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책은 사람들이 서로 감상을 얘기하고 싶게 한다.
천 개의 파랑(천선랑)이라는 책으로, 훌륭한 6분을 모시고 판교에서 독서모임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난달에 '돈의 심리학'이라는 책으로 모임을 갖고 난 이후 두 번째 모임이었습니다. 이번 책은 심각한 목적성을 갖고 읽는 책이라기보다는 위안과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감성적인 소설이었기 때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서로의 소감들을 나눌 것으로 생각하고 시작했습니다.
모든 독서모임에서의 첫 시작과 같이 책에 대한 가벼운 인상을 얘기하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첫인상에 대한 얘기를 들으면서 참석자들이 이 책을 나와는 어떻게 다른 관점에서 또는 같은 관점에서 읽었는가를 가늠해 볼 수 있기 때문에 좋았던 것 같습니다.
처음으로 말씀하신 분은 책의 첫인상을 '음산하다'는 단어를 쓰셨고, 첫 시도에서는 읽다가 포기했다가 독서모임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다시 읽기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로 읽기 시작하고 과학/문학이라는 선입견을 넘어서고 어느 순간 몰입해서 읽게 되었다고 얘기해 주셨습니다. 첫인상이 '음산했다'라는 느낌이 생각지 못한 단어여서 신선했습니다. 그런데, 그 단어를 듣고는 C-127이 대기실이라는 장소에 있는 첫장면과 낙마를 묘사하는 부분에서 그런 단어와 어울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른 분도 역시 SF라는 선입견으로 자신과는 맞지 않는 책이지만 어쩔 수 없이 읽게 되었는데, 각 등장인물이 생동감 있는 개별 특성을 가지고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구성에서 재밌었고, 졸리지만 않았다면 하루 만에 다 읽었을 것 같았다고 얘기해 주셨습니다. 또 다른 분은 고유명사를 어려워하고, 몰입에서 빠져나오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개인적 성향을 얘기해 주시면서 과학소설보다는 시나 수필 같은 장르를 읽는 독서를 해와서 이 책이 맞지 않을 것 같았다는 생각을 얘기해 주셨습니다. 그렇지만, 읽어보고서는 완전한 휴머니티 소설로 재미있게 읽었다고 하셨습니다.
다른 분은 투데이와 콜리에 공감이 많이 되어서 감정적으로 울컥한 경험을 많이 했었다고도 했고, 읽으면서 누가 주인공인지를 주목해서 읽게 되었는데, 각각의 등장인물들에게 나타나는 결핍이라는 것이 공통점으로 부각되면서 달리지 못하는 말, 의지할 지지대를 잃은 어머니, 걸을 수 없는 은혜, 사랑을 빼앗긴 연재를 언급해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지금 하는 일에서도 처음 만났을 때의 경제적 자립에 대한 감동보다는 빨리빨리라는 경쟁에 내몰린 현실이 다가왔다는 말에 정말 책을 깊이 읽으셨다는 감탄을 했습니다. 또한, 서평이나 책에 대한 평가를 읽고 자유에 대한 갈망, 비인간성, 경쟁에서의 도태와 갈등, 로봇 VS 인간이라는 주제를 찾아주시고 수동적인 삶에서 능동적이고 자유로운 삶의 인간이라는 측면으로 책을 읽은 분도 있으셨습니다.
