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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윤슬 Jul 21. 2023

유럽 노마드의 성지 마데이라 3

나의 첫 유럽 여행기


우리가 제일 처음에 가고자 했던 여행지는 마데이라가 아니었다. 제일 먼저 가고자 했던 곳은 하와이였는데 피치 못할? 사정으로 출국 3일 전에 무산되고 아시아 노마드들의 성지라는 태국 치앙마이로 가려고 했었다. 그렇게 주변 지인들에게 치앙마이로 갈 거 같다는 얘기를 하고 삼일정도 지났을까? 리아 남동생에게 우리 모두가 있는 단톡방으로 연락이 왔다.

“누나 3월에 치앙마이에서 농부들이 밭을 한번 태우는 기간이라 엄청 덥고 공기도 안 좋다는데?”

구글에 검색해 보니 2월 말부터 5월 초까지 화전농업이 진행 중인 태국의 농부들이 밭을 태우는 일명 ‘버닝시즌 ‘이라 덥고 습한 날씨와 함께 나쁜 연기까지 뒤덮여 좋지 않은 경험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는 대수롭지 않게 알려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곧바로 예약했던 치앙마이 숙소를 취소했다.

“그럼 어디로 가지?”

라는 질문을 서로에게 던지며 또다시 검색을 시작했다. 그러다 유럽의 디지털노마드의 생태도 알아볼 겸 '노마드리스트' 상위에 랭크되어 있는 유럽국가로 가보는 게 어떠냐는 의견이 나왔고, 물가와 인터넷 속도등을 고려해 봤을 때 포르투갈 마데이라가 최선의 선택지로 보였다. 그리고 우리 셋은 마데이라로 가자는 결정을 한 지 2주 만에 마데이라에 도착해 있었다.


마데이라에서 총 2곳의 코워킹스페이스를 방문했는데 한 곳은 푼샬에 있는 'SANGHA CO-WORK'라는 곳이고, 다른 한 곳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때마침 우리 숙소 근처에 있던 'Ponta Do Sol 노마드 빌리지'이다. 이 노마드 빌리지는 마데이라 정부에서 마을 살리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지원하고 있다. '마을의 진화'라는 책을 보면 일본 가미야마라는 마을이 마을을 활성화하고 관계인구를 늘리기 위해 ICT스타트업들과 예술가들, 즉 디지털노마드들을 마을에 불러 모으고 마을을 살리는 데 성공한다. 이곳 폰타두솔도 같은 결로 디지털노마드들을 위한 마을을 만들고 운영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곳도 커뮤니티로 운영되고 있었는데 리아가 열심히 컨택한 덕분에 Ponta Do Sol 노마드 빌리지 커뮤니티 매니저와 인터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영어가 유창한 맥스와 아리가 멋지게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디지털 노마드들을 위한 커뮤니티 브랜드인 우리 '하이노마드'를 리빌딩하는 시점에서 많은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는 좋은 경험이었다. 이곳의 특징은 인터뷰 내용이 영어라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노마드 빌리지임에도 불구하고 장기간 머무를 수는 없는 룰이 있다. 지겹고 지루하다는 경험을 주지 않기 위해서 인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커뮤니를 유지함에 있어서도 굉장히 강력하고 단호한 룰들이 존재했고, 좀 너무한 거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커뮤니티를 유지하려면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코워킹스페이스적인 측면에서 좋았던 것은 친자연적인 환경이라는  점이다. 실내 업무공간도 있었지만 야외 업무 공간이 더 많았고, 주변에는 고개만 들면 몇 시인지 알 수 있는 커다란 시계탑과 끝없이 펼쳐지는 대서양이 한눈에 보인다. 그리고 동화에서나 나올법한 귀엽고 작은 새들이 데스크 주변을 뛰고 날아다닌다. 한국의 비둘기마냥 사람에 대한 겁이 크게 없어 보였다. 이곳은 우리 숙소에서 차로 10분 거리라 일주일에 2~3번씩 방문하며 자주 이용했다. 가장 중요한 사용료는 무려 무료이다.


푼샬에 있는 'SANGHA CO-WORK'는 이제껏 포르투갈에서 갔던 코워킹스페이스와는 조금 달랐다. 리스본에서 갔던 코워킹스페이스와 Ponta Do Sol 노마드 빌리지 코워킹 스페이스는 미팅룸이 따로 존재하지 않았고, 누구나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앉은자리에서 미팅업무를 보곤 했는데 이곳에는 미팅룸이 따로 존재했다. 그리고 반려동물 출입도 되는 않는 곳이었다. 그렇다고 한국의 공유오피스나 독서실처럼 딱딱하고 엄숙한 분위기는 아니다. 넓은 공간에 따듯한 느낌을 주는 인테리어가 인상적이었고, 깨끗한 화장실, 정수기, 냉장고, 커피, tea 등 편의 시설이 아주 잘 갖추어져 있다. 어떻게 첫 방문인지 아닌지 확인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일일 이용권이 19유로였는데 첫 방문자에게는 하루 6시간은 무료로 제공해 준다! 나는 창가자리를 좋아했는데 창밖으로 대서양 수평선이 보이고, 창문을 살짝 열어두면 창가 화단에 흐드러져 있는 로즈마리향이 은근하고 기분 좋게 코끝을 스친다. 로즈마리 향을 맡으며 보고 있자면 스테이크 생각이 절로 난다.


