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달한 믹스커피를 좋아하던 나도 언제부턴가 커피전문점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내가 끌렸던 건 맛일까 향일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커피를 안 마시면 죽어버릴 것 같은 이유가 맛일까 향일까.
뜨거운 물을 통과시키며 맛을 다 빼앗긴 찌꺼기에도 아직 향은 남아있다. 그래서 맛보다 향일 거라고 생각하게 된다. 끝까지 남는 게 본질일 것이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건 본질일 것이니까.
저 두 개의 잔 속에 담긴 커피 잔해물들은 누구를 위해 어떤 용도로 쓰이는 것일까. 단지 향으로만?
잠실에 있는 어느 커피숍에서 찍은 사진이다.
카페의 한 구석에 소규모로 배치된 흡연실이 있는 걸 가끔 본 적이 있는데 이 카페의 흡연실은 내가 봤던 곳들 중 가장 넓은 공간이었다. 애초의 용도가 흡연실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2024년의 봄날 그렇게 큰 공간을 흡연자들을 위해 제공하고 있었다.
향이라는 본질을 아직 머금고 있는 커피 찌꺼기는 재떨이의 기능으로 탈바꿈했다. 담배꽁초들이 수북이 쌓여 있을 땐 그 밑바닥에 있는 물질이 커피일 줄 몰랐다. 카페의 직원 두 명이 흡연실에 들어와 종이컵을 교체하고 있었고 깨끗해진 재떨이 안을 들여다보고선 그것이 커피인 줄 알게 되었다.
커피의 본질인 커피 향은 그보다 더 독하고 뜨거운 담배향에 짓눌릴 것이다. 그것이 커피의 죽음이라고 생각하니 곧 사람의 죽음과 별반 다르지 않은것이라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