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ND INSIDE
리마스터링이란?
리마스터링이란 과거 음악 산업에서 원음이 녹음된 테이프의 상업용 음반(LP)을 찍어내기 위한 판본 ‘마스터’를 만드는 과정인 ‘마스터링’을 특정한 목적에 따라 다시(re) 반복하는 작업을 의미한다. 리마스터링은 과거 제품의 형태를 변형, 전환하여 마스터에 대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며, 이에 따라 최근에는 음악 산업에서 나아가 동일 산업군(문화콘텐츠 산업) 내 영화, 게임 등에서 활발히 적용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패션업과 제조업을 기점으로 여타 산업군으로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
리마스터링의 가치 확장
리마스터링이라는 용어가 만들어진 문화콘텐츠 산업에서 기술이 고도화되며, 상업 기술로의 가치가 주목받게 되자 최근에는 제조업과 패션업에서도 이를 시도하는 사례들이 나타나고 있다. 다만, 패션업과 같이 소비재를 주력 제품으로 삼는 산업의 경우, 리마스터링 양상은 다소 달라질 수 있다. 사용 이력이 있는 중고 제품을 마스터로 판단해 리마스터링을 진행할 경우, 오히려 제품의 퀄리티가 떨어져 마스터의 가치를 높이고자 하는 리마스터링의 본 목적과 괴리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이 경우 리마스터링은 제품의 설계 원리, 디자인 등 제품의 정체성을 마스터로 삼고, 이를 유지하면서 현대적인 기술과 취향을 가미하는 방식으로 리마스터링이 진행된다. 리마스터링의 적용 산업군 확장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예시가 바로 ‘닥터마틴’의 리마스터드 제이든 부츠이다. 닥터마틴은 2023년 자사의 제이든 부츠 출시 10주년을 기념하여 리마스터드 제이든 부츠를 선보였다. 마스터와 리마스터링 된 제이든 부츠의 디자인은 거의 동일했지만, 통가죽으로 제작되었던 마스터와 달리, 리마스터링 된 제이든 부츠는 재활용 폴리에스테르와 레더 프리 재료를 혼합하여 제작되었다. 즉, 리마스터링을 통해 ‘환경 보호’라는 현대의 가치를 녹여내고자 한 것이다. 이렇게 최근 리마스터링은 과거 제품을 현대식으로 재해석하기 위해 사용하는 기술로 그 의미가 확장되고 있다.
LP시절부터 있던 기술 ‘리마스터링’, 최근 더 주목받는 이유는?
사회적인 배경을 먼저 살펴보자면, 지속되는 경제 불황으로 인해 기업들이 수익이 보장되는 수단에 투자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2024년 10월, 구글플레이가 국내 애플리케이션 개발 스타트업 대표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2.7%가 현재의 스타트업 생태계 현황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비관적 전망의 주된 이유는 고금리, 고물가의 장기 지속에 따른 경기 불황이었다. 이처럼 사업의 불확실성이 계속해서 커지는 상황 속 기업들은 한정된 예산으로도 안정적인 매출을 확보할 수 있는 전략이 절실해졌는데, 그 전략으로 단종 상품에 대한 리마스터링 재출시가 대두되는 것이다. 이는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 개발에 한정된 예산을 투자하는 모험을 하기보다는, 비용과 시간이 절약되는 동시에 단종 상품에 대한 충성 고객의 수요를 충족함으로써 수익 보장성이 높은 리마스터링에 비용을 활용하여 불황에 대응하는 것이다.
