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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절대신비 May 17. 2024

나의 소나기 같은 사랑

황순원의 <소나기>를 이해하셨나요?

돌이켜 보면 국어 시간 중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던 게 초딩 때 <소나기>와 중딩 때 알퐁스 도데의 <별>이다.


소년은 왜 소녀를 소 닭 보듯 했는지, 소녀는 왜 조약돌 던지며 "이 바보!" 소리를 질렀는지, 소녀와 꽃이 한데 어우러져 보이는 현상과 소년의 어지럼증 간의 상관관계는 어떻게 되는 것인지,


참으로 난해했다. 그렇다고 내가 문맥을 이해 못 하는 똥멍청이과는 아닌 것이,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 내여

춘풍 니불 아레 서리서리 너헛다가

어론님 오신 날 밤이여든 구뷔구뷔 펴리라


..와 같은 시간과 공간 교차시키는, 현란한, 으른의 사랑은 또 가슴에 퐉퐉 꽂혔다는 것이다. 황진이 멋쟁이!



이외에도 으른들 시조는 다 와닿았다. 오백 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들며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음을 길재(吉再)할배와 함께 한탄하기도 했고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 제 일지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난 다정도 병인 양하여 내도 같이 잠 못 들기도 했다. 하여가와 단심가는 말해 무엇하랴.


근데 <별>은 어렵다. 목동은 농장주인댁 따님이자 한평생 본 중 가장 아름다운 -하늘 같은 -스테파네트 아가씨에게 왜 자꾸 '귀여운'이라는 아랫사람에게나 써야 할 하대下待형 형용사를 남발하는지,


물이 불어나 집에 못 간 스테파네트가 모닥불 가로 나와 제 어깨에 기댄 것이 별과는 또 무슨 상관인지 등등.


<마지막 잎새>도 그렇다. 이파리 하나에다 왜 제 목숨 거는지, 아니 동일시 하는지.


요즘은 사춘기가 빨리 온다고 하니 21세기 초딩들은, 저 죽으면 -소년과 놀 때 입었던 - 지금 옷 그대로 묻어달라던 소녀와 그 부음 듣던 소년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근데 과연 감정이입이 될까? 불현듯 어젯밤부터 나는 그거시 궁금하다.



그렇다고 완전히 모르겠는 건 아이고..


예전에 강원도 첩첩산중 폐교로 단체여행 간 적이 있는데 '그 사람'이 - 한여름임에도 양말에 운동화 꼭꼭 신고 있던 - 나 신으라고 핫핑크 쓰레빠를 슬며시 던져준 적이 있다. 저 혼자 폐교 구석구석 탐사하다 주운 것이었다.


그 다 떨어진 쓰레기쓰레빠가 뭐라고! 웬만한 건 죄다 버려버리는 미니멀리스트인 내가 불과 몇 년 전까지도 그걸 버리지 못하고 가지고 있었는데,


이런 거랑 비슷한 거 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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