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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 Dec 24. 2023

108 배와 인생

마음 공부

새벽 4시 40분을 알리는 알람이 울린다. 100일을 기약하고 108배를 시작한 지 77 일째가 되는 날, 작은 음악 소리에 정신을 수습하고 일어나 세수를 한다. 느릿느릿 움직여 물을 한 잔 떠다 놓고 앉아 마음을 가다듬는다. 참회할 준비가 끝나면 손가락에 108 염주를 걸고 절을 시작한다.  한 번에 염주 한 알.......

낡고 부실한 관절우두두둑 소리를 내며 삐그덕거린다. 음은 늘 순탄치 않다. 계속 누워 있기를 바라는 몸의 관성과 움이려는 의지가 불화하며 투닥거린다. 두 손을 모은 채 무릎을 꿇고 허리를 굽혀 이마가 땅에 닿도록 드리는 순차적인 동작이 부드럽게 연결되지 않는다. 여기에 오랜 통증을 줄여보려는 요령까지 더해지면 사지에 힘이 고르게 분배되지 않아 고꾸라질 듯 중심이 흐트러지기도 한다.

어둑한 조명 아래 초로의 몸이 한동안 어설프게 꾸벅거려야 팔다리, 허리가 편안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뒤뚱거릴 때마다 흩어지던 생각을 고요히 굴릴 여유 생긴다. 모든 괴로움의 뿌리가 다 내 마음 가운데 있다는 수행문의 내용을 되새기며 어제의 나를 되돌아 본다. 행동으로, 말로, 생각으로 지은 오를 떠올리고 나를 구속고 괴롭힌 모든 것이 나로부터 시작되어 나에게 돌아온 것임을 확인한다.

황무지에 피고 진 이 내게 건내준 불행아지고 어질 듯 이어지며 견디던 지난 날들이 사라진다. 우리는 삶이라는 옷을 걸치면 모두 똑같아지는 낙엽 같은 존재라는 것을, 나의 삶이 곧 너의 삶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움과 원망, 증오를 흘려보낸 마음을 영혼의 서가에 가지런히 세워 두고 평온함에 젖을 때쯤이면 많게만 느껴지던 염주 알이 어느덧 열 대여섯 개밖지 남지 않는다. 이마에 땀이 맺히고 두 다리가 뻑뻑해도 이제야 거뜬해진 몸에 정신이 영롱한데 막상 더 굴릴 것이 얼마 없으니 아쉽기까지 하다.

세상 앞에 나를 낮추고 어리석음을 참회하는 경건한 마음으로 남은 절을 한다. 방울방울 흘러내리는 땀에 젖은 채 오체투지의 모든 순간을 곡진히 받아들인다. 진심을 싣는다. 마지막 염주 알을 넘겨 108배를 마치고 눈을 감으면 이전에 없던 자유와 평안이 내게 깃다. 

 고 험난했던 여정 끝에 지혜의 문만났다. 인생의 2/3 지을 지나며 뒤늦은 행운이지만 그래도 새 길을 찾았으니 그것으로 됐다. 이제 남은 길은, 불행 배틀에서 최고봉이 되려고 기를 쓰던 내 내면의 아이를 토닥이며 걷고 싶다. 랜 동안 어둠 속에서 홀로 울던 그 아이가 와 함께 모든 하루를 온전히 살아 른이 되고 배꽃처럼 늙어 가기를 바란다.


가문비 나무, 봄,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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