현실보다는 과거에 마음이 기우는 소비자의 심리 역시 리마스터링이 부상한 배경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다. 지난해 시장조사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성인 천 명을 대상으로 '복고 문화 관련 인식 조사'를 실시한 결과, ‘옛것’을 그리워하는 주된 이유는 '현실이 너무 힘들고 지쳐서'였다. 이는 유토피아의 반대말인 '레트로토피아' 개념으로 설명이 가능한데, 경기 불황, 취업난 등 점점 심화되는 현대 사회의 불확실성이 개인의 심리적 불안을 초래하고,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겪었던 과거의 가치나 경험에 의지하게 되는데, 시장에 리마스터링 되어 돌아온 옛것에 더 큰 선호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옛것에 대한 경험이 없는 신세대 소비자 역시 아네모이아 현상에 따라 리마스터링된 제품에 긍정적 인상을 느낀다. 아네모이아 현상이란 과거의 제품, 서비스, 가치관 등을 직접 경험해 보지 못한 신세대가 느끼는 ‘생소함’이 ‘이미 지나가버린 날’이라는 시간적 개념과 만나 그리움과 동경의 대상으로 변모하는 현상을 말한다. 1990년대에 개봉한 아날로그 홍콩 영화의 리마스터링 재개봉작을 보며 당시 패션, 인테리어 등의 무드를 반영한 상업 공간이 등장하거나, 고화질 카메라가 내장된 핸드폰이 있어도 ‘빈티지’한 색감의 사진을 얻고자 빈티지 카메라를 구입해 사용하는 것도 동일한 이유에서 발생한다. 이에 따라 아날로그 감성에 현대적인 해석을 가미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리마스터링은 더욱 주목을 받게 되었다.
정책적 배경으로는 정부의 콘텐츠 지원 사업이 다각화된 것에 이유가 있다. 2023년 4월, 문화체육관광부는 한국콘텐츠진흥원과 함께 40억 원 규모의 '국내 콘텐츠 후반작업 지원 사업'을 시작하였다. 해당 사업의 목적은, 국내 OTT의 콘텐츠 보유량을 늘리는 것, 즉 라이브러리 다양화를 위해 아날로그 콘텐츠의 화질·음향 등 서비스 품질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특히 해당 지원 사업의 결과물은 마스터링을 진행한 제작자뿐만이 아닌 창작자에게도 제공되어 콘텐츠 생태계 자체를 공정하고 상생하는 환경으로 발전시키는 일에 기여하고 있다. 이에 그치지 않고 2024년 6월, 정부는 콘텐츠 산업의 국가전략사업화를 위한 구체적 실천 방안으로 리마스터링을 언급하며, 콘텐츠 산업의 발전을 위해 2027년까지 5조 원 규모의 콘텐츠 정책금융을 공급한다고 밝혔다. 이는 제작비 지원을 통한 비용 절감은 물론 문화·산업 복합단지 조성을 포함하고 있어 기존 기업의 리마스터링 진입을 비롯하여 리마스터링의 산업 활용도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AI 신경망 딥러닝 적용을 통한 기술 고도화라는 가속화 배경이 있다. 이미지 해상도 개선 분야에 최초로 컨볼루션 신경망(CNN)을 활용한 딥러닝이 적용되었고, 이후 저화질 이미지를 고화질로 전환하는 생성자 신경망과 원본 이미지와 AI 생성 이미지를 비교하는 판별자 신경망이 서로 비교, 경쟁하며 발전하는 생산적 적대 신경망(GAN)을 통해 리마스터링 기술은 완벽에 가깝게 발전하고 있다. 2020년대 이후로는 GAN을 통해 발전된 리마스터링 기술을 바탕으로 기업들이 개별적인 연구 개발을 지속하였고, 그 결과 리마스터링의 대량 생산이 가능해지며 시장 가치가 더욱 커지고 있다.
리마스터링을 활용한 사례는 어떤 것이 있을까?
1)포바이포 – 문화콘텐츠산업
포바이포는 딥러닝 AI 화질 개선 기술을 기반으로 ‘초실감화 영상 리마스터링’을 진행하는 비주얼 테크 솔루션 기업이다. 포바이포는 자사가 개발한 리마스터링 AI 솔루션 ‘픽셀(Pixell)’을 웨이브의 <내이름은 김삼순> 리마스터링에 활용하며 2005년의 재미에 몰입감을 더해주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올해에는 AI 반도체에 리마스터링 기술을 탑재한 사내 서버 설치형 리마스터링 모델을 개발하여. 외부 기업이 마스터 파일을 공유할 필요 없이 데이터센터 서버에 반도체를 직접 장착하기만 하면 리마스터링을 진행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를 통해 데이터 보안과 저작권 보호에 민감한 미국의 VFX 스튜디오, 콘텐츠 제작사를 대상으로 하는 비즈니스까지 사업 영역을 확장할 수 있게 됐다.
