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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 Jun 09. 2023

교육보다 양육

교육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양육은 부모가 해야합니다






"당신들의 선배는 올해 최고의 여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우리학원은 의지를 끌어내는 선생님들이 있습니다"


"아이의 정열을 모두 불태울 수 있도록 지도하겠습니다"



시간이 느리게 가는 나라에서 살다가 한국에 오니 너무 빨라서 정신이 없었다. 제품을 주문하면 문 앞 까지 도착하는데 하루밖에 걸리지 않는 로켓배송의 나라. '빠름, 빠름, 빠름' 전국 어디서나 가능한 LTE를 넘어선 5G 통신망의 나라. 빠르지 못하면 도태되어 죽는 것처럼 한국의 온 문화는 빠름에 최적화 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런 걸까. 한국은 교육도 빠르다. 조기교육을 넘어서 태아부터 시작하는 교육. 태어나면서부터 엄마는 아기의 모든 발달을 교육으로 해석한다. 뒤집기, 기어다니기, 걷기, 소근육 발달, 옹알이가 터지는 것까지 '적령기'에 되지 않으면 걱정한다. 발달이 느린 아이가 될까봐 걱정하는 걸까. 아니면 발달이 느린 아이는 공부를 못한다는 이미지 때문에 결국은 공부를 못하는 아이가 될까봐 걱정하는 걸까. 이런 엄마들의 마음 깊이 내재되어 있는 걱정은 학원 홍보 슬로건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당신들의 선배는 올해 최고의 여름을 맞이한다니. 저 학원을 다니면 나도 내년엔 최고의 여름을 맞이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부모 눈에 의지가 없어 보이는 아이라면 첫 번째보다는 두 번째 학원에 보내야겠지. 아이의 의지를 끌어내는 선생님들이 있다는데, 의지 약한 아이들은 저기에 보내면 딱이겠다. 세 번째 학원은 아이의 정열을 모두 불태울 수 있도록 지도를 한단다. 아이가 공부에 정열을 모두 쏟으면 얼마나 좋은 결과가 날까. 상상만 해도 기분 좋은 일이다. 저 학원도 합격. 



교육 열풍이다. 학원도 얼마나 개별 맞춤화가 되어 있는지 모른다. 얼마나 세분화 되어 있는지 모른다. 모든 것을 학원에서 배울 수 있다. 국영수사과 뿐만 아니라 음악 미술 체육도 종류가 다양해졌다. 리코더도 학원에서 배우고, 농구도 줄넘기도 학원에서 배운다. 학원만 잘 보내면 아이가 수퍼맨이 될 것 같다. 천하무적이다.



내 아이의 교육은 가정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가정에서만 하는 것은 아니다. 학교도, 학원도, 아이가 만나는 모든 기관 및 모든 공동체의 선생님들이 내 아이를 교육한다. 그러나 양육은 아니다. 양육은 나와 남편,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 등 함께 살고 있는 아니면 근처에 살고 있어서 도움을 주는 가족들에 국한된다. 우리만 할 수 있는 것이 양육이다. 교육은 '가르치는 것'이고 양육은 '돌보는 것'이다. 교육은 '지식이나 기술을 가르쳐서 습득하게 하는 것'이고 양육은 '돌보아서 기르고 성장하게 하는 것'이다. 교육을 해야 하는 대상이 있고, 양육을 해야 하는 대상이 있다. 교사는 학생을 교육해야 한다. 교사가 학생을 양육할 수는 없다. 부모도 아이를 교육해야 한다. 가르쳐서 알려줘야 하는 것들이 분명 있다. 예절, 도덕, 가치 등. 그러나 부모는 아이를 교육 이전에 양육부터 해야 한다. 양육은 초등 전까지 미취학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것처럼 여길 때가 많지만 실제로 양육은 성인이 될 때까지 하는 것이다. 그래서 미성년 자녀를 둔 부모가 이혼할 때 '교육권 싸움'이 아니라 '양육권 싸움'을 하는 것이다. 



부모만이 할 수 있는 양육은 아주 중요하다. 태어난 아기가 처음 만나는 사람이 부모이고 처음 만나는 공동체가 가정이다. 아이는 자라면서 부모의 양육태도와 양육환경에 의해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해 나간다. 부모의 사랑, 가정에서의 소속감, 부모와의 관계 이런 양육이 아이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것이다. 정체성의 백프로가 여기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니지만, 상당히 많은 부분이 가정에서 형성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니 양육이 중요하지 않을 수가 없다. 바른 정체성을 가진 아이는 내면의 힘이 강하다. 내면의 힘이 강한 아이는 주변의 환경과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걷는다. 결국 우리는 공부를 잘하는 아이가 아니라 내면의 힘이 강한 아이로 키워야 하는 것이다.








정체성을 길러주는 학원, 내면의 힘을 자라게 하는 학원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너무나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리고 학원에서 저런 것이 자라기가 어렵다. 정체성이나 내면의 힘 같은 보이지 않는 '정신'의 것들은 가정에서 자라나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부모의 세계관, 양육태도, 양육 분위기 등으로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교육보다 양육이 더 중요해서 나의 양육관과 더욱 잘 맞는 기관을 찾다보니 아이들은 대안학교에 간다. 공교육이 이상해서가 아니라, 한국과 세계 어디 사이 즈음에 있는 나의 정체성과 결이 맞는 기관이 대안학교인 것이다. 가정의 분위기와 학교의 분위기가 비슷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그래야 아이들에게 일관성 있는 육아가 가능하다고 생각하기에, 그래서 아이들은 대안학교에 간다.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엄마보다 아이들을 잘 돌보는 엄마가 되고 싶다. 가르치는 엄마도 때에 따라 중요하지만, 아이들이 커서 우리엄마는 나를 잘 돌보아주셨다고 고백할 때 더욱 기쁠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는 교육보단 양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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