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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그 May 02. 2023

신카이 마코토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2016)

돌아올 것이라는 확신의 시간이 황혼이 되어.

주관적 평점 : ★★★

감독 : 신카이 마코토



 나는 원래 애니메이션을 선호하지 않는다. 배우의 연기를 통해 느껴지는 감정이나 촬영 기법 같은 요소들을 통해 볼 수 있는 재미가 제한된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엄청난 특장점이 없다고 느껴지면 쉽게 집중하지 못하는 편이다. 내가 다양한 영화를 보겠다고 결심하기 이전에 본 애니메이션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라는 걸 떠올리면 더더욱 그렇다. 그래도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보기로 마음을 먹은 이상, <스즈메의 문단속>을 보러 가기 전에 ‘재난 3부작’이라고 불리는 신카이 마코토의 세계를 경험해 보고자 <너의 이름은>을 선택했다.



 이 영화는 신카이 마코토가 왜 ‘빛의 작가’라고 불리는지 2시간 내내 여실히 드러낸다. 특히 특정한 물체에 반사되는 빛의 작화가 애니메이션이라서 표현할 수 있는 최대한의 장점을 보여준다. 더불어 굉장히 사실적인 묘사가 이 장점과 결합되어 개인적으로 애니메이션임에도 충분한 몰입감을 받았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들의 단점으로 개연성의 부족을 지적한다. <너의 이름은> 역시 그 부분에 대한 지적을 받는다. 그렇지만 이 작품을 개연성으로 판단하기에는 조금 지엽적이라고 볼 수 있고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개연성 부족인지 짚는다면 너무 길어질 것 같다. 그래도 한 가지 적어보자면, 희미한 기억의 조각이라는 상황 설정, 황혼이라는 시간 설정 그리고 만남을 확신하는 대사는 너무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아닌가 싶다. 서로의 이름은 기억 못하지만 마주친다면 알아볼 것이라는 내용을 작품 중반부부터 계속해서 관객들에게 상기시킨다. 또 하나는 왜 타키는 미츠하가 어디 사는지 모르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만약 실제로 본인의 몸이 바뀐다면 내가 어디 있는지부터 알아보지 않을까? 그리고 심지어 미츠하는 작중에 이토모리 고등학교에 다닌다. 몸이 더 이상 바뀌지 않은 후에 기억을 잃어버렸으니까 그럴 수도 있지 않나?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미츠하는 타키가 도쿄에 사는 것도 인지하고 찾아가기까지 한다.



 그래도 이 작품이 많은 사람들이 찾아보고 칭찬하는 이유는 감정 묘사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감정 묘사는 감정이 생기게 된 과정의 묘사가 아니라 감정이 생겨난 이후의 묘사다. 소중한 사람의 부재로 인한 당황, 재난으로 인해 그 사람은 이미 이 세상에 없다는 것에 대한 혼란스러움, 만남의 순간의 행복과 그 이후의 불확실한 감정에 대한 묘사는 동일본 대지진을 기억하는 일본인의 감정을 충분히 만질 뿐 아니라 작중 상황에서 인간이라면 가지는 정서를 집합시켜 놓았기 때문에 일반 관객도 쉽게 이입할 수 있다고 본다.



 요즈음 다양한 장르를 탐색하면서 그동안 너무 폐쇄적으로 영화를 골라봤다는 반성을 하기도 한다. 각 장르마다 특색이 있는데 왜 단면적인 모습만 보고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다. 물론 각 장르를 대표하거나 흥행한 작품들만 골라봐서 그럴 수 있다. 그래도 개인적으로 <너의 이름은>을 통해 닫힌 마음을 열었기 때문에 나름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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