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에서 안쪽을 들여다볼 수 없는 카페에는 가본 적이 없다. 주로 혼자서 카페를 방문하기에 혼자 공간을 차지해도 덜 미안한 자리가 있는지 빠르게 스캔 후 입장을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위 사진도 그렇게 바깥에서 안쪽을 들여다본 시선일까? 카페는 맞는 것 같다. 근거리에 디포커스 된 흰색 글자가 흐릿하게 보인다는 건 유리가 앞에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나는 이런 초점의 사진을 좋아한다. 정확히 바라보는 건 아니지만 그것의 존재는 알 수 있는 시선이다. 우리 대부분은 서로를 그런 시선으로 인식하고 있다. 대단히 신경을 쓰지도 대단히 신경을 안 쓰지도 않는다. 세상은 나를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생각보다 우리는 시선에서 자유로운 것이다. 마음이 묶여 있을 뿐.
작년 이맘때쯤 방문했던 익선동의 한 카페였다. 흐릿한 글씨는 외부의 창이 아니고 내부의 칸막이다. 테이블을 분리해 주는 역할을 한다. 그것들은 서로에게서 거리를 두어야 했던 시기의 흔적이다. 글자체가 마음에 들어서인지 저 칸막이가 없다면 공간이 허전하게 느껴질 것 같다.
불편한 사람을 만나야 하고 그런 사람에게 웃음을 지어야 하고 내가 받는 말과 시선들이 얼마나 진심인지 끊임없이 생각해야 한다. 그런 통증을 앓을 필요가 없었던 그때가 그립다. 함께 있는 사람에게서 어떤 위로도 받지 못한다면 차라리 외로움이 나은 것이다. 아프고 죽을 사람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또 한 번의 팬데믹을 기다리고 있다. 고대하고 있다. 고립 속에서 평안해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