2)머렐 – 패션업
미국의 아웃도어 브랜드 머렐은 업사이클링 디자이너 니콜 맥러플린과 자사의 헤리티지 제품인 MOC STREAK에 대한 협업 컬렉션을 출시하였다. 머렐은 해당 협업 컬렉션을 통해 MOC STREAK의 모든 원자재를 리사이클 소재로 제작했는데, 이를 통해 환경에 대한 존중과 지속가능성의 중요함을 상기시키고자 하였다. 해당 지점이 환경 문제에 경각심을 가지고 있던 현대의 소비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을 수 있었는데, 자사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활동을 ‘브랜드의 역사를 담은’ 의미 있는 제품으로 다룬다는 것이 호소력을 더해주었기 때문이다. 리마스터링이 기업의 브랜드 정체성을 공고히 하는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된 것이다.
그렇다면 리마스터링의 전망과 한계는 어떨까?
[리마스터링의 서브컬처 시장 진출]
애니메이션, 게임, 웹툰 등 다양한 분야에 존재하는 서브컬처는 마니아로 일컬어지는 소비자의 높은 충성도와 구매력이 특징이라는 기업 입장에서 매력적인 진입 요인을 갖추고 있지만, 모순적이게도 ‘비대중성’으로 인해 서브컬처로의 산업 확장은 더딜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AI 모델 딥러닝 이후 발전한 리마스터링 기술은 저비용으로 개인 맞춤형 적용이 가능해질 것으로 대두되며, 안정적인 서브컬처 시장 진입이 가능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업사이클링 산업의 일환으로의 리마스터링 가치 확장]
리마스터링은 새로운 마스터 개발을 위한 투자 과정이 없기에 탄소 발생을 줄일 수 있다. 나아가 현대의 가치에 맞추기 위해 마스터를 계속해서 ‘찍어내야’ 하는 기존 산업의 방식에서는 더 이상 소비자의 니즈를 맞출 없는 과거의 생산 장비가 버려지지만, 리마스터링은 이런 폐기물의 발생을 막는 방식으로 탄소 배출량을 줄일 수 있다.
[옳은 리마스터링 방향성의 모호함]
리마스터링 기술의 많은 부분이 자동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최종적으로 검수하는 것은 리마스터, 즉 인간의 영역이므로 리마스터링은 부득이하게 개인의 가치관이 반영되는 산업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 속, “무엇이 올바른 복원, 즉 리마스터링인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발생할 수 있다. 마스터의 흠결까지 그대로 살려내 현시대로 이를 옮겨오는 것, 티끌은 지우고 오늘날의 가치관에 맞게 요소를 재배치하는 것 등 리마스터의 주관에 따라 리마스터링된 결과물은 천차만별일 수 있다. 마스터의 의도를 살리기 위해 자문을 구하는 방법도 있지만, 이를 창작한 저작권자가 이미 사망한 경우, 그의 의견 또한 파악할 방법이 없어 추가로 마스터에 대한 곡해의 가능성이 짙어질 수 있다.
[고민없는 게으른 활동이라는 부정적 인식]
기존의 마스터를 복원하는 것을 토대로 진행되는 리마스터링 산업의 경우, 이미 마스터를 경험해 본 소비자도 존재하기 마련이다. 사실, 마스터를 경험하였다고 하여 리마스터링 된 상품에 필연적으로 지루함을 느끼는 것은 아니지만, 기업들이 단순히 과거에 인기가 있었던 상품, 매체를 계속해서 리마스터링 해 재출시하는 전략을 되풀이한다면, 소비자의 경험과 선택의 폭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리마스터링을 활용하는 기업은 단순히 과거의 대상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는, 현대와의 연결 지점을 찾아 새로움을 부여하는 ‘가치 창출’의 측면에 비중을 두고, 소비자가 향수를 느끼는 지점과 불편함, 지루함을 느끼는 지점을 명확하게 분리할 수 있는 분석 능력을 키우기 위한 사업 진행까지 고려해야 할 것이다.
작성자만의 인사이트는?
*해당 단락은 2주 동안 해당 트렌드를 조사한 작성자의 주관적인 예측을 기반으로 한 의견입니다.
