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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ra 클라라 May 25. 2023

예순 여자가 달려온 1년 간의 기록

나는 달린다, 고로 존재한다


난 10킬로미터 달리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자전거를 탈 수 있고, 수영을 할 수 있고, 영어를 할 수 있고, 피아노를 칠 수 있고, 그리고 쉰아홉에 달리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2023년 5월 23일은 내가 달리기를 시작한 지 정확히 1년이 되는 날이다. 1년 전 이 날 5킬로미터를 달리기 위한 훈련을 시작했고, 그 훈련이 끝난 이후로 지금까지 꾸준히 5킬로미터를 달리고 있다. 마라톤에는 10킬로미터 종목에 참가해서 무난히 달릴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다.

      

달리기는 느닷없이 내 인생에 주어진 선물이라고 생각해 왔다. 단 1분도 달릴 수 없던 몸이었고, 사회적인 성공이라고 인정받는 것이 아닌 일을 꾸준히 규칙적으로 1년 이상을 해낸 적이 없었기에 내가 만들어 낸 결과물이라고는 감히 생각하지 못했다. 


최근에 문득 다른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나 자신에게 준 선물일 수도 있다는, 내 몸 어딘가에 달릴 수 있는 DNA가 있었고, 그 숨겨진 재능을 적극적으로 찾아내고 성실히 노력해서 얻어낸 소중한 나의 성취일 수 있다는 생각... 늘 나 자신을 평가하는데 인색했지만 오늘만은 오글거리는 것을 참고 나를 맘껏 칭찬하면서 자축하고 싶다. 

     

나는 매우 성실하게 달리기를 해왔다. 아파서 달릴 수 없었던 몇 주를 빼고는 1년 동안 주 3~4회 30분씩을 꼬박꼬박 달렸다. 더불어 나는 꽤 영리하게 달리기를 진행시켜 왔다. 현대 기술의 도움을 받아 기초 달리기 훈련을 무리하지 않고 체계적으로 끝낼 수 있었다. 그리고 몸 상태를 잘 파악해서 욕심내지 않고 나의 한계를 지키면서 1년 동안 2~3분 정도의 기록을 단축했다. 부상의 위기가 닥쳤을 때는 적절하게 대처해서 조기에 회복했고, 슬럼프가 왔을 때는 내 몸과 마음을 잘 다독여주는 유연성을 발휘해서 극복했다. 근력운동도 병행해서 달리기에 도움을 주고 있다.

     

리즈시절에 버금가는 멋진 몸매를 갖게 되었다. 1년 전까지 나는 노년으로 접어드는 나이이니 뱃살이 세 겹으로 겹쳐지고 팔다리가 출렁거리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거울 속에 비치는 내 모습을 애써 외면하면서 노화되는 내 몸을 속수무책으로 받아들였었다. 현재의 나의 몸에는 군살이 사라지고 종아리와 허벅지는 단단하다. 팔에는 근육이 제법 근사하게 붙어서 민소매티셔츠를 다시 입는다. 제일 늦게까지 변화가 없던 복부에도 11자 복근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는 애정을 담은 따뜻한 시선으로 내 몸 여기저기를 살펴본다. 허벅지와 팔뚝에 새로운 작은 근육이라도 생기면 쓰다듬으며 탄성을 지른다. 차마 배를 드러내고 외출할 수는 없지만 집에서는 티셔츠의 밑단을 묶고 복근을 노출시켜 본다. 무심한 남편이 옷을 왜 그렇게 입느냐고 면박을 줘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20대 못지않은 강한 체력을 갖고 있다, 20대 초반의 작은 딸과 맛집을 찾아 해방촌 깔딱 고개를 오를 때 더 이상은 못 간다고 비명을 지르는 딸을 내가 앞에서 끌고 갔다. 도보 30분 이내의 거리는 걸어 다니는 습관도 붙었다. 빠른 걸음의 내 속도를 대부분의 사람들은 따라오지 못한다. 달리기가 무릎연골이나 관절에 무리를 줄 수 있다고 주변에서는 걱정을 하지만 아직은 이상 없다. 오히려 경사진 곳을 오르내릴 때 삐걱거리고 시큰거리던 발목과 무릎의 증상이 사라졌다.

