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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sanasu Nov 04. 2024

하늘의 뜻을 기다릴 자격

2024.11.3. vs. 안산 @용인미르스타디움


수원삼성의 시즌 마지막 경기가 될지도 모르는 날.

정규리그의 마지막 경기이고 순위표상 위아래 있는 팀들은 수원보다 한 게임이 더 남은 상황이다. 이날 먼저 경기를 치른 수원이랜드와 전남 모두 승리를 챙기면서 수원은 6위로 밀려났다. 마지막 경기를 지거나 비기면 플레이오프 탈락이 확정된다. 무조건 이겨야만 다음 경우의 수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경기의 중대성은 팬들을 결집시킨다. 다른 경기에서는 빈자리가 많이 보였던 N석이 빼곡히 가득 찼다. 나는 수원팬들의 이런 열정을 사랑한다. 아무리 상황이 좋지 않아도 마지막 희망을 향해 경기장을 찾아온다. 우리가 이렇게 응원해 줄 테니 너희는 반드시 이겨라, 하는 보상심리를 가진 사람도 있겠지만 힘이 절실히 필요할 때 힘을 실어주기 위한 순수한 마음이 기저에 깔려있다.


전반전 시작부터 수원의 공격이 매섭게 이어졌지만 안산의 수비는 단단했다. K리그2 팀들의 특징은 개인역량의 열세를 조직력으로 상쇄시킨다는 점이다. 공격의 짜임새를 보면 안산이 우위에 있었고 그래서 실점의 위기는 수원이 더 많이 감수해야 했다. 양형모의 선방과 안산의 결정력 부족으로 전반전은 득점 없이 끝났다. 실점을 하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후반전은 확실히 홈팀이 갖는 특유한 분위기가 있다. 수원의 공격수들이 N석과 가까워질수록 함성은 커진다. 선수들은 그 함성에 힘입어 약간의 상기된 상태로 골을 다룰 것이다. 뭔가 터질 것 같았던 기운이 주춤했던 건 안산이 선제골을 넣었기 때문이다. 프리킥 찬스에서 수비수들의 점프를 예상해 밑으로 깔아찬 볼이 골문으로 들어갔다. 안산의 영리한 플레이였다. 그 부분을 방치한 수원 수비의 실책이었다. 그러나 나는 분명히 들었다. 안산의 골이 들어갔을 때 한껏 더 커진 N석의 응원 소리를.


선수나 팬들 그대로 진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경합 상황에서 흘러나온 볼을 교체 투입된 배서준이 호쾌한 논스톱 슈팅으로 동점골을 만들어냈다. 그의 데뷔골이었고 너무나 환상적인 골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N석으로 달려와 많은 이들의 영웅 되는 기분을 느꼈겠지만 배서준은 바로 뒤를 향해 달렸다. 동점으로는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무조건 이겨야 한다.


그리고 얼마 후 코너킥 찬스에서 조윤성의 역전 헤딩골이 터졌다. 사실 이 상황이 실제인지 좀 어리둥절했고 기뻐하는 마음 한편에 이렇게 어렵게 뒤집은 경기 꼭 지켜내야 한다는 신중한 감정도 교차했다. 선수들도 그 상황에 크게 동요하거나 안심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런 진지한 자세들이 승리를 예감하게 만들었다.


막판에 안산이 페널티킥을 얻을 수 있는 VAR 판독이 있었을 때가 가장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시간상 동점골을 허용한다면 그대로 무승부로 경기가 끝날 상황이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PK는 주어지지 않았다. 경기는 수원의 2:1 승리로 끝났다.


같은 주에 있었던 두 번의 홈경기를 선제골을 허용한 상황에서 역전승을 일구어냈다. 이제 수원은 모든 경기를 치렀다. 다음 주에 있는 다른 팀들의 마지막 경기를 지켜봐야만 한다. 부산과 전남 두 팀이 모두 이긴다면 수원은 플레이오프 진출이 무산된다. 이제 하늘의 시간이다. 마지막으로 할 수 있었던 최대치를 해놓았기에 하늘의 시간을 기다릴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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