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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 May 31. 2023

아버지의 권위

아바 - 마르완과 아버지






아이는 내 옷을 잡아 끈다. 밖으로 나가자고 한다. 날씨는 무서울 정도로 덥다. 나시에 반바지를 입고 나가도 아이는 5분만에 땀으로 젖는다. 아이의 재촉에 무거운 몸을 이끌고 밖으로 나간다. 종종 걸음으로 뛰어 내려가는 아이의 속도를 따라갈 수가 없다. 아아. 잠시만. 엄마랑 같이가요. 엄마는 뱃 속에 아기 때문에 못뛰어요. 아이는 잠시 멈춘다. 지하로 내려가는 주차장 입구에 서서 크게 이름을 부른다.


  “Marwan!”


  대답이 돌아오길 기다린다. 아무 대답이 없자 더 큰 소리로 이름을 부른다.


  “Marwan!”



문이 열리고 고개가 빼꼼히 나온다. 마르완이다. 아이를 보더니 싱글벙글 웃으며 발가락을 조리에 제대로 넣지도 않고 뛰어온다. 오. 조심조심. 제 발에 신발이 걸려 넘어질 뻔 한다. 멈추고 다시 신을 신으며 우리 쪽을 바라본다. 아무 일 없다는듯 배시시 웃는다. 아이도 따라 웃는다. 이집트는 누구나 쉽게 놀 수 있는 공용 놀이터가 따로 없다. 그래서 이 두 꼬마 녀석들은 건물 지하 주자창 입구로 내려가는 길목을 놀이터 삼아 뛰어 논다. 지하라 그나마 시원하다. 나는 지하에 의자를 두고 앉아 아이들이 노는 것을 지켜본다. 마르완이 자기가 타는 자동차를 가지고 온다. 주차장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려는 모양이다. 너무 경사지진 않으니 지켜본다. 슈욱. 무사히 도착했다. 자기가 탄 자동차를 가지고 다시 위로 올라간다. 또 타려나. 아. 아이에게 자동차를 준다. 아이는 마르완에게 받은 자동차 손잡이를 잡고 자리에 앉았다. 내려올 것 같다. 네 살 마르완이 탈 때는 경사가 완만해 보였는데 아이가 앉으니 절벽처럼 가파르다. 가만히 의자에서 일어났다. 혹시라도 아이가 내려오다 굴러 떨어질만한 곳으로 걸어간다. 신이 난 마르완은 숫자를 세고 아이는 출발을 한다. 슈우욱. 자동차가 멈춘다. 넘어지지 않고 도착했다. 아이는 발로 자동차의 속도를 조절했다. 우와. 두 살인데 대단했다.



한참을 한 번 한 번 돌아가며 자동차를 탄다. 지겨워질 때쯤 꼬마들은 주차장에서 나와 건물로 들어가는 입구 계단에 앉아 개미를 본다. 아랍어만 하는 마르완과 한국어와 영어만 단어로 짧게 말하는 아이는 대체 어떻게 소통을 하는 걸까. 속닥속닥 말도 잘한다. 까르르 웃기도 한다.  신기하다. 꼬마 친구들이 노는 것을 지켜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벌써 저녁할 시간이다. 오늘은 청년들 몇 명이 우리집에서 함께 식사를 하기로 했다. 이제 들어가야겠다.


  “Hanbin, Let's go.” (한빈아, 이제 가자.)


  아이가 내 손을 잡고 일어난다. 더 놀고 싶어하는 마르완은 속상하다. 훌쩍훌쩍 울기 시작한다.


  “Let's play tomorrow. We will be outside.” (내일 놀자, 마르완. 우리 밖에 있을게.)



말을 알아듣지 못해 우는건지 못내 아쉬워서 우는건지 모르겠지만 마르완은 더욱 소리를 높인다. 옆에서 오토바이를 고치던 마르완의 아빠가 마르완을 부른다. 그는 울다가 눈물을 닦고 아빠에게 간다. 알아들을 수 없는 아랍어로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마르완은 고개를 끄덕인다. 아이에게로 와서 내일 보자고 말한다. 눈물 자국이 그대로인데 목소리가 진정되었다. 놀랍다. 아빠는 대체 아이에게 무슨 말을 한 걸까.



