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척철교
원주시 판부면 금대리에 있는 '백척철교'는 국내에서 가장 높은 철교로 금교역과 치악을 연결하고 있다. 백척이나 되는 높이에 있다고 해서 백척 철교라 부른다. 지금은 철거되어 좌우로 교각만 남았다. 33m나 되는 까마득한 높이다.
'척(尺)'이라는 단위는 지금은 거의 쓰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말에는 자취가 남았다. 삼척동자란 말이 있다. 1척이 약 33㎝이니 삼척은 99㎝ 정도 된다. 1m도 안 되는 작은 아이란 뜻이다. 키가 엄청나게 큰 사람을 구척장신이라 불렀다. 계산해보면 297㎝ 정도 된다. 장신이 즐비한 농구 선수 중에도 2m를 넘는 선수는 많지 않은데 2m97㎝나 되는 거한이라니 과장이 좀 심했다.
백척간두란 말도 있다. 백척 높이의 장대 위에 선 위험천만한 상황을 나타낸 말이다. 백척철교가 준공되던 1942년 동아시아는 백척간두의 위기 속에 있었다. 1937년 일제가 중일전쟁을 일으키고 1938년 국가총동원법이 제정되어 의회의 동의 없이 칙령에 의해 전쟁에 필요한 인적·물적 자원을 동원하게 되었다.
중앙선은 한반도 중부와 남부 지방에서 생산되는 지하자원, 목재, 인적 자원 등을 대량 수송하기 위해 중요한 교통수단이었고, 백척철교 역시 그 목적으로 건설되었다.
백척 높이의 철다리 공사에 동원된 조선의 인부들은 자신의 몸을 보호할 변변한 안전 장비도 없이 까마득한 높이에 매달려 일해야 했다. 그 위험한 공사 현장에서 떨어져 죽어간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고 한다. 위험한 공사장에 동원되어 목숨을 담보로 일해야 했던 사람들이 군함도 하시마 탄광처럼 국외에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국내 곳곳에도 있었다. 철교 가설에 동원된 사람들이 처한 위기가 백척간두였다.
백척철교는 6.25 전쟁 때 파손되었다가 미군 공병대에 의해 복구되었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를 계기로 백척철교의 안전 문제가 제기되어 철교 옆으로 터널을 뚫고 새로운 다리를 놓았다. 이후 백척철교는 철거되고 다리 양쪽 끝으로 교각만 남아 있다.
금대리에 살았던 사람들은 백척철교를 지키던 군인들의 기억이 남아 있다고 이야기한다. 북한군이 백척철교를 파괴하지 못하게 지키는 것이라는 군인들의 말도 기억난다고 했다. 백척철교가 군사적으로도 중요했다는 뜻이다. 백척철교 교각 주변에 남아 있는 벙커가 주민들의 기억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원주 AK 플라자 공사 당시 2층 건물 높이에서 추락사고를 당한 분이 작은아버지였다. 다행히 떨어진 곳이 물웅덩이라서 심한 부상은 피했지만 오랜 기간 성지병원에 입원해 계셨다. 건물 공사에서 두 번이나 떨어진 친구도 있고 사방댐 공사 현장에서 추락하는 합판 더미에 깔려 하반신 마비가 된 친구도 있다. 요즘도 하루에 일곱 명 정도 노동자가 재해를 당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다고 한다.
백척간두와 같은 위험에 노출된 채 일할 수밖에 없는 노동자는 지금도 여전히 많다. 죽지 않고 일할 권리가 절실한 세상이다. 안전하고 행복하게 사는 삶은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조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