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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cret Nov 07. 2024

07. 엄마가 너를 어릴때 낳았잖아

본인을 희생한 불쌍한 젊은 엄마

어릴때를 생각해보면, 집 밖에서는 나는 거의 행복한 일들밖에 없었던 것 같다.

우선 집 밖에서 만나는 친구들도 너무좋았고 학교에서 오늘은 무슨일이 벌어질지 항상 설레여하며 등교를 했었던 것 같다.

집에서는 머리채 잡히고 나왔어도 밖에서는 친구들과 뛰어다니고 깔깔거리는 10대 시절을 보냈었었다.

엄마는 언제 돌변할지 모르는 폭격기였지만, 사실 어릴 때 나는 엄마를 많이 좋아했었다.


엄마는 20대 초반에 대학졸업 직전 아빠를 만나 결혼했는데, 결혼하자마자 내가 생겼다고 했다.

그래서 항상 나에게 '나만큼 어릴때 애낳은 사람이 어디있겠니, 얼마나 힘들었겠니' '20대 초반 창창한 나이에 너를 낳았는데 얼마나 힘들었는지, 친구들은 다 나가서 놀때 나는 너 돌보고 있었어서, 하루는 억울해서 친구들한테 빨리 결혼하라고 했어. 나랑 같이 애 데리고 만나게' 라고 말했다.

나는 초등학교 때, 이 이야기를 듣고 엄마가 불쌍했고 죄책감도 느꼈다.

'아 우리 엄마 이렇게 젊고 이쁜데, 나를 낳아서 집에만 있게되었구나, 너무 안됬다..'


또, 엄마가 젊으니 같이 외출을 나가면, 옷 가게에서도 '어머 애기엄마 아닌것 같아요', 붕어빵가게 아저씨도 '엄마가 아니라 이모인가보네~' 라고 하면 엄마는 너무 좋아하며 '이모맞아요~'라고 하곤했다.

그리고, 어디 나갈때마다 사람들이 엄마 외모를 칭찬하며 '어머 새엄마 아니야?' 라는 식으로 농담하기도 했는데, 나는 그때마다 '아니 우리엄만데 새엄마는 무슨 새엄마야' 라며 기분이 나빠했는데, 엄마는 항상 싱글벙글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나도 점점 엄마가 젊고 이쁜것을 자랑하기 시작했다.

집에서는 나를 많이 혼내기는 해도, 어디 밖에 학부모 모임이라도 나오면 선생님께서도 엄마가 너무 젊고 미인이라고 하고, 친구들도 '너네엄마 목소리도 교양있고 너무 이쁘시다~' 라고 하니, 밖에서 우리엄마는 이쁜 엄마고 집에서 나에게 발악을 하는 악마같은 엄마는 다 내잘못으로 튀어나온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우리엄마는 첫인상과 다르게  내 친구들과도 몇번씩 만날수록 기분나쁜 실언을 했다.

키가 작고 아담해서 귀여웠던 내 친구에게 '어머 ㅇㅇ이는 키가 하나도 안자랐네~'라는 농담을 하질않나,

처음데리고 온 얼굴도 이쁘고 현명한 다른 친구에게는 위아래로 기분나쁘게 훑어보며 '어디사니? 공부잘해?'를 가장 먼저 물어봤다.

나는 그때마다 친구들에게 미안하고 얼굴이 화끈거려 다음부터는 엄마랑 마주치게하지 말아야지 싶었다.

그래도 엄마도 나름 친구들이 오면 간식도 주고 짜장면도 시켜주기도 했다.

그러나 90%는 내가 친구를 우리집에 데려가 놀고싶다하면 '쓸데없는 소리하지말아라'를 먼저하긴 했다.


그래도, 항상 아침밥은 꼭 먹고가라고 화를 냈고, 가끔씩 간식도 만들어주며 영어수학 학원은 꼬박꼬박 보내줬다. 대신 용돈은 기분나쁘면 안주기도 해서 종종 학교에서 집까지 40분 거리를 걸어오기도 했다.


내가 어릴 때 엄마랑 단둘이 있을때 좋았던 기억은, 초등학교 입학식날 엄마 손잡고 돈까스였나 짜장면을 먹으러 갔을때였다. 엄마의 표정이나 무슨대화를 했는지는 전혀 기억나지않지만, 나는 엄마랑 이렇게 나온것만으로도 좋았다. 그리고, 아주 어릴때 가물가물하지만 엄마가 친구들이랑 수다떠는 중에 엄마 등에 엎혀서 엄마 숨소리를 느끼던 때.

그럴 때에는 나는 세상 누구보다도 엄마를 사랑했을 것이다.


그래서, 초등학교때 내가 뭘 잘못해서 쫓겨난지도 모르지만 또 도서관으로 쫓겨났을때, 잘못한 사유도 모르고 눈물뚝뚝흘리면서 엄마한테 잘못했다는 장문의 2장의 편지를 썼다.

'제가 속썩여서 죄송해요. 말안들어서 죄송해요. 앞으로 잘할게요'

집에 돌아가 아빠랑 누워서 티비를 보고 있는 엄마에게 쭈삣쭈삣 다가가 편지를 건넸고, 엄마는 갑자기 눈물을 흘리며 나를 안아주었다. '아니..참내..미안하다' 라며.


그런데, 아직도 미스테리하고 소름인 것은,  

중학교 때 어느 날, 내가 또 혼나고 눈이 퉁퉁부어서 잠에 들었는데, 엄마가 본인 기분환기가 필요하다며 아빠랑 밖에 나가 소주를 마시고 왔다. 그러더니 아빠앞에서 나를 껴안고 '미안하다..아이고' 이러길래 나는 내심 좋으면서도 겉으로는 '뭐야'이러면서 잠든 척 했다.

엄마가 먼저 사과하는 일이 평생 거의 없는 일이므로 나는 그 순간을 더 누리고 싶어 다음날에도 일어나마자엄마가 '밥먹어라'했는데, '몰라'라고 답변했더니 바로 '미친년이 지가 뭘잘했다고' 어쩌고가 날라왔다.


생각해보니, 엄마는 아빠랑 같이 있을때만 나한테 눈물까지 흘리며 사과를 하고, 나랑 단둘이 남으면 차갑게 나만 아는 엄마로 변했다.


그래도 어떻게 보면 우리집은 평범한 집이다.

내가 겪은일과 내 상처를 들춰내고 연을 끊지않으면, 아빠도 30년 넘게 회사를 다니고 정년퇴임하며 경제적 책임을 진 성실한 가장이고, 엄마도 옆에서 아빠를 떠나지 않고 30년간 전업주부로 내조를 하며 착실하게 가정을 지킨 '모범 부부상'을 탈만한 인물들같아 보인다.  


그런데, 그 틈에서 나는 왜 항상 외롭고 울상이고, 제대로 혼자 서질못하고 감사하질 못하는지.

외부인들이 보면 '저 집은 딸이 이상해'라고 할 것이다.

이렇게 집 안에서 일어난 일들은 아무것도 모른채. 만약에 알더라도 이렇게 말하겠지

'얘, 안그런 집이 어딨어, 그땐 다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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