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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y Nov 19. 2024

독서모임 - 멀고도 가까운(리베카 솔릿)

왜 좋았는지 몰랐는데, 모임을 통해서 좋았던 이유를 명료화하는 경험.

추천자, 발제자, 진행자 : 르네(추천자, 발제자)

토론도서 : 멀고도 가까운 _ 리베카 솔릿

참석자 :  르네, jstory, 치타, 푸름, 박선희, 아이스크림, moooony 7명


추천으로 이 책을 읽게 되었고, 너무 좋게 읽어서 책을 소장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각자 가볍게 책에 대한 감상을 얘기하면서 시작했습니다.


책의 상황과 유사한 경험하는 지인들을 만날 수 있었고, 문장이 아름다웠고, 몽상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는 말이 인상 깊습니다. 텍스트의 깊이보다는 유추 연관해서 유발하라리, 뮤턴트 파라다이스 등이 떠올랐고 읽기란 무엇인가?라는 의문도 들었다는 평가에는 공감이 가면서도 몽상으로 연결되지 않은 나의 독서를 되새김하게 되었습니다. 에세이에 신변잡기로 대충써도 문체 아름답고 그럴듯하고, 주관적 자기안에 갇혀있는 듯하다는 평가에는 약간 반박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철학, 신화적 느낌, 타인의 아픔에 공감과 연대를 추구하는 부분이 좋았다는 평도 기억에 남습니다. 논픽션 에세이와 대조해서 현실적인 에세이와 비교되는 지점을 지적하고, 현실 속에서 얻는 깨달음을 줬던 에세이와 비교하는 방식의 평도 있었습니다. 부제로 쓰인 '연대'가 다른 표현이면 어땠을까?라는 질문에 '이어짐'이라는 답이 나왔을 때 정말 딱 맞다는 생각이 들고, 재미있었습니다. 책읽고, 글도 쓰고, 떨어져서 생활하고, 고독을 느끼는 것은 어떤 효능감이 있을까?라는 질문과 읽기, 쓰기, 화해라는 실존적 문제, 인생의 변곡점이 되는 시점, 소화하지 못하는 읽기는 어려웠다는 평도 있었습니다. 옆에 같이 앉아 있는 것 같은 느낌, 읽는다는 행위에서 치료와 위안을 찾을 수 있다는 부분에 공감된다는 평이 있었습니다. 근래의 책들이 목적의식을 가지고, 진지한 책이었던 것에 비해 다른 류의 책으로 느껴졌고, 엄마의 죽음으로 인한 단절 가능성을 깨닫고 다시 엄마의 소용과 나의 3명의 어버이에게 전화를 하게 만들었다는 평도 있었습니다.


다들 이 책을 에세이로 한정짓고, 아름다운 문장 이외에 가볍게 보는 듯해서 굉장히 좋은 느낌을 받은 나로서는 의아했습니다. 내게는 이 책을 쓴 작가의 글쓰기는 내가 가장 닮고 싶은 글쓰기의 최고봉처럼 느껴졌습니다. 짧은 한 문장에서도 여러가지 비유와 중의적인 의미를 포함했고, 한문장 한문자 어떤 문장도 버릴 것이 없는 촘촘하게 짜여진 올이 얇은 실로 너무나 부드러운 비단을 짠 듯한 글이었습니다. 각 글들은 모두 의미를 가지고 있는 듯 보였고, 잠시 한눈을 파는 동안 저자의 글쓰기에서 무엇인가를 놓칠까 조바심을 가지면서 읽었던 것 같고, 모든 문장이 기억하고 재사용하고 싶은 문장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또한, 책 속의 또다른 책으로 각 장의 마무리에 쓰여있던  "잠자는 새의 눈물을 먹는 나방."이라는 문장에서 만들어지는 이야기의 엮어가는 방식의 예시도 좋았습니다. 또한, 발제문의 미로라는 단어가 가진 이 책의 구조와 연결에 대한 이해도 천의무봉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았습니다. 이로 인해서 같은 저자의 걷기의 인문학이라는 책을 사서 읽게 되었는데, 이 책만큼 번역이 잘 되지는 못했습니다. 