     

현재의 나의 길쭉한 손톱에는 분홍색 매니큐어가 칠해져 있고 발은 깨끗하다. 내게는 어릴 때부터 1년 전까지 손톱을 물어뜯고 발바닥의 피부를 벗겨내는 고약한 버릇이 있었다. 손톱을 기를 수도 예쁜 색깔을 입혀 본 적도 없었고, 여름이면 슬리퍼사이로 드러나는 상처투성이의 발은 나의 큰 수치고 약점이었다. 이 사소한 습관조차 고치지 못한다는 자괴감은 열등감이 되어서 나의 인격 자체를 스스로 평가절하하는데 큰 몫을 했다. 달리기가 뇌에 미치는 과학적 근거를 제시할 필요성도 없이 나는 달리기 때문에 이 습관이 고쳐졌다고 믿고 있다.

       

달리기는 나 자신을 더 정성스럽게 보살피도록 만들어준다. 아픈 곳은 없는지, 제대로 먹고 있는지, 잠은 충분히 잤는지를 매일 점검하게 한다. 한 가지라도 부족한 게 있으면 즉각적으로 달리기에 지장을 주기 때문이다. 다양한 외부 자극으로부터 내 몸을 건강하게 지킬 수 있는 방법을 공부하게 되었고 항상 내 몸이 안녕한 상태인지 예의주시하게 되었다.

      

달리기는 내가 나 자신에게 가졌던 편견이나 오해를 바로 잡아주었다. 알고 보니 나는 꽤 괜찮은 신체조건을 갖고 있었다. 큰 키는 아니지만 적절한 비율과 튼튼한 골격을 가진 멋진 몸매의 사람이었다. 나는 인내심이 있고 성실한 사람이었고 잠깐의 고통과 역경 뒤에는 즐거움이 기다린다는 것을 믿는 낙관주의자였다. 위기를 원만하게 극복해 내고 계획을 합리적으로 세우는 슬기로운 사람이기도 했다. 

      

나의 달리기가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발휘하기를 바란다. 친구나 내 연배의 지인들은 내가 달리는 것을 보고 달리기의 위력을 실감하지만 자신들이 달릴 엄두를 내진 못한다. 대신 딸과 아들들에게 권한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인 그들의 2세들이 달리기를 시작했다는, 그리고 매우 즐거워한다는 소식을 들려준다. 사회에 선한 것 하나쯤은 전해준 것 같아 기쁘다.

     

큰 딸이 달리겠다는 선언을 했다. 더 이상 PT에 돈을 탕진하지 않겠노라며 현재 맡은 바쁜 업무가 마무리되는 데로 달리기를 시작해 보겠단다. 지난 1년간 엄마의 변화된 모습을 본인의 눈으로 목격하고는 달리기가 몸만들기에 최고의 운동이라는 결론을 내렸나 보다. 처음으로 엄마 역할을 제대로 한 것 같은 감동과 흥분을 느꼈다고 하면 과장일까?

      

난 바닷가 모래밭의 게 같은 엄마였다. 자식에게는 똑바로 걸으라고 가르치지만 정작 자신은 옆으로 걷는 본보기 밖에 보여주지 못하는 게. 행복하고 의미 있는 삶이 어떤 건지 나 자신도 잘 모르면서 딸들에게는 제대로 된 인생을 살아가라고 끊임없이 잔소리하고 닦달했었다. 달리기를 하면서 ‘이 좋은 걸 우리 딸들도 하면 좋겠다’라는 생각은 늘 했지만 입 밖으로 내본 적은 없다. 어떤 말도 잔소리일 뿐 자식의 생각을 바꿀 수 없다는 걸 오랜 시행착오 끝에 알았기 때문이다. 딸이 보고 배운 거다. 드디어 내가 엄마로서 딸의 인생에 도움이 되는 본보기를 보여주었다는 게 벅차도록 기쁘다.

      

달리기는 나의 사회적인 성공과는 관련이 없다. 그러나 내 인생에 가장 드라마틱하게 공헌했다. 어느 날 나의 달리기는 끝이 날 것이다. 달리지 못해도 내 인생은 괜찮다는 걸 자신할 때까지는 나는 계속 달릴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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