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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뜰아이들 May 29. 2023

등단은 '운'이다

변윤제 02

등단은 운이다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모든 등단은 운이다.


신춘문예의 경우 신문사마다 다르지만 분야 별로 1,000여 명에 달하는 인원이 투고되는 시기도 있다. 숫자가 다소 줄어들었다곤 하지만, 매년 수백 명에 달하는 인원이 자신의 작품을 신문사에 보낸다.


주요 문예지의 경우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적게는 수 백에서 많게는 천 명이 넘는 인원이 몰리는 시기도 있다.


내가 당선되었을 땐, 총 930명이 시 부문에 응모하였다.


약 천 명에 달하는 인원 중 한 명의 당선자가 뽑히는 일을 오로지 실력이라고만 말할 수는 없다. 문학은 정답이 없고, 나아가 예술은 수많은 관점과 취향의 대립장이다.


각자 다른 문학의 치열함 속에서 당선자의 문학만을 유일한 최고라고 자부할 순 없다.


고양이는 귀엽습니다 본문과 상관은 없습니다



투고봇의 나날


등단 직전의 나는

시인이란 꿈을 반쯤 포기하고 있었다.


시만 썼을 뿐인데, 20대에서 30대가 되어 있었다. 본격적으로 투고를 시작한 지도 10년에 달했으며, 16살부터 쓰던 시를 32살까지 쓰고 나니 소위 '현타'가 몰려왔다.


16살에 쓰기 시작한 시를, 16년이나 썼는데도 시인이 되지 못했다면 포기하는 것이 맞지 않겠는가?


2021년도 내가 당선되던 해.

나는 관성에 의지하여 무의식적으로 투고를 반복하는 '투고봇'이 되어가고 있었다.


당선되리란 기대보다는, 미련을 차마 끊어내지 못한 심경으로 원고를 보냈다.

투고봇의 업무도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신인상 마감일은 거의 변동이 없으니, 외워둔 날짜에 맞춰 원고를 우체국에서 보내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투고봇의 나날을 반복하던 중 사건이 벌어지고 만다.



마감일이 오늘이라고?


내가 응모하던 해에 문학동네 신인상은 응모일을 변경했다.

또한, 응모일 변경에 관련된 안내는 몇 달 전부터 홈페이지를 통해 공지되어 있었다.


문제는 투고봇이 된 내가 그 마감일 변경을 꼼꼼하게 기억하지 않고 있었다는 점이다.


본래의 마감일에 맞춰 투고를 준비하던 나는 어느 날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된다.

그 연락은 함께 시를 쓰던 한 후배의 연락이었다.


"마감일 오늘인데 시 잘 보냈어?"


그 말에 나는 당황한 채로 마감 기한을 다시 확인했다.

후배의 말이 맞았다.

마감일은 오늘이었고, 더욱더 큰 문제는 우체국이 문을 닫은 시간이었다는 점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내가 응모한 잡지의 경우

마감 소인 유효로 신인상을 운영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 마감 소인 유효 : 마감일이 5월 29일이라면 5월 29일 우체국 소인이 찍힌 모든 원고를 접수 기한 내에 도착했다고 인정해 주는 방식. 출판사에 도착한 시한이 아닌 우체국에서 소인을 찍은 날짜가 접수 기한이 된다.)


전화를 받은 즉시 집에서 가장 가까운 무인 우체국을 찾았다.

바깥에 잠시 나와있던 상황이었으나, 바로 집에 달려가서 원고를 프린트했다.


제출할 시 원고의 경우 1 ~ 3번째 순서까지는 미리 머릿속으로 정해놓은 상태였다.

그러나 다른 원고를 전혀 정하지 않은 상황.

나는 순식간에 노트북을 뒤져 나머지 작품을 정리했다.


이 모든 작업이 약 20분 정도 걸렸다.

무인 우체국의 경우 보통 밤 10시에 문을 닫는다. 작품을 정리하고 시간을 확인하니 8시 40분이었다.


택시를 잡아 타고 무인 우체국으로 바로 달려갔다.

그리고 몇 달 뒤 나는 당선 소식을 받았다.


무인우편창구 (이 우편창구에서 원고를 보낸 것은 아닙니다.)



당선 이후의 번아웃


그런데 당선 이후 나는 번아웃이 왔다.


당선이 되었으면 기뻐야 할 텐데 왜 번아웃이 왔는가.

스스로에게 엄청나게 자문했다. 자문이 자책이 되는 오래된 날들이 많았다.


시를 쓰는 게 재미가 없었냐고? 아니다.

당선 이후에 회의감이 드는 특별한 사건이 있었냐고? 그것도 역시 아니다.


다만, 너무 많은 생각들이 나를 괴롭혔다.


앞서 적은 것처럼

당선 전에도, 당선 이후에도 나는 등단이 운이라고 생각한다.


등단뿐만이 아니라 작가로서 주목받는 일에도 상당한 운이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쓰는 사람은 많고, 읽는 사람은 적다.

잘 쓰는 작가는 많고, 발표할 수 있는 지면은 한정되어 있다.


나는 내 실력에 자부심이 있지만

내 당선이 꼭 나의 실력만으로 이루어진 일은 아니라는 걸 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자


인생이 점차 허무해졌다.

공허함이 나의 일상에 조금씩 침입해 들어왔다.


그 공허함을 아직도 제대로 정의하지 못했지만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거둔 성취가, 내가 거둘 성취가, 모두 운에 불과하다면 나는 어째서 더욱 노력해야 하는가?"



조금씩 다시 본질을 생각하기로


대략 2년에 걸쳐

나는 조금씩 이 공허함을 치워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본질을 다시 생각하기로 했다.

작가로서 내가 왜 글을 쓰고 싶은지, 내가 글을 왜 쓰고 싶었는지를 자문했다.


그러자 내가 가졌던 생각의 문제점들이 찬찬히 떠올랐다.


1. 나는 내가 아닌 타인의 기준에 통과하는 것을 더욱 중요하게 여기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등단은 운이다,

그래서 어쩌라는 건가?


등단을 하거나, 말거나 나는 시를 계속 써왔다.

시를 쓰는 한 등단과 무관하게 모두 시인이다.


이것은 등단한 후의 나에게도

등단 전의 나에게도

그리고 글을 쓰는 다른 모두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말이다.


이전에도 나는 시인이었고

이후에도 나는 시인이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의 삶이 더 소중하고,

등단과 같은 성취들은 그 삶에서 간혹 들려오는 박수갈채이다.


잠시 기뻐할 수 있지만, 그 기쁨이 글 쓰는 삶의 전부는 아니다.


나는 그 기준을 너무 대단하게 생각한 나머지

내가 살아가는 삶이, 내가 선택한 이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잊고 있었다.


2. 노력은 결과가 아니라 노력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


이러한 말들도 나의 번아웃을 정리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운은 기회라는 x축과 실력이라는 y축이 교차하는 지점이다.'


어디선가 전해 들은 이 말을 통해

내게 찾아온 운은 단지 운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게 찾아온 운,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찾아온 운,

그 모든 운은 기회와 실력이 우연히 교차하는 지점이다.


나의 노력과 무관한 자리에 운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은 나에게 큰 위로를 주었다.





* 변윤제 : 뜰아이들의 멤버, 시, 웹소설, 청소년소설 등 다양한 분야의 글을 창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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