문학으로 독서를 시작했지만, 인생의 롤러코스터 이후 감정몰입이 안되어서 소설이 안들어 오는 시점이 있었는데, 백년동안의 고독을 통해서 다시 소설이 읽히기 시작했고, 플라톤의 국가에서 섬세하고 아름다운 글읽기를 희망한다고 하는 얘기를 들으면서 독서라는 것이 결국 삶과 함께 바뀌어 간다는 생각이 들었고, 맞는 시점에 맞는 책은 더 깊은 울림을 줄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합니다. 개인적인 연결점이 없으면 무용한 읽기처럼 느껴질 수 있다는 말에 이 책을 읽는 독법이 따로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각자의 개인의 필요에 의한 독서요구에 맞지 않을 경우가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다른 사람들의 감상을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그에 비해서, 나는 글쓰기를 조금 더 낫게 만들고 싶다는 욕심에 이 책의 문장 견본이 제시하는 부분이 맞아서 더 좋게 읽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1. 이 책은 “당신에게 이야기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되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살구라는 입구로 시작하여 살구라는 출구로 끝나는 미로와도 같다. 구불구불하고 우회하기 일쑤인 이 미로를 통과하는 우리의 손에 작가가 쥐어준 실타래 또한 이야기들이다. 이 실타래를 따라 마주한 출구에서 펼쳐진 풍경은 어떠했는가, 비선형적이고 파편화된 구조가 독서경험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아이슬란드의 미로공원의 출구도 같지만, 경험하기 전의 나와 경험하고 난 이후의 나는 변화하여 다른 내가 되는데, 살구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살구청으로 고정되고 그것을 나누면서 연대함으로서 고독으로부터 이어짐으로 나아간다는 연결들은 이 책의 큰 틀을 이해하는 좋은 지점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살구를 이야기의 연결점으로 지정해서 읽지 않았었는데, 이야기를 듣고 난 이후는 너무 명확해서 왜 그렇게 보지 못했을까?라는 의,아함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아이슬란드라고 하는 섬에 초청해서 친절함도 없이 혼자서 지내도록 하고, 그러다가 미로를 찾아가는 것을 보면서 저자가 성격이 까칠하다고 생각했는데, 잘 참고 견딘다는 생각을 했다는 한 분의 말에 대해서 고독과 휴식의 시간이 필요할 때가 있는데 그 필요를 충족해줬다고 느낀다는 전혀 다른 방식의 이해에서 개인의 상황에 따른 글의 받아들임의 다양성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지리적, 공간적으로 개인적 연결점을 찾을 수 있는 고독의 공간일 수 있다는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에 대해서, 해병대도 갔다오고 나면 좋은 것으로 기억된다라는 티키타카는 관람의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아이슬란드라는 매개를 통해서 아이슬란드의 국민밴드의 음악을 통해서 우주적, 영묘하고, 다채로운 락밴드의 음악이 에세이의 한 챕터와 동격으로 느껴지며 작가 자신의 고통과 승화가 음악으로 심상화되는 것을 느꼈다는 감상은 새롭고 궁금한 감각이었습니다.


2. 미로의 입구와 출구는 같기도 다르기도 하다. 입구의 살구와 출구의 살구는 살구이지만 같은 살구가 아니다. 풀어야 할 수수께끼였던 불안한 상태의 살구더미는 두 개의 병에 담긴 살구절임으로 보존되었다.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모티브였던 살구가 은유하는 바는 무엇이며, 그 은유가 각 장의 이질적인 주제를 연결하는데 어떻게 기능하였을까. 


살구에 대해서 다른 사람은 모르지만, 정교한 문학적 장치라기 보다는 자기의 변화의 실타래의 근원이라고 받아들여지지는 않지만, 이야기를 관통하여 이어주는 연결점의 역할을 하는 것 같다는 말이 이 책의 구조가 내게 더 명료하게 이해되는 느낌이었습니다.


12년만에 다시 똑같은 장소를 방문했을 때, 12년 전의 경험이 떠오르면서 그 장소가 전혀 다르게 느껴졌던 것이, 미로를 들어가기 전과 들어가고 나온 이후의 변화와 같은 것에 대한 예시가 되는 경험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들었습니다.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군대에 처음 들어갔을 때 오합지졸의 삶이었고, 연병장을 돌고, 2년 6개월이 지난 뒤 달라진 느낌과 철들고, 아랫사람을 관리하는 경험도 쌓게 되고, 달라지고 연단되는 다른 사람이 되는 느낌을 공유해줬습니다.