실질적으로 첫인상에 대한 얘기는 가볍게 한 문장 정도로 얘기하실 것이라 생각했지만, 부정적 선입견에 반하는 즐거운 독서경험이 방언 터지듯 자신의 생각을 쏟아붓듯 얘기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읽은 지 조금 시간이 지나서 잊고 있던 장면들도 떠오르고, 나와는 다른 관점에서 읽으신 분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겠다는 공감도 하는 즐거운 오프닝 질문이었습니다. 실질적으로는 오프닝 질문이 이번 독서토론의 대부분이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두 번째 얘기를 나누고 싶었던 것은 SF라는 장르에 맞지 않게 섬세한 등장인물들에 대한 얘기였는데, 앞의 질문과 다분히 중복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제가 얘기했던 장남으로 가지게 되는 은혜에 대한 공감에 대해서 추가적으로 연재에 대한 공감을 보여주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은혜와 연재는 마치 서로를 배려하면서 양보하다가 모두가 피해자가 되어버린 것이 어색한 관계가 된 원인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연재처럼 헤쳐나가고 싶다는 말씀도 있었고, 연재 나름의 엄마와 은혜에 신경 쓰고, 희생하고 원하는 게 없었다는 부분에서 안타까워하고 공감했던 부분도 다시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머릿속에 영상처럼 장면이 나타나는 것이 신기했다는 말씀을 하셨고,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왠지 그 의도에 대한 내 나름의 답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세 번째 주제는 두 번째 얘기에서 나온 작가의 의도로 자연스럽게 넘어갔습니다. 동식물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꿈꾼다는 사상이 이 책에서 그대로 드러났다고 하는 말에서, 동식물이 주인이 되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콜리와 연재가 메인 스토리라고 생각했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큰 줄기는 콜리와 연재의 얘기이지만, 나무처럼 각 등장인물의 이야기들이 가지처럼 연결되어 있어서 책이 하나의 커다란 나무 같은 이야기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네 번째 주제는 로봇과 인간에 대한 얘기였습니다. 이 책이 묘사하고 있는 로봇은 충분히 미래에 있을 법하다는 점에는 모두가 동의해 주셨습니다. 특히, 로봇의 인지능력이 어떻게 사용될지에 대해서는 두려움도 있다는 말씀도 해 주셨습니다. 또한, 이 소설에서는 콜리라는 로봇의 인간적인 모습을 통해서 사람으로서의 바람직한 모습을 더 부각해서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행복이 나의 행복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 하늘을 보는 것을 좋아하는 것,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을 인지하는 것, 보경과의 대화에서 나타나는 공감능력들 등등. 사악하고 이기적인 인간과 콜리 사이의 어느 곳이 보통의 사람의 위치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앤딩 부분에서 콜리가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서 자발적으로 낙마하는 장면에서 이 소설의 모든 판을 콜리가 짠 것 같은 반전의 느낌에 깜짝 놀랐다는 말과 로봇으로서 고통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엄청난 희생을 가볍게 묘사하는 데서 오는 기묘한 불일치가 더 감상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이 책을 읽고 얘기를 나누면서 책에 대한 인상이 조금씩 조금씩 변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어서 더 좋았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서로가 서로를 구원하는, 결핍된 개인들이 연대를 통해서 서로에게 해결책과 빈 곳을 채워주는 구원으로 다가가는 것 같다는 말에 굉장히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이 책을 쓴 저자는 SF 소설이라는 장르를 통해서, 로봇 콜리를 통해서 사람을 얘기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상적인 사람, 지금보다 더 이타적인 사람, 욕망에 휘둘리는 사람이 아니라 나의 부족함을 타인의 배려로 채우고, 타인의 부족함을 나의 친절함으로 채우면서 조금 더 나은 세상이 될 수 있는 인간적인 유대가 있는 삶을 얘기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시 돌아와서 이 책의 제목인 천 개의 파랑은 어떤 뜻이었을까요? 콜리가 가지고 있는 단어가 1000개이고, 콜리는 하늘을 보는 것을 좋아했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몇 가지의 파랑이 아닌 모든 사람들을 개별의 단어에 매칭되는 파랑은 아니었을지? 1000개는 모든 것을 대변하는 숫자는 아니었을지? 이 제목은 콜리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모든 세상이 아니었을지?
쉬운 문체로 쓰였지만, 생각할 거리를 엄청 많이 주는 멋진 책이었다고 독서토론을 마무리했습니다.
책속에는 기억하고 싶은 문장들이 너무 많아서 발췟하는 것도 어려운 것 같았습니다.
"갈기가 물처럼 흐르고, 기쁨의 떨림이 몸을 감쌌다. 투데이의 빠른 박동을 콜리는 오롯이 절달받고 있었다. 투데이, 행복한가요? 그럼 저도 행복한 거예요."
"행복한 순간만이 유일하게 그리움을 이겨"
"너무 빠르니까요. 조금 느려도 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