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의 감사에 대하여
전기가 없다.
하루에 전기가 잘 들어올 땐 여덟 시간,
어쩔 댄 하루에 40분 들어오기도 한다.
전기가 우리 삶을 이렇게 풍요롭게 만들었던가.
밥솥에서 칙칙 소리가 나고 있는데 전기가 나가버렸다.
오늘만 해도 네 번째다.
온 세상이 까맣게 변했다.
내 마음도 까맣게 변했다.
냉장고 옆에 쭈그리고 앉아 소리 죽여 울었다.
딸깍.
열쇠 돌리는 소리가 들린다.
남편이다.
앞치마로 얼른 눈물을 훔쳤다.
보글보글 끓고 있는 된장국의 가스불에 의존해 두리번거리며 핸드폰을 찾았다.
남편이 주방으로 들어오기 전에 냉큼 핸드폰 불빛을 켰다.
남편에게 무심히 인사를 하고 전기밥솥의 밥을 떠서 압력솥에 안쳤다.
나는 반찬을 만들 때 꼭 계량을 한다.
엄마처럼 대충대충 넣어도 매번 똑같은 맛을 낼 자신이 없다.
새댁인데다 엄마한테 밑반찬을 얻어올 수 있는 상황도 안되니
나는 기본 밑반찬인 김치부터 전부 스스로 해야 한다.
포털 사이트의 음식 블로거들은 내게 엄마와 같은 존재다.
그런데 전기가 나가고 인터넷이 안되니 오늘 야심 차게 준비한 요리는 계속 3번 사진에 머무르고 있다.
더 이상 사진이 뜨지 않아 뭘 더 넣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압력솥에서 따뜻한 밥을 푸고
한참 불이 꺼져 냉기가 사라진 냉장고에서 밑반찬을 꺼냈다.
쟁반에 밥그릇 두 개, 국그릇 두 개, 수저 두 벌.
남편이 쟁반을 들고 한걸음 앞선 내가 불빛을 비춘다.
까만 어둠을 마주하고 우리는 나란히 식탁에 앉았다.
고요한 가운데 수저 부딪히는 소리가 공중에 퍼진다.
우리는 말이 없다.
빨갛게 타는 촛불을 사이에 두고 우리는 밥을 먹는다.
익숙한 저녁.
많은 날들을 전기 없이 살지만
여전히 늘 처음인 것처럼 마음이 먹먹하다.
저녁을 먹고 남편이 산책을 하자고 한다.
어디를 나갈 수 있나 싶어 눈이 동그레 졌다.
남편은 내 핸드폰으로 불빛을 비추고 자기 핸드폰으로 노래를 켠다.
그렇게 우리는 걸었다.
방에서 방으로, 거실에서 방으로.
전기가 들어올 때까지.
핸드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랫말을 나지막이 따라 불렀다.
남편과 손을 잡고 노래를 부르며 걸었다.
아름다운 야경을 볼 수 있는 것도
시원한 바람을 느낄 수 있는 것도
마음 탁 터지는 넓은 바다를 보는 것도 아니지만
온 세상이 깜깜한 이 밤,
나는 남편과 손을 잡고 같은 길을 걷는다.
서로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하지만 박자를 맞추며 우리는 함께 걷는다.
그렇게 우리는 하나가 된다.
전기가 없다.
나는 오늘도 어둠 속에서 밥을 하고
도마에 똑똑 소리를 내며 야채를 썰고
화면이 멈춰진 블로그 레시피에 상상의 날개를 펼치며 양념장을 만든다.
그래도 행복하다.
맛있게 먹어주는 남편이 있기에.
이런 멋진 경험을 할 수 있는 땅에 살기에.
그래서 감사하다.
종일 전기가 들어오는 한국의 일상이.
공기처럼 가볍게 여겼던 고국의 노력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