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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ra 클라라 Mar 14. 2023

달리기가 가끔 나를 슬프게 한다

인생과 달리기에 욕망을 얹고 싶다

목표지향적인 사람이 있고 과정 자체를 즐기는 사람이 있다. 똑 떨어지게 이 두 가지 성향으로 나뉘진 않더라도 어느 쪽에 무게를 더 두는 사람인 가는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다. 나는 목표지향적인 사람은 아니다. 타고난 성향도 그렇지만 나이를 먹어가면서 더 그런 것 같다. 내가 목표를 세운들 그 목표대로 인생이 흘러갈 만큼 세상이 만만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된 탓인가 보다. 목표를 매번 달성할 자신이 없으니 실패할 때 받을 스트레스를 짐작하고 미리 도피처를 만들어둔 것일 수도 있다.  

    

목표지향적인 사람은 이기는 것에 큰 의미를 두는 사람인 것도 같다. 남과의 경쟁에서 이겨야 하고 자신과의 약속도 꼭 지켜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을 종종 본다. 최근에 만난 40대 젊은 (내게는 40대가 정말 꽃다운 젊은 세대로 생각된다) 여 사업가는 인생의 모든 과정에 목표를 설정해 두었단다. 어떤 전공을 선택해서 몇 세까지 학업을 마치고 몇 세에 결혼해서 몇 명의 아이를 몇 살 터울로 낳고 몇 세에 사업을 시작해서 어디까지 사업을 확장시키겠다 ~ 이 모든 계획을 20대에 세워두었고 지금까지 이 모든 것이 계획대로 잘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경이롭고 존경스러운 그녀이고 나와는 다른 인류임이 확실하다.

   

돌이켜봐도 내 인생에서 내가 주도적으로 계획해서 완벽하게 실천했던 순간이 과연 있었는지 기억할 수가 없다. 고등학교까지야 선택할 것도 없이 순리대로 따라갔지만 이 과정 중에도 몇 등을 하겠다거나 어떤 상을 받겠다거나 하는 목표나 욕심도 없었다. 대학과 전공도 나의 목표나 계획보다는 학력고사 성적에 맞추어 무난히 합격할 수 있는 곳으로 진학했다. 취업도 당시 여자로서의 사회적 인식이 좋은 곳 중에서 나를 뽑아준 곳으로 갔다.

     

결혼에 대한 환상은 물론 있었지만 이러이러한 남자여야 한다~라는 계획까지는 없었다. 나와 성향과 가치관이 비슷한 남자를 운이 좋게 만나서 결혼했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당시 출산정책도 충실히 잘 따랐다. 욕심도 딱히 없었는데 남편이 미국으로 유학을 가면서 나도 자연스럽게 대학원 과정을 공부하게 되었다. 아이들을 키울 때는 나 자신의 커리어를 위한 계획은 중단되기 일쑤였다. 지금까지 크게 문제없는 인생을 살았다고 본다면 운이 좋았던 거고, ‘왜 난 제대로 이룬 게 없을까’라는 우울감이 들 때는 목표도 계획도 없이 살아왔던 내 인생을 탓하게 된다.  

   

달릴 때도 나의 이 성향이 그대로 드러난다. 나의 달리기에는 목표가 없다. 몇 킬로미터를 몇 분의 기록으로 언제까지 어떻게 달리겠다는 계획도 없고, 달리기 하면서 성취하고 싶은 그 무엇도 딱히 없고, 달리기 대회에 참가해서 기록을 깨고 싶은 대상도 없다. 한강변에서 모두가 나를 앞질러 뛰어가도 ‘no problem’이었다. 이런 지경이니 달리기 하면서 나를 심하게 몰아 부칠 필요도 없고 몸과 마음이 극한 상한까지 가는 경험도 해본 적이 없다.


 마라톤은 42.195킬로미터를 뛰어야 하는 극한 운동이다. 나의 성향이나 자세로 봤을 때 평생 동안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달리기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라톤 풀코스에 도전하겠다는 꿈을 품고 있겠지만 이런 소망도 없이 달리기를 하면서도 나는 만족했다. 내 몸이 바람직하게 변화되고 나의 적지 않은 단점들이 극복된 이유가 달리기 때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목표 지향적이 아닌 나의 달리기는 그 자체로만 봤을 때는 별다른 성과를 낼 수 없을 거라는 슬픈 생각이 요즘 든다. 90세를 훌쩍 넘긴 한 일본인 할머니가 단거리 달리기에 도전하고 있는 모습을 최근 TV에서 보았다. 백발에 허리는 약간 굽었지만 탄탄한 몸매를 갖고 있는 그녀는 90세~ 95세 연령대의 100미터 달리기의 세계 기록 보유자다. 일주일에 3~4번 하루 2시간씩 자원봉사자 코치의 지도하에 그녀는 타이어를 허리에 두르고 뛰며 허들을 넘는 혹독한 훈련을 받고 있었다. 그녀는 남에게 지기를 싫어하는 성격을 갖고 있단다. ‘젊은 사람들에게 지는 건 도리가 없지만 내 나이대의 그 누구에게도 지는 건 싫어요’라고 그녀는 말한다.

     

75세의 캐나디안 달리기 선수의 스토리도 소개되었다. 그녀의 방은 세계 대회에서 획득한 메달과 트로피들로 꽉 차있었고, 그녀는 한 해 동안의 경기 스케줄을 모두 체크해서 언제 어떤 대회에 참가해서 어떤 메달을 획득하겠다는 확고한 목표가 있었다. 그 목표에 따라 그녀도 역시 혹독한 훈련과정을 감내해내고 있었다.

     

일본의 세계적인 작가인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의 저서인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말하고 있는 그의 달리기도 나를 기죽게 한다. 그를 작가라고 말해야 할지 아니면 마라토너라고 말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그는 인생의 많은 부분을 달리기에 쏟고 있었다. 유수한 세계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긴 시간 동안 훈련을 체계적으로 하고, 기록 향상을 위한 일지도 꼼꼼하게 작성하며, 본인의 한계를 훨씬 넘는 극한까지 자신을 내몰면서 매번 새로운 목표를 설정했다.

     

목표 지향적이지 않은 내가 쉰아홉에 달리기를 시작했으니 내 달리기가 장대하게 발전하고 큰 성과를 낼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일 수 있다. 기록이나 성과보다는 내 발목과 무릎의 관절 상태부터 따져보게 되니 어쩌면 이런 나의 자세가 부상을 방지하고 오래 동안 달리기에는 더 현명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잘 살다가도 문득문득 ‘내 인생은 왜 이렇게 보잘것이 없을까’라고 한탄하듯이 현재의 나의 달리기에 만족하다가도 목표도 발전가능성도 없는 나의 달리기가 나를 슬프게 하기도 한다.  

    

김수영 시인의 시 [풀]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

나는 풀에서 내 모습을 본다. ‘쉰아홉의 나이’라는 바람, ‘큰 실패나 낭패를 만날지도 모르는 도전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바람 앞에서 나는 재빨리 누워버리는 풀의 삶을 선택해 온 것 같다. 시인은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도 더 빨리 일어난다고’며 풀을 응원하기도 한다. 나의 인생과 나의 달리기에도 작은 목표나 작은 욕망 정도는 더 얹어 주는 게 옳지 않을까 라는 고민을 새 봄에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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