1) 국내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 플랫폼 상용화 이후 리마스터링 기업의 사회적 활동이 다각화될 것이다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 플랫폼의 국내 상용화 가능성에 따라 주가가 상승한 타 산업 기업들처럼 업사이클링을 실천하는 녹색 기업으로서 리마스터링 기업 또한 지속가능한 가치를 인정받아 추가 투자를 유치 받거나,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를 통한 수익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사회적 기업으로서의 기반을 다진 리마스터링 기업들은 이를 더 공고히 하고자 평등, 화합 등 또 다른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며, 관련 상품 출시 등의 기업 활동을 이어나갈 것이다.
2) 헬스, 개인 보안 등 일상의 다양한 영역까지 리마스터링 기술이 확장 적용될 것이다
계속해서 리마스터링이 제조업과 패션업으로 확장되고 있기에, 가까운 시일 내에 보건과 보안 등 다른 산업군으로 그 적용 범위를 늘릴 수 있을 것이다. 일례로, 보건 산업의 경우 MRI, CT 등의 촬영 장비에 리마스터링을 적용하여 산업을 발전시키거나 홈캠을 설치해 가구 보안을 유지하려는 소비자를 타겟으로 온디바이스 기술로 리마스터링이 포함된 제품을 제공한다면, 리마스터링이 소비자의 일상 속 불편을 해소해주는 기술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3) 양방향 소통을 목적으로 하는 리마스터링 기업의 인터랙티브 경험이 극대화될 것이다
리마스터링이 대두되는 배경 중 하나는 옛 것의 복귀를 원하는 ‘소비자의 요구’였다. 따라서 시장 가치가 있는 리마스터링 적용 대상을 명확하게 찾아내기 위한 근거인 소비자 피드백의 가치는 리마스터링 산업에서 더욱 대두될 것이다. 이에 따라, 리마스터링 산업은 현재와 같이 소비자 데이터를 분석하는 것을 넘어, 보다 적극적으로 소비자와 상호 작용하며 피드백을 수집하기 위한 기업 활동을 이행할 것이고, 이를 위해 리마스터링 기술의 특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생생함의 제공’을 극대화하여 인터랙티브 경험을 제공할 것이다. 예컨대 리마스터링 과정에서 마스터에 포함되지 않았던 삭제 장면을 수집하고 이를 바탕으로 마스터 스토리를 재구성하여 소비자에게 ‘원하는 방식에 따라’ 결말을 선택하는 인터랙티브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더 감도높은 경험을 원하는 소비자의 수요를 충족시켜, 리마스터링 제품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소비자 데이터 수집량을 늘릴 수 있을 것이다.
4) 원본(마스터)를 보관하거나 기업과 기업을 연결해주는 B2B 플랫폼이 탄생할 것이다
리마스터링 기술이 원활하게 적용되기 위해서는 보존 상태가 우수한 마스터가 바탕이 되어줘야 한다. 현재 마스터의 보존은 해당 마스터를 제작한 제작사의 자율적인 운영에 맡기고 있으나, 이로 인해 마스터의 보존 정도가 일정하지 못하다는 맹점이 존재한다. 리마스터링은 미래 세대에게 오늘의 가치를 전달하기 위한 역사 보존 방법이 될 수도 있으므로, 이를 방지하기 위해 ‘마스터 보관 전문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 나타날 것이다. 또, 특허 기술을 갖고 있음에도 작은 기업 규모에 따른 영업 능력의 부족으로 일감을 찾지 못해 경영난에 시달리는 기업들을 위한 플랫폼 또한 등장할 것이다. 리마스터링이 필요한 기업이나 개인, 그리고 리마스터링을 제공해 줄 수 있는 기업을 연결하는 B2B 플랫폼이 등장하여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리마스터링은 이제 문화콘텐츠산업을 넘어 제조업, 패션업까지 더 넓은 분야로 진출을 준비하며 산업 트렌드로 자리매김 중이다. 역사는 길었지만 최근에 새로운 가치를 인정받아 비상 중인 리마스터링이 또 우리 산업과 소비자에게 어떤 새로운 가치를 불러와줄 지 지켜보면 어떨까?
고려대 통계학과 신아영
statxxx@kore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