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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세 Nov 22. 2023

나는 살아 있다

카운트다운

2023년 11월 21일(화) 오후 8시 12분



폴란드 제2수도 크라쿠프를 떠나 남부 국경의 산악지대인 자코파네로 왔다. 해발 2800미터의 타트라 산이 있고 알프스의 끝자락이다. 산 반대편에는 슬로바키아가 있다. 산봉우리에는 벌써 눈이 내려 하얗게 덮여 있다.  스키를 즐기려고 온 관광객들이  많이 보인다. 이곳에서 일주일 동안 머무르며 트레킹도 하면서 자연을 느낄 예정이다. 숙박비도 그리 비싸지 않다. 하루 15,000원이면  아주 괜찮은 가격이다. 물론 여럿이 함께 쓰는 호스텔이다. 평점도 높다. 국경 너머 슬로바키아는 유럽에서 온천 휴양지로 유명한 곳이다. 여기서 슬로바키아로 넘어갈지 아니면 브로츠와프를 거쳐 체코의 프라하로 갈지 결정해야 한다.

잠깐 해가 떴다.  빠르게 카메라에 담았다


여행을 하다 보면 크고 작은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있다. 어떤 선택이든 그 결정은 나의 결정이고 내가 책임을 진다.  해서 여행을 하다 보니 결정을 내리고 추진해 나가는 힘도 얻게 된다. 자기 결정에 확신을 가지고 밀고 나가는 힘이 생긴다. 물론 지나고 보면 잘못된 결정도 있을 수 있다. 그것은 반성의 대상이 된다. 후회보다는 반성과 성찰이 성장에 더 도움이 된다. 지나간 일은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선택의 힘은 여행을 통해 내가 얻게 될 자산이 될 것은 분명하다. 어느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혼자만의 고독한 결단을 통해 인간은 한 단계 더 성장한다.



지나고 보면 살면서 내렸던 중요한 결정들이 정리가 되고 부각된다.  그 결정들은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었고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리고 당연히 아쉬운 결정들도 있었다. 그중에는 지금 내가 걷고 있는 길과 아주 다른 방향으로 갈 수도 있었던 갈림길도 있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미래다. 앞으로 나에게 다가올 또 다른 삶의 갈림길들이 있다.  선택의 기회가 있을 것이다. 이미 나는 1년간의 배낭여행이라는 중요한 갈림길을 만들었다. 그리고 밝히지는 않았지만 몇 가지 중요한 결정과 계획을 여행 중에 완성했다. 그것은 분명 이번 여행이 나에게 준 수확이다.



오늘 타트라 산에 있는 모르스키에 코라는 호수에 다녀왔다. 호수입구까지는 버스로 접근하지만 나머지는 마차 또는 도보로 이동한다. 다녀와서 거리를 확인해 보니 23km를 걸었다. 여행시작 이후 하루 도보로 가장 긴 거리이다. 걸으면서 주변의 자연경관을 감상하고 사진도 찍지만 문득문득 앞으로의 인생계획에 대한 구상을 하게 된다.  과거에는 생각으로 그쳤지만 이번 여행을 통해 그렇게 떠오른 생각을 구체적으로 실행에 옮길 생각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전의 내가 망설이고 주저했다면 지금의 나는 그런 망설임과 주저함을 이겨내고 있다. 내가 느끼는 첫 번째 변화이다. 여행이 계속되면서 내가 어떻게 변해갈지 나도 궁금하다.

모르스키에 오코 호수. 쉴 새 없이  기상이 바뀐다. 구름이 걷힌 순간을 포착했다


내가 이 여행을 떠나오는데 결정적 계기가 된 사람이 있다.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다. 그가 말했던 기획투사가 지난 1년간 나의 화두였다.  세상 안에 무수히 많은 생명체와 사물이 있다. 말 그대로 존재들이다. 존재들 가운데 유일하게 인간 만이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는다. 그래서 하이데거는 인간을 ‘현존재’라고 불렀다.  현존재는 몇 가지 특징을 지닌다.



