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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 Sep 13. 2023

가볍게 살기

사는 이야기

마음 둘 데가 없어 한동안 힘들었다. 집문제, 인간 관계의 어려움 등등, 근심의 아궁이 속에 웅크리고 있던 불씨들이 타닥타탁 다시 타오르기 시작했다. 갑작스 벌어진 일 아니어서 조정이 쉽지 않고 해결의 방법을 찾기는 더더욱 어워 보였다. 이미 많은 경험을 통해 내일을 걱정하고 준비하는 것이 소용없으며 전개되는 상황에 맞춰 그저 흘러가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런 깨달음은 평화시에만 의젓하고  막상 버거운 문제가 불거지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출렁대는 마음을 붙잡아 진정시키려니 진이 빠졌다.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계속 살려면 적어도 1억, 많게는 2억이 더 있어야 한다. 아직은 동네 친구를 만나는 것이 재미있는 작은조카 녀석과 성당에 매일 나가는 엄마 때문에 좀더 이곳에 머물고 싶은데, 어떤 결정을 내리려는지 집주인은 2 주일째 나를 기다리게 하고 있다. 옮겨 앉을 곳을 인터넷으로 찾다보면 형편에 맞는 동네는 멀고 낯선 곳뿐이라 입안이 깔깔해졌다. 내 집 없이 사는 것이 피곤했다. 게딱지 같아도 우리 집이 으면 좋겠다 싶었다.

 

지난 주에는 우연히 제 아버지 집에 들른 작은조카가 아빠가 재혼을 할 것 같다고 내게 말했다. 녀석은 자신의 남은 인생을 다 걸고라도 결단코 막을 거라며, 제 누나가 들으면 걱정할까봐 농담 반 진담 반의 아픈 말들을 내게만 몰래 꺼내놓았다. 그 밤에는 나도 녀석도 잠들지 못했다.

다음 날 모두에게 우리의 합리적 의심을 공개했다. 큰조카는 의외로 쿨하게 저는 가볍게 생각할 거라해서 조금 놀랐다. 우울과 공황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도 죽은 제 엄마로부터 잘 분리가 됐다는 걸 알았다. 큰조카의 반응을 보면서 나는 나와 작은녀석의 문제를 깨달았다. 세상을 등진 동생을 내려놓으면 내 마음 속에 지뢰처럼 혀있는 제부에 대한 증오와 멸시를 흘려 보낼 수 있을 텐데, 직 남아있는 미련이 억지스럽고 한갓된 감정 안에 자꾸만 나를 가둔다.


사방으로 흩어진 마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괴로운 가운데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하나 읽었다. 감사하게도 뒤숭숭하던 마음이 가라앉았다.

"여러분들은 인생을 너무 고상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저는 인생을 가볍게 생각합니다. 산에 다람쥐 한 마리가 태어났다 죽는 것만큼, 길가에 풀 한포기가 났다가 시드는 것만큼, 인생은 별 게 아니에요. 저의 명심문은 '지금 출발합니다'입니다. 이 말은 어제까지는 연습이고 오늘 하루가 실전이란 뜻입니다. 원래 연습을 할 때는 이런 저런 일이 생기기 마련이기 때문에 지난 일에 대해서는 아무런 집착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중에서-


죽고 사는 것이 별일 아닌데 멀리 이사 가는 것이 뭐 대수겠나. 형편껏 살면 되는 것을 욕심을 버리지 못해 내가 스스로 괴로움을 만들고 있었구나. 그래, 다 괜찮다. 지금껏도 살았는데 앞으로 못 살겠나. 어제까지의 일들은 모두 내려놓고 가볍게 오늘을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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