대한 여행계획이 전무했고, 숙소도 없었다. 또 아기가 힘들어할 것도 상당히 걱정되었다. 결국 난 아내에게 집으로 가는 것이 낫겠다고 이야기했지만, 아내는 아주 조목조목 내가 왜 반대하는지를 물어보았다. 이에 응하여 난 아주 조목조목 하지 않게 똑 부러지지 않게 반대논리를 펼쳤고, 아내는 굉장히 일관된 논리로 조목조목 반박하며 나의 입을 봉쇄하였다. 결국 나의 귀는 굉장히 심하게 팔랑팔랑하며 아내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고, 아내는 바로 스페인 바르셀로나행 비행기 편으로 예약변경을 신청하였다. 다음은 리스본에서 하루 묶어야 할 숙소가 문제였다. 모든 에어비엔비가 빈 방은 하나도 없었고, 아주 비싸고 고급스러운 호텔만이 남아있었다. 결국 나는 항공사에 전화해서 이러한 상황을 설명하고 항의했고, 항공사에서는 호텔 비용(거의 50만 원)을 지원해 주겠다고 하였다. 이게 웬 횡재? 비행기삯보다 호텔비용이 더 비싼데도 불구하고 전액 지원을 해준다니 나와 아내는 갑자기 너무 기분이 좋았다. 처음에 항공권이 취소되었다는 소식으로 여행의 마무리가 굉장히 기분이 나쁘게 마무리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우리 가족이 똘똘 뭉쳐서 이 상황을 오히려 더 행복한 상황으로 반전시킨 것이 아닌가? 결국 무계획 스페인 여행도 우리는 너무나도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다시 영국 집으로 돌아올 때는, 어떠한 안 좋은 상황도 우리가 힘을 내서 긍정적인 상황으로 반전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돌아왔다. 



이처럼 우리가 영국에서 살면서 경험하게 된 유럽 여행은 우리에게 다양한 문화와 역사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다가갈 수 있는 변화를 안겨주었다. 다양성과 포용성의 중요성을 깨달으며, 세계적 시각을 키우고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경험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우리 가족의 영국 유학의 삶은 더욱 풍요로워졌고, 당장은 모르겠지만 앞으로 세상을 살아갈 우리 아가보다 폭넓은 시야를 가지며 더 자신감 있게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키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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