첫째, 탄생과 죽음이 자기 의지 밖에 있다.  내가 원해서 태어나지 않았고 죽음도 나의 의지 밖에 있다. 그래서 하이데거는 우리가 이 세상에 내 던져졌다고 표현을 한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인간에게 불안을 안겨준다.


둘째,  유한하다는 것이다. 끝이 있기에 유한한 삶을 어떻게 살지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 궁극의 목적은 행복이다.


 기획투사란 삶에 끝이 있음을 직시하고 그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다. 그래서 유한의 절박함으로 삶의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다.  그리하여 존재의 근본적 불안을 이겨낸다.  막연한 삶의 영위가 아니라 분명한 끝을 제시하고 주어진 한정된 기간을 각인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고민하는 것이다.  마침내 할 일을 찾은 유한의 시간을 하이데거는 역사적 시간이라고 불렀다. 분명한 의미를 가진 시간이라는 뜻이다.



그렇게 놓고 나의 삶을 비추어 볼 때 내가 측정한 나의 남은 시간은 대략 30년 정도였다.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 없고 나에게 주어진 30년의 시간을 어떻게 살 것인가 이것이 나의 숙제였다. 나는 새로운 출발을 시도했고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겠다는 분명한 의지가 있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첫째,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야겠다.  둘째,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는 삶을 살지는 않겠다. 계속 정신적 성장을 이룰 수 있는 일을 하겠다. 셋째, 지속적으로 완성을 향해 도전할 수 있는 창조적 일을 할 것이다.  넷째, 검소하게 살면 되니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정도의 수입만 벌면 만족한다. 도시에서의 생활이 힘들면 귀농을 해서 사는 것도 괜찮다.   


이 네 가지의 기준으로 대략 방향을 잡았다.  결론은 예술가의 삶이었다. 창조하는 일을 하는 삶이다 죽을 때까지 정신의 끈을 놓지 않는 삶. 그렇게 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 삶을 시작하는 기준점으로 이번 여행을 떠난 것이다. 남은 30년을 위한 1년의 투자인 셈이다. 그렇게 보면 이 투자는 시간적으로나 비용적으로 무리한 계획이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다.



여행을 통해 내 안에 숨어 있는 나의 또 다른 자아를 찾아내고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내가 있다면 그것 또한 나로 인식하는 과정이 계속되고 있다. 이번 여행에서 많은 사진을 찍었지만 셀카도 진짜 많이 찍었다. 사진 속의 나를 보면서 이제는 정감이 든다. 웃기는 이야기 같지만 나를 더 잘 알게 되고 친해진 느낌이다. 그래, 이게 나야. 이게 나구나 이런 느낌. 속사람과 겉사람 모두를 확인하고 느끼는 과정. 이번 여행의 큰 수확이다.  아직 진행형이지만 이건 분명하다.



오늘 호수를 보고 내려오는 길에 앞으로 해야 할 목표 하나를 움켜쥐었다. 내가 움켜 쥐었다고 표현한 이유는  이제는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나의 의지의 표현이다. 막연하게 그리던 희미한 초상이 분명한 이미지로 나에게 다가왔다. 삶의 의미를 하나 획득한 것이다. 바로 전 글에서 내가 했던 말 하나가 계속 나를 사로잡았다. “우리 삶에 감동이 없는 이유는 땀과 고통, 그리고 인내가 없기 때문이다”  내려오는 길에 자꾸 그 구절이 나를 때리고 있었다. 그런 자극 덕분에 도달해야 할 하나의 목표가 생겼다. 준비해 보려 한다. 막연히 흘려보냈던 지난날의 시간을 더 이상 후회하지 않으련다. 지금 나에게 다가올 유한한 시간의 역사성을 분명히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 나의 육체는 점점 노쇠해져 가지만 나의 정신은 점점 더 빛나고 있다. 나는 살아 있다.

호수까지 가는 마차.  설산의 전경이 감탄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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