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츠파 - 꿈을 이루는 란다
띠링. 메시지 알람이 울린다. 나는 모처럼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거실 창가에 앉아 있다. 식탁에 놓인 핸드폰을 가지러 간다. 이 시간에 누구지. 남편이 출근한지 얼마 안된 이른 아침시간. 아라비안 나이트 예멘은 하루의 시작이 늦다. 궁금해하며 핸드폰을 연다. 메시지를 읽는다. 혼자 있는 거실에서 깔깔대며 웃었다. 아주 오랜만이다. 이렇게 웃은 적은.
“Mrs. Park. Do you know Gangnam Style?” (미쎄스 박, 강남스타일 알아요?)
이게 궁금해서 란다는 아침까지 기다렸다. 호기심 많은 란다는 나를 만나기만 하면 질문을 쏟아낸다. 질문의 범위도 다양하다. 한국 드라마 주인공과 아이돌 이야기부터 한국에서 여자의 인권 수준까지. 보통 예메니들은 영어를 말할 때 아랍어 발음이 섞여 있다. 그런데 란다는 또박또박 미국식 발음을 한다. 나는 란다의 입에서 나는 영어발음을 듣는 것이 좋았다. 대부분의 아랍인들이 싫어하는 아랍의 적국인 미국 발음을 하는 중동 여자아이. 란다는 피아노의 '솔' 처럼 경쾌했다. 그녀와 대화하면 나도 솔 소리가 났다.
“Mrs. Park! I am getting married!” (미쎄스박, 나 결혼해요!)
사막의 모래바람이 이집트의 온 거리를 휩쓸던 날, 란다는 내게 메시지를 보냈다. 예멘을 떠난지 2년 가까이 되었을까. 전통적 방식을 고수하는 예멘의 부모님들은 딸이 결혼할 사람을 미리 정해두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떠날 때만 해도 란다는 교제하고 있는 사람이 없었는데. 예정된 사람이 있었던 걸까. 에머슨은 '사람은 그가 하는 말이 곧 자신에 대한 판단'이라고 말했다. 란다는 전통을 따르는 것에 대한 예메니로서의 이질감을 토로하곤 했다. 내가 아는 란다는 예정된 사람과 결혼하는 문화를 쉬이 따라갈 사람이 아니다.
“Wow! Congratulation! What happend? Where did you meet the lucky guy?” (우와! 축하해! 남자친구는 어디서 만났어? 그간 어떻게 된 일이야?)
란다는 페이스북을 통해서 남자친구를 알게 되었다고 했다. 영국 시민권을 가진 아랍인인데, 직장 때문에 터키에 살고 있다고 한다. 아무리 개방적이라고 해도 남자친구 여자친구를, 그것도 결혼하고 싶은 사람을 부모의 허락없이 사귀는 것이 란다에게도 남자친구 마음에도 못내 걸렸단다. 그래서 남자친구는 두말없이 비행기를 타고 예멘에 왔다. 란다의 부모님을 만나고 정식으로 허락을 받고 결혼을 전제로 교제를 시작했단다. 소식을 전하는 란다의 목소리가 떨린다. 자신의 꿈이 현실이 되었을 때, 그것을 다른 이에게 전달하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란다의 떨림은 그냥 성대가 떨리는 것이 아니다. 온몸이 전율하는 그 떨림으로 목소리까지 떨리는 것이다. 가슴이 벅차오르는 느낌의 떨림. 그것이다.
란다는 꿈이 많았다. 하고 싶은 일도 많고, 되고 싶은 것도 많았다. 그녀는 항상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를 이야기했다. 여자의 인권이 쉽게 무시되는 가난한 나라에서 여자로 태어나 전통과 관습을 따르는 것이 마땅한 사회적 분위기가 있는데 란다는 환경적 제약은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처럼 꿈을 말했다. 란다는 한국 대사관에서 일하며 다른 나라의 문화와 시스템을 배웠다. 그녀는 늘 터키에 갈 거라고 말했다. 그 날을 위해 지금 준비한다고 했다. 가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구체적인 것은 없다. 그러나 란다는 믿음이 굳건했다. 그녀는 더 큰 세계를 갈망했고, 준비하며 기다렸으며, 스스로에게 되새겼다. 조던 피터슨이 말한 한계를 뛰어 넘는 믿음. 그녀는 꿈을 꾸며 믿음으로 자신의 환경을 헤쳐 나갔다.
아무리 고귀한 사람이라도 인생에는 정해진 길이 없다.
