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ecret Nov 06. 2024

01.2년간 연락끊은 친정엄마와 장례식장에서의 재회  

왜 유독 나한테만 이상한 사람들이 잘 꼬이는걸까?

나는 근 2년간 직장을 3번이나 옮겼다. 마지막 8개월을 다닌 직장은 일도 적응하고 나니 어느정도 괜찮았었고, 같이 일하는 팀원, 임원분들 모두 모나지 않고 적당한 선을 지켜주시는 매너좋은 분들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런 좋은 환경에도 출근할때마다 숨이 막히고, 머리가 아팠다. 피부에는 염증이 많이 올라와있었고, 피부약을 먹으려했으나 임신을 준비해야된다는 생각에 약은 먹지안고 버텼더니 점점 더 뒤집어지고 있었다. 당연히 출근해서 내 표정은 밝지 않았고, 나와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우리팀은 팀장님과 팀원들은 일도 잘하고, 빠릿빠릿하고 사회성도 좋아 속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겉으로 볼때는 정말 행복하게 사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나는 그 틈에서 말 수도 없고, 주어진 일만 묵묵히 해내는 방식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나고 있었다.

누가 말을 시키지 않으면 먼저 말하지는 않으려했고, 수다스러운 점심시간에도 나는 내 개인적인 일은 말하지 않고 피상적인 얘기로 말수를 채워갔다.  

항상 아침 9시부터 퇴근시간 6시만 기다리며. 어느 날은 '아 어서 늙어서 은퇴했으면 좋겠다. 얼른 20년이 지나갔으면 좋겠다. 그러면 이 회사,사회생활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겠지'라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나는 더이상 일을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팀장님께 갑자기 퇴사하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퇴사 사유는 이유모를 '건강상의 문제'...

사실  이번 회사가 나를 괴롭혔던 건 아닌 것 같다. 퇴사 의사를 밝히고 상급자분과 면담을 하는 날, 상급자분께서는 '요즘 힘들어 보이긴했는데, 집에 일이있나했어요. 회사일이 많이 힘든가요?'

라고 하셨고, 나는 '아니요 사실 회사일이 엄청많은것 같지는 않아요. 그런데 제가 건강이 너무안좋습니다. 스트레스도 많은 것 같고..그런데 회사 외에 집에서는 따로 스트레스 받을 일은 없어요.' 라고 말했다.


그렇게 이유모를 스트레스와 건강상의 이유로 퇴사를 확정하게 되었는데, 퇴사 일주일 전 업무중에 아빠로 부터 카톡이 하나 왔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장례식장에 와줬으면 좋겠다."

나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왠지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그게 지금 이렇게 빠르게 일어날 줄은 몰랐다.

나는 아빠에게 답장을 하고싶지 않았지만 그래도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데 자존심을 부릴 때가 아닌것 같아서 "네, 회사에 말하고 병원으로 갈게요" 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회사를 나와서 집으로 가는길..너무 많은 생각이 들었다. 당장에는 슬픔보다도 , 장례식장에 정말 갈지말지에 대한 고민이 머리를 가득채우고 있었다.

사실, 나는 엄마와 절연하겠다는 생각으로 2년간 거의 연락을 하지않고 지냈고, 한두번 만나자는 연락에도 전혀 답장을 하지않고 지냈다.

그리고 사실 그 기간이 인생에서 가장 홀가분하던 2년 이었고. 내 생에 처음으로 엄마에게 제대로 반항을 하여 벗어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장례식장에 가면..2년동안 명절에도 불효녀 소리를 들으며 꾹참고 안갔던 시간들이 무너질까봐 무서웠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돌아가신 외할머니는..아무리 미운 엄마의 엄마라지만 나에게 잘해주신 부분도 많았고 좋은 추억, 안쓰러운일들도 있었기때문에 할머니 마지막 가시는길은 뵈야 한다고 생각했다.


남편에게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말하니, 남편은 당연히 본인도 가겠다며 아무리 2년간 연락을 하지않아도 장례식장에는 가는게 도리라고 했다.


그렇게 말해주는 남편이 고맙고 든든했지만 한편으로는.. '도리'..

그 '도리','효도','자식'이라는 명목 하에 엄마에게 괴롭힘 당했던 고통이 함께 떠올랐다.

그래도 용기를 내었다. 그래..난 이제 더이상 예전에 순수하게 부모를 존중하고 부모에게 착한아이로 잘보이고자 노력했던 내가 아니다. 이제 당신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난 상관없다.


나는 당신 같은 부모 아래서 나와서 근 30년 간을 고통받으며 살았지만, 당신과 나는 다르다.

나는 남에게 피해주지않는 남을 괴롭히지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나는 부모님을 보러가는것이 아니라 할머니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러가는 것이니, 착각하지 말기를 .


이렇게 다짐하며, 2년만에 부모님이 있는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