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나르시시스트라는 용어를 몰랐을때
엄마의 통제는 내게 일상이었다.
머리가 커가면서, 나는 내면에 화가 많이 쌓였다.
엄마는 옷입는 것도 간섭이 심해서 내가 치마를 입으면 '남자만나러가냐'라는 식으로 매도를 했고, 나는 또래들이 입는 치마를 시장에서 사오고도 피아노 속에 숨겨놓고, 입고싶을때는 바지를 입고나가서 밖에서 갈아입는 식으로, 또 집에 돌아올때는 다시 바지로 갈아입고 돌아왔다.
이렇게 생활이 고착되다보니 나는 뭐든 점점 눈치를 보게 되었고, 점점 내 주장을 펼치기 어려워했다.
뭐 행동 하나를 할때도 혼날까봐 조심했고, 상대의 기분을 살피는데 능숙하게 되었다.
이런 점은 후에 내가 사회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큰 걸림돌이 되었다.
사회에서도 눈치를 너무많이 봤기때문에 어느날은 눈치를 보며 퇴근하자 옆팀 팀장님이 "왜 이렇게 눈치를봐" 라고 가볍게 던지는데 그말에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속으로 '저도 모르겠어요...그냥 저절로 눈치가 보여요. 저를 숨죽인채로 살아야할 것 같아요'라고 말하며.
고등학교 때부터 엄마는 폭언,폭력에 통제, 감시까지 더했다.
어느 날은 컴퓨터를 하는데 화면 밑에 처음보는 아이콘이 있길래 눌러보니 컴퓨터 내용을 실시간으로 캡쳐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정말 돌아버릴 것 같았는데, 그때는 내가 학생이니까 어른들은 이렇게 까지도 하는구나 라고 생각했던것 같다. 그래서 컴퓨터를 하고, 나는 캡쳐를 하나하나 지워버렸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엄마는 아빠랑 주말마다 나가서 데이트를 하면서 집에서 나는 공부하라고 티비 전원코드를 떼버리고 , 리모콘을 항상 가지고 나갔다.
대학교 때는 통금이 11시여서, 11시만 되면 연락이 오고 난리가 났고, 11시에 집에 들어가도 매일 왜그렇게 늦게 다니냐며 부모 잠도 못자게 한다고, 못된년 소리를 들었고.
20살 한창 친구들이 맥주에 맛들려 비교적 자유롭게 놀러다닐때, 나는 11시만 되도 전화기를 수시로 쳐다보며, 심장이 벌렁거려하며 항상 제일먼저 자리를 떠났다.
대학교 1학년 2학기 때는 기숙사에 떨어져, 자취를 하고싶었지만 돈도많이 들고 집에서도 반대했기때문에, 나는 매일 왕복 4시간 거리를 통근을 했었다. 통근을 하는것은 괜찮았다.
그러다가 2학기 개강파티가 있어, 과 친구들 오랜만에 모여 놀고있는데 10시쯤 되니 나는 또 집에가야하나 싶어 침울해졌다. 한참 사람좋아하고 놀기좋아하던때라 나를 안타까워 하던 친구들은 "엄마한테 친구집에서 자고 간다고 한번 부탁드려봐. 성인이고 하루정도인데 설마 안해주시겠어?"
나는 혼날게 뻔했지만 용기를 내서 엄마한테 전화를 걸어 위처럼 물어봤다. 엄마는 당연히 노발대발했고, 택시를 타고서라도 당장 집에 도착하라고 했다. 나는 대학생이라 택시비는 차마 없어 그냥 발만 동동구르고 있는데, 과 친구들이 십시일반 모아서 택시비를 마련해주었다. 택시를 타고 집에가는 내내, '엄마는 내가 행복한 것을 바라지않는구나. 도대체 왜이렇게 내가 자유롭게 지내는걸 단 한치도 용납하지 못하는걸까 너무 답답하다' 라는 생각을 하며, 집에도착했다.
12시가 조금 지난시간에 당연히 집 대문은 잠겨있었고, 엄마는 문을 열어주지않았다.
아빠가 중간에 잠깐 현관문틈으로 내다보며 "왔네. 왜이렇게 늦어 그러게"라며 다시 들어갔을 뿐이었다.
나는 또 잘못했다고 해야했다. 그냥 항상 잘못했다고 해야했다.
그 날은 그렇게 문 앞에서 기다리다가 새벽 2시쯤 동생이 문을 열어줘 집에 들어갔던것 같다.
어떤 날은 조별 과제가 늦게 끝나고 왔는데 12시 조금 넘어 들어온다고, 문은 안열어주는 건 당연하고, 내 방에 있던 짐을 통째로 싸서 현관문 밖에 내놓은 적도 있다. 그럴 때 마다 듣는 말 "그렇게 살꺼면 나가서 살아. 내집에서 살지말고 제발" ..
참..지금 다시 생각해도 열받는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직장에서 마이크로 컨트롤하려는 상사에게 반발심이 들고, 후임에게는 최대한 간섭하지 않고 알아서 하길 바란다. 간섭과 통제를 당하는 기분이 얼마나 더러운 기분인지 알기 때문이다.
뭐..참 일화가 많다. 혼자 상처로 간직하기에는 너무 많고 억울해서 내가 지금 이렇게 오래 힘든가보다.
그래도..그간 집 밖에 학교와 사회에서는 좋은일도 많았고 꽤 괜찮은 날들도 있어서 그런 날들과 기분으로 집에서 받은 모욕과 폭력을 상쇄시키며 나름 잘 살아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