이 내용을 들으면서 책이라는 것이 또 다른 미로이고, 읽기와 쓰기도 이런 미로를 만드는 과정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책 속의 길을 따라 들어갔다가 다른 세상을 바라보며 다시 책으로 빠져나왔을 때, 우리는 원래의 우리와는 다른 새로운 우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통해서 모든 경험은 미로의 경험이고, 모든 독서는 미로의 경험과 연결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3. 솔닛에 의하면 읽는다는 것은 책속으로 사라지는 것이지만 동시에 이야기의 숲과 고독 너머에 건너편이 있고 그 건너편으로 가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글쓰기는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침묵으로 말을 걸고, 그 이야기는 고독한 독서를 통해 목소리를 되찾는다. 솔닛에게 읽기와 쓰기는 타인과의 연결의 행위이다. 우리에게 읽기와 쓰기는 무엇인가.


읽기는 우울증에서 빠져나오는 구원, 좋은 친구들로 이어져서 미로에서 빠져나올수 있었다는 평은 알면서도 다시 듣기에 좋은 말이었던 것 같습니다. 읽기에는 단계를 얘기하는 내용도 깊이 공감이 갔습니다. 책속으로 사라지고, 다시 세상을 만나고, 감정적 교류를 책을 통해서 하고, 책이 세상과 연결되는 문이 되고, 지식을 위한 책읽기를 하고, 감정적이고 내밀한 책읽기는 어려워지는 시기가 오고, 이런 것들이 서로 잘 통합이 되는 것 같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나와 같고, 나와 다른 읽기의 단계들을 가늠해보게 됩니다. 만약, 죽었다가 태어난다면 '거품'이라는 찰나의 순간만 존재하는 무엇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었다는 말은 한편 공감이 가면서도 완전히 이해하기는 힘든 말이었습니다.


내가 쓴 글을 읽기가 어렵고, 나의 내밀한 얘기를 쓰는 것은 어렵고, 쓰다보면 자기의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에 더 글을 쓰기도 어렵고, 읽기도 어려운 것 같다는 말에 훌륭한 재능을 가지고 있어도 쓰는 것을 싫어할 수도 있다는 것에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느껴졌습니다. 글쓰기가 치유의 과정이라는 것을 알지만 쉽지않은 과정이라는 것도 또한 사실인 것 같습니다.


'돌아가기 싫은 순간에 대한 편지쓰기'라는 주제의, 글쓰기 수업에 대한 얘기도 있었고, 쓰기에 용기를 내보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습니다.


읽기와 쓰기에 대해서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됩니다. 내가 글쓰는 플랫폼의 글을 내가 아는 모든 사람에게 홍보하고 알리지는 않는 것은 내 글에 대한 자신감의 문제이기도 하고, 나의 글에서 나타나는 나의 모습을 모든 사람에게 알리는 것에 대한 부담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나의 글쓰기가 솔릿처럼 섬세하고 아름다워진다면 더 자신감을 가지고 드러낼 수 있을까?라는 희망을 가지면서 좀 더 나은 글쓰기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ㅜ.ㅜ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나보다 훨씬 멋진 글을 쓰시는 분도 자기 글 읽는 것이 힘들다고 하니.....갈길이 더 멀어지는 것도 같습니다.


4. 솔닛은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과 감정이입을 통한 자아의 확장을 강조하며 여러 이야기를 사례로 드는데 사회구조적인 문제에 대해 개인적인 성찰에 기댄 감성적이고 피상적인 접근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5. 솔닛의 글쓰기는 개인적인 일화와 신화, 동화, 문학작품, 장소, 역사적 사건을 엮어 직조된 매혹적인 테피스트리로 문학적인 상상력과 삶에 대한 통찰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솔닛의 글쓰기의 철학적인 차원은 어떠한가. 글쓰기를 통해 고통을 통합하고 치유하며 삶, 죽음, 인간 존재와 세계의 본질을 보려는 깊이 있는 통찰로 이끄는가

