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기리 Oct 15. 2024

엄마는 몰랐던 이야기

일방적이었던 내 슬픔에 대해


“엄마, 나는 어렸을 때 내가 제일 불행한 줄 알았다?”

“아, 그랬나?”

“응. 우리 아빠만 괴팍하고, 우리 집만 가난하고, 나만 불행하다고 생각했었어. “

”우리 집이 제일 가난한 건 맞았다. 그때 그래도 다 일하는데 느그 아빠만 일 안하고..”


아빠 흉으로 시작하는 엄마 말은 길어지면 도중에 끊기 힘들기 때문에 얼른 끼어들었다.


“아, 맞았구나. 여하튼. 나는 그랬어. 엄만 몰랐지?”


몰랐다고 말하는 엄마는 조금 놀란 것 같긴 했지만 슬픔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다행이다. 예상했었다. 그걸 몰랐다면 애초에 이런 얘기를 꺼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엄마의 슬픔이었다고 믿었고, 그 슬픔이 고스란히 나의 것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사실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고, 나는 엄마를 더 좋아하게 됐다.


”엄마 근데 아니더라고. 얘기 들어보니까 친구들 집도, 아빠들도 다 어렵고 힘들었더라고. 요즘은 오히려 우리 집이 나름 평범했구나 생각한다니까? 어렸을 때 난 정말 그런 생각을 못하고 살았어. “


엄마는 조금 의아하고 놀란 표정이었을 뿐, 별 다른 말이 없었다.


내일은 설이고, 나는 오래간만에 설을 쇠러 세 시간을 달려 고향에 왔다. 아이들 방학 때마다 심심찮게 오곤 하지만 정작 명절엔 차가 막혀 내려갈 엄두가 안 났기 때문이다. 이제 아이들도 좀 컸고, 언니들과 날짜를 맞춰 가면 부담이 적을 것 같아 오랜만에 명절 전에 친정에 오게 됐다.


엄마와 장을 보러 가는 길, 차 안에서 이런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는 내가 낯설다. 얼마 전 이효리가 엄마와 여행하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엄마랑 여행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긴 했지만 상상해 보면 막상 서먹할 것 같기도 하다는 싱거운 생각을 했었다. 그렇지만 나 혼자 겪었던 격동과 불안과 과거들에 대해 이제는 엄마에게 편하게 이야기해 볼 수는 있을 것 같다는 용기가 생겼던 것이다. 그만큼 나에게도 이런 이야기들이 툭 털어내고 말 먼지 같은 것들이 되었다는 것이기도 하다.


엄마는 내 예상대로, 덤덤하게 들어주었다. 엄마가 이런 사람인 줄 어릴 땐 몰랐다. 이제 보니 엄마는 참 밝고 씩씩한 사람인 것이다.


마트에서 장을 본 후, 피자와 치킨을 픽업해야 하는 미션이 남아있었다. 엄마가 주문한 호식이 두 마리 치킨은 -예전에 내가 한 번 글에서도 언급한 적 있는 - 어릴 적 같은 반이었던 비디오가게 아들의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곳이다. 비디오 가게였던 그 자리에서 치킨 장사를 하신 지 꾀 되었다고 한다. 아 그. 내가 어린 시절 부러워했던 아이들 중 하나였던 비디오 가게 아들. 그 집이구나. 이런 생각을 하다 불쑥 엄마에게 어릴 적 이야기를 꺼내게 된 것이기도 했다.


치킨 집 앞 도로에 깜빡이를 켜고 차를 댔다. 엄마가 가서 가져오겠다고 내렸다. 오랜만에 아주머니 뵙고 인사할까 생각했는데 조금 귀찮기도 하고, 사실 잠깐 나온다 생각해서 얼굴에 팩을 붙인 채 운전 중 인터라 그만 말자 싶어 차에 있었다. 엄마는 치킨과 아주머니와 돌아왔다.


“니 왔다 카니까 잠깐 얼굴 보고 싶다 캐가 나오싰다, 인사해라”


아이고, 서둘러 얼굴에 붙은 팩을 아무렇게나 떼고 한껏 반갑게 인사했다. ‘아주머니, 정말 그대로 세요’라고 너스레도 떨었고(진심이었다!), 그렇게 왕래가 잦은 집도 아니었는데 어쩐지 반가웠다.



고향이 점점 좋아진다. 엄마와의 짧은 대화로 묵은 수치감 같은 것을 조금 털어낸 것 같은 기분도 느낀다. 나 혼자 만들어왔던 슬픈 강물들이 점점 얕아진다. 다음에 엄마를 만나면 또 한 번, 치킨을 포장해 가는 일만큼이나 별 일 아닌 것처럼, 엄마는 전혀 몰랐을 일방적이었던 내 어린 시절을 한번 꺼내봐야지. 엄마는 오늘처럼 그랬구나 하고 들어줄 거니까. 나에게도 이제 툭, 털어내고 말, 먼지 같은 이야기들이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