아이 손을 씻기고 냉장고에서 돼지고기를 꺼낸다. 오늘은 돼지고기 김치찜을 해야지. 겨울에 했던 김장 김치가 맛있게 익었다. 김치도, 돼지고기도 구하기 힘든 중동에서 김치찜은 아주 귀한 음식이다. 압력솥이 치익 소리를 낸다. 남편에게 언제 오는지 메시지를 보내면서 마르완과 그의 아빠를 생각한다. 내가 본 것만 해도 여러 번이다. 마르완이 울고 있거나 떼를 쓰거나 위험한 행동을 하거나 엄마가 힘겨워할 때 늘 아빠가 등장했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마르완에게 이야기를 하면 이내 꼬마는 진정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마르완은 막내다. 아이가 총 네 명. 우리 집 건물을 관리하는 바왑(경비원)인 마르완의 아빠는 지하주차장에 마련된 집에서 산다. 방이 두 칸이나 될까. 아이들은 전부 거실에서 잔다고 했다. 첫째가 곧 성인이 된다. 아들은 학교를 다녀와서 아빠를 돕는다. 여섯식구가 경비직 하나로 먹고 살기엔 쉽지 않고, 무슬림 나라에서 여자가 직업을 갖는 것은 더욱 힘들다. 손재주가 많은 바왑은 이것저것 수리를 한다. 여름이면 아들과 함께 수박도 판다. 둘째 딸은 엄마를 도와 집안일과 막내를 돌보는 일을 한다. 경비일을 하면 그 건물에 살게 해주니 집세 걱정은 안해도 되지만, 이집트는 경비의 책임이 막중해서 신경써야 하는 부분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더군다나 우리 건물엔 외국인들이 많이 살아 자잘한 요구가 엄청 많을텐데 처리 속도가 빠르진 않아도 받는 요구마다 눈살 한 번 찌푸리는 일이 없다. 



바왑은 우리 건물 관리만 잘하는 것이 아니었다. 자기 가정의 관리도 잘했다. 모두가 아버지가 가장인 것을 인정하고 존경한다. 아버지의 말에 권위가 있다. 바왑은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삶에서 잘 배운 사람이었다. 마르완의 엄마와 누나는 종종 내게 자기들은 고향으로 내려가서 문구점을 하며 살 거라고 했다. 집을 짓고 있는데 일층은 완공되었다고. 자기 방을 갖게 될 거라며 마르완의 누나는 진심으로 기뻐했다. 바왑은 주기적으로 가족들을 공사중인 집에 데려갔다. 공동의 목표를 세우고 눈으로 보여주고 비전을 제시했다. 가족들은 함께 꿈을 꾸었다.







Abba(아바)는 히브리어로 아버지라는 말이다. 이는 어린아이가 아버지를 부르는 말이라기보다는 성인 자녀가 예의 바르고 진지하게 부르는 말에 가깝다. 유대인 사도가 신이신 하나님을 부를 때 아바 용어를 사용했다. 하나님이 보호자이며 인도자임을 인정하며 부른 말이다. 유대인에게서 아버지의 권위는 신으로부터 왔다. 자녀교육은 어머니가 주로 담당하더라도 가정의 권위는 아버지에게 있는 것이다. 아버지는 하나님이 가정을 지키고 자녀를 보호하고 사랑하라고 보내주신 권위자이다. 가정에서 아버지의 권위는 아버지의 역할에 대한 책임과 어머니가 아버지를 자녀 앞에서 세워줄 때 생긴다. 



아이는 눈치가 빠르다. 누구한테 말해야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는지 바로 안다. 뛰어 다녀서 덥긴 하지만 아직은 바람이 찬 오늘 같은 날에는 분명 엄마는 너무 차가운 것은 먹지 않는게 어떻겠냐고 말할 것을 알고 있다. 아이는 아빠에게 간다. 사람 좋은 아빠는, 그리고 더위를 많이 타는 아빠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오케이. 아빠도 먹고 싶었어. 같이 가자.



가만히 보고 있자니 슬슬 화가 난다. 아니, 아이스크림을 왜 무조건 먹어야하지. 애들이 먹고 싶다고 말만 하면 바로 사주는게 맞는 건가. 그리고 날씨는 또 어떻고. 이런 날에는 좀 조심해야지. 가뜩이나 기침만 해도 신경쓰이는 세상인데. 내일 학교도 가야 하는데. 하고 싶은 말이 수백가지다. 왜 나는 나쁜 역할을 해야 하고 왜 자기는 좋은 사람인지 속상할 때도 많다. 오냐오냐 귀하게 자라 교육을 받을만큼 받은 나는 물론 무슬림 가정에서 태어난 여자들보다는 훨씬 남편에게 말을 많이 할 거다. 나는 마르완 가족을 생각한다. 남편을 바라보는 아내의 존경하는 눈빛. 그리고 그 눈빛을 보고 자란 아이들이 아버지에게 느끼는 존경심. 나는 어떤 눈으로 남편을 바라보고 있는가. 나는 남편에게 너무도 쉽게 잘못한 것, 지켜야할 것을 이야기하진 않는가. 몽테뉴는 연약한 소년 시절부터 자리잡힌 씨앗은 싹이 트고 떳떳이 커가서 습관이 된다고 말했다. 어쩌면 내가 남편을 바라보는 눈으로 아이도 남편을 바라보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혹시 우리 아이들도 아빠에게 너무도 쉽게 원하는 것, 하고싶은 것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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