그들은 용기를 내어 자신에게 닥친 문제에 정면으로 맞섰고,
그렇게 자발적으로 맞서자 두려움이 어느 정도 사라졌다.
사람들은 믿기 힘들 정도로 강하고 용감해질 수 있다.
물론 그럴 수 있는 능력이 우리에게 무한한 건 아니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한계가 없다는 것이 나의 믿음이다.
-조던 피터슨, 질서너머 중에서
란다의 부모님은 남성 중심 사회에서 네 자녀에게 동등한 교육의 기회를 주었다. 민주적인 부모님은 늘 자녀들에게 꿈 이야기를 물어보았다. 사회적 종교적 신분적 환경에서 말이 안되는 것처럼 느껴지더라도 부모님은 자녀들의 꿈을 경청하고 축복했다. 아이의 꿈은 부모의 재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평범한 란다의 부모님은 비범한 아이들을 키워냈다. 꿈을 꿀 수 있는 가정에서 자란 란다는 복잡한 현실과는 상관없이 자신의 꿈을 이루었다. 그녀는 매일을 긍정적으로 열심히 살았다. 그것이 언제 어떻게 일어날지 알 수 없지만 길의 방향은 놓치지 않았다. 에머슨이 말한 '내가 아직 본 일이 없는 것, 모르는 것을 믿는 믿음'으로 그 길을 걸어간다. 그리고 어느 날, 예멘에 있던 란다는 어느새 터키에서 삶을 맞이하게 되었다.
Chutzpah(후츠파) 정신을 아는가. 후츠파는 히브리어로 뻔뻔함, 저돌성, 담대함을 뜻하는 말이다. 어려서부터 형식과 권위에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질문하고 도전하며, 때로는 뻔뻔하면서도 자신의 주장을 당당히 밝히는 유대인 특유의 도전정신이 바로 후츠파이다. 유대인들은 자신의 사명과 비전을 향해 저돌적으로 달려나가도록 교육을 받는다. 란다는 후츠파의 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꿈을 향해 걸어가는 길에서 거침이 없다. 간절한 바램과 최선을 다하는 삶의 콜라보는 그녀를 터키에 데려다 주었고, 거기서부터 그녀는 또 새로운 꿈을 꾼다. 란다는 후츠파 정신으로 또 이루어낼 것이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는 숙제를 한다. 종이에 커다랗게 그림을 그렸다. 저녁을 준비하는데 주방에 들어와 종이를 내 눈 앞에 들이댄다.
“한빈아, 이게 뭐야? 무슨 그림이야?”
“응, 엄마. 선생님이 뭐가 되고 싶은지 그림 그려 오래.”
“그래? 한빈이는 뭐그렸어?”
“응! 나 축구선수 그렸어!”
순간 가슴이 철렁한다. 과학자, 경찰관 세상에 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데 운동을 하겠다고 말하는 아이의 말에 좀처럼 웃어지지가 않는다. 아이에게 이 마음을 들키면 안된다. 최선을 다해 마음을 끌어모으자. 나의 대답을 기다리는 아이의 맑은 눈을 본다. 나는 싱긋 웃으며 그라운드에서 뛸 한빈이의 모습이 기대된다고 이야기했다.
뒤돌아서 파를 다듬었다. 파뿌리를 물로 깨끗이 씻어낸다. 파가 맵다. 눈물이 난다. 아이가 축구선수가 되겠다고 하는데 가슴이 철렁해서 미안한 마음. 100세 시대에 아직도 한 가지 직업밖에 가지지 못하는 것처럼 엄마의 시야가 좁아서 미안하다. 그 직업마저도 내가 정한 경계 안에서 정해졌으면 싶은 나의 좁은 마음이 미안하다. 너의 꿈이 무엇인지 먼저 묻지 않아서, 그 꿈을 좀처럼 함께 기뻐할 수 없어서 나는 계속 눈물이 났다. 아이가 달려와서 엄마 왜 울어요 묻는다. 나는 파가 매워서 운다고 말하며 웃었다.
현실과 다를지라도, 그것이 내 눈에 허황된 것처럼 보일지라도. 나는 아이의 꿈을 지지하고 싶다. 아이가 꿈을 말하는 이 공간이 안전했으면 좋겠다. 그 꿈이 날개를 달고 날아갈 수 있도록. 행여 실패해도 후츠카 정신으로 이겨낼 수 있도록. 내 시야가 먼저 넓어지길. 그래서 내 생각보다 더 큰 아이를 볼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