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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다 Jun 26. 2024

굳이 알고 싶지는 않은데 궁금하긴 한

이혼하자고 한 이유가 뭐였을까

결혼을 약속했던 당신의 마음을 변하게 한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남자냐고 물어봤지만 아니라고 했다. 우리 가족 때문이냐고 했지만 아니라고 했다. 그럼 나 때문이냐고 했지만 아니라고 했다. 당신은 마지막 날까지 끝내 그 이유를 모른다며 말하지 않았다. 뭐, 어찌됐건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것임은 당연했겠지.


그러다 한참이 지난 어느 날, 공개로 되어 있어 친구가 아니어도 볼 수 있었던 페이스북에 당신은 이제야 알겠다는 메시지와 함께 "배우자가 컵을 치우지 않아 이혼했다"와 비슷한 제목의 게시물을 포스팅했다. 그 내용은 (정확하지 않지만) 대략 무언가 말하기에는 본인이 없어 보이는 그런 작고 작은 게 쌓여 왔고 결국에는 상대에 대한 불신과 불만으로 이어졌다는 것으로 기억한다.


다 읽고 나니 일단은 황당했다. 당사자인 나에게는 한 마디도 말하지 않았으면서 사람들이 볼 수 있는 데에다가 순전히 내가 이혼하게 된 원인을 제공한 것 마냥 저런 글을 붙여놓고 "이제야 알겠다"니. 그래도 황당함이 분노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이제와 화내봐야 뭐가 달라지며, 어차피 내 주변 사람들은 내가 왜 이혼하게 됐는지 다 알고 있었다.


그 다음에 든 마음은 호기심이었다. 정말 뭘 알게 된 걸까? 내가 당신에게 어떤 작은 충격들을 가했길래 당신의 마음에 조금씩 조금씩 실금이 갔던 걸까? 왜 당신은 그 때 나에게 말을 하지 않았었나? 결혼을 하기 싫었으면 차라리 파혼을 하지, 왜 결혼식까지 다 해놓고 신혼여행 가서 결혼을 후회한다고 말했나? 순수한 호기심은 있지만 알게 되었을 때 내 기분이 좋지는 않을 것 같아 굳이 궁금해하지는 않아 왔다.


순수한 호기심으로, 정말 스물다섯 그 때 당신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당신의 속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아무것도 몰랐지 않나. 신혼여행 다녀와서 1년 간 당신의 그 냉랭하고 조금의 애정도 느껴지지 않았던 모습이 여전히 기억난다. 당신이 조금이라도 나와 대화하고 미소라도 띤 날이면 나는 희망을 가졌다. 그러다 다시 냉랭해지면 나는 우울해졌다. 이런 일이 1년간 반복되며 내 마음은 피폐해지고 황폐해졌다. 내가 나로서 온전치 못하고 당신이라는 타인에 의해 극과 극의 감정을 매일 견뎌내며 나는 지쳐 갔다. 나에게 벌어진 일에 대해 타인을 탓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내가 관계에 큰 기대를 하는 성향이 된 것만큼은 이 때의 경험이 한 몫 했다고 생각한다.


그래, 당신은 스물일곱 초여름 그 날 이후로 어떻게 지내고 있나? 이유를 알았으니 잘 지내 왔나? 당신과 같은 결정을 한 사람은 어떠한 삶을 살아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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