리스본과 마데이라에서 우리가 보고 느꼈던 코워킹스페이스들의 공통된 느낌은 억압하지도, 제한하지도 않는 아주 자유롭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자신의 업무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남들의 눈치를 보느라 스트레스를 전혀 받을 필요가 없다. 그렇다고 정신없고 소란스럽지 않나?라고 묻는다면 전혀 그렇지 않다. 이곳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디지털노마드이고, 디지털노마드들은 모두 프로페셔널하다. 굳이 억압하고 제한하는 룰을 만들지 않아도 각자가 서로를 존중하고 또 존중받길 바라며, 소중한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고 자신의 일에 집중하기에 자유롭고 편안한 분위기가 형성된다. 이런 성숙한 디지털노마드 문화가 빨리 한국에도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


마데이라에서의 한 달은 나에게 많은 의미가 있는 시간이었다. 제일 처음에 비행기를 타고 장시간 비행을 하는 거부터가 나에게 엄청난 챌린지라고 했었는데, 사실 나는 공황장애를 앓고 있다. 지금은 물론 포르투갈에 갈 때에도 공황증상이 생활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을 만큼 나아졌었지만 공황이 온 뒤로 아직 장시간 비행을 해보지 않았기에 큰 걱정거리였다. 처음 공황증상이 나타난 거도 운전을 하던 중이었고, 버스나 지하철, 택시등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도 힘들었다. 이때는 지하철이나 버스등 대중교통을 이용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비행은 처음이라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행히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마데이라에서 여러 가지 추억과 사건들이 있었다. 차를 타고 구름 속을 지나갔던 일, 산정상 도로에서 야생 소인지 기르는 소인지는 알 수 없지만 소들과 함께 도로 위를 달리던 일, 해발 1800m 이상인 PICO(마데이라에서 가장 높은 산)를 왕복 7시간에 걸쳐 등반했던 일, 밤마다 그릴마스터 맥스가 숯을 피워 그릴로 요리해 줬던 일 등등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고 잊히지 않는 것은 2주 동안 우리와 함께했던 '폭스바겐 골프 4세대'이다. 


죽음의 오르막길을 경험하고 우리는 차의 필요성을 느끼고 렌트하기로 했다. 하지만 렌트비용이 생각보다 너무 비쌌다. 그래서 우리 숙소 매니저에게 차를 렌트하려고 하는데 좀 싸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냐고 물었고, 매니저가 자기 지인의 차를 소개해줬다. 다른 곳의 30% 정도밖에 되는 않는 금액이었기에 우리는 어떤 차인지 알아보지도 않고 'P'답게 바로 렌트를 하겠다고 했고, 다음날 도착한 차를 보고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한국에서 차를 렌트하면 당연히, 아주 당연하게 오토기어를 생각하지 수동스틱차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눈앞에 도착한 차는 2004년식 폭스바겐 골프 4세대 수동 스틱 자동차였다. 리아와 내가 1종보통 면허증이 있어 수동차를 몰 수 있었지만, 리아는 면허증을 딴 뒤 수동차를 몰아보지 않았기에 그나마 최근까지 몰아봤던 내가 운전대를 잡아야 했다. 아까도 말했지만 나는 운전을 하다가 공황장애가 왔었고, 대중교통은 괜찮았지만 아직까지 내가 직접 운전대를 잡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죽음의 오르막길까지 있는 낯선 외국 도로에서 20년 가까이된 스틱차를 운전하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첫날에만 시동이 20번은 넘게 꺼졌고, 시동이 꺼질 때마다 차가 갑자기 멈추는 것에 트라우마가 있던 리아는 힘들어했다. 나도 울고 싶어 죽겠는데 뒤에서도 힘들어하니 공황이 올 새가 없었다. 그렇게 한국에 다시 돌아갈 때쯤 나는 그 차의 마스터가 돼있었고 운전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리고 마데이라에서 가장 뜻깊었던 시간은 나와의 대화 시간이다. 당시에 나는 공황과 더불어 자존감이 상당히 낮은 사람이었다. 그러던 나에게 리아가 퍼스널브랜딩과 함께 나에게 많은 조언과 도움을 주었고, 가장 좋았던 것은 나에게 '왜'라는 질문을 수없이 던져보라는 조언이었다. 그렇게 매일 밤마다 나는 나에게 '왜'라는 질문을 던지며 나와 대화를 했고, 집으로 돌아갈때즘에는 자존감과 자신감도 많이 회복이 되었다. 더불어 공황 증상도 거의 완치가 되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운전을 했던 일, 그리고 PICO를 등반할 때 어둡고 긴 동굴이 3~4개 정도 있었는데 갈 때는 그렇게 답답하고 숨쉬기가 불편해 벗어나고 싶던 동굴이 돌아올 때는 너무 덥고 몸이 지치니 빨리 동굴로 들어가고 싶다며 동굴이 기다려졌던 일등을 겪으며, 역시 사람은 생각하기 나름임을 다시 한번 느꼈고 공황은 그렇게 치료가 되었다. 나에게 포르투갈에서의 한 달은 나의 인생 후반에 가장 값진 시간이다.



유럽 노마드의 성지 마데이라 - 나의 첫 유럽 여행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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