무지와 자유를 허용하면서 읽기가 쉬워졌다는 말이 모임 내에서 있었습니다. 틀림을 허용하고, 잘 읽어야 되고, 제대로 읽어야 하고, 정답을 표현해야 한다는 것에서 벗어나면 읽기가 쉬워진다는 말이었는데, 머리를 큰 종소리로 울리는 말이었습니다. 항상 읽으면서 정답을 찾으려고 하고, 필요와 합목적성을 따지는 독서가 습관화되어 있는 나로서는 잘못된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자유로워질 때, 읽기는 새로운 몽상의 문이 되기도 하고, 다른 세상으로 이어지는 다리가 되기도 할 것 같습니다.


인간관계의 단절을 경험하면서 20년만의 책읽기를 시작하고 있으며, 어렸을 때의 책읽기로 되돌아가고 있고, 책을 잘 못읽고 있다는 분도 있었습니다. 읽는 것은 즐겁지만, 아직은 글쓰기는 안하고 싶다는 말도 했습니다.


자기의 글을 못읽겠다는 것은 너무 좋은 글을 말이 읽었서 인듯하고, 시장의 다양성에 따라 각자의 글은 나름의 독자층을 가진다고 생각하고, 과학과 철학을 위주로 한 글쓰기를 하고 있다는 전문가와 만나기도 했습니다.


글쓰기를 전기차의 폐배터리를 분해하고 불순물을 정제하여 분류하는 것처럼, 나의 머릿 속의 생각의 용광로처럼 섞여있는 내용들을 정제하고 분류하는 것이 글쓰기라고 하시는 분도 있었습니다.


책은 유혹이고, 책으로 인생을 망친 선생님을 알고 있고, 책 중독으로 인생이 불행해질 수 있다는 것을 보면서 세속적으로 감각은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분도 있었습니다. 책은 알콜이고 글은 세컨잡이라는 말로 정의했는데, 멋져보였습니다. 책보는 북스타그램에서 "하트"로 동기부여됨을 느꼈다고 합니다. A4 9~10장의 자연과학 고전을 쓴다는 말을 듣고 엄청 훌륭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책은 나름의 기능이 있다는 말을 하셨습니다. 책 속에 나오는 버지니아 울프의 비가에서 고통의 성찰이 기억에 남고, 철학적 융합이 일어나는 듯이 보였다는 말에 이 책을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니체는 사회철학이 없고,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소비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되고, 수잔 손택도 사회철학이 없다고 생각하고, 한나 아렌트 정도는 되어야 사회철학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말은 엄청 많이 읽은 사람의 평으로 들렸습니다. 들어는 봤지만, 완전히 그 말을 이해하지는 못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해결해야할 Emergency 상황, 알츠하이머 어머니와의 문제 해결, 저자의 상식, 물적, 정보적으로도 욕구가 채워지는 내용의 책이었다고 생각되며, 살구라는 너저분한 무질서에서 절임으로 박제된 상태로 썩지 않는 영원성을 나타내면서 작품에서 정제된 형태로 나타난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또한 이야기와 은유를 통해서 책의 실과 같이 이어졌다고도 했습니다. 공학을 배운 사람으로써 이야기에 대한 책을 읽지 않았으나, 모든 것을 이야기로 배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에밀졸라의 '돈'에서 19세기말 한사람의 성공과 몰락을 통해서 선물만이 거래로 존재하는 사회를 배울 수 있었다고 합니다. 고전의 소설을 통해서 이야기로 배우면, 로고스적인 것보다는 스토리-텔링으로 감정이 풀어지게 하는 것 같습니다. 이야기 읽기의 기준은 씀으로 읽고 난 후의 감상문은 무조건 올리는 편이라고 합니다.


글쓰기의 철학적 차원에 대한 내용은 명확하게 머리에 떠오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철린이라서 어떤 감상에 어떤 철학적 사유를 포함하는 것이 아직은 어려운 것 같다는 점에서 가야할 길의 방향이 보이는 듯도 합니다.


6.  당신을 매료시킨 문장은?

다시 읽으면서 나를 매료시킨